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말처럼 송강호는 '한국 관객'에게 응원받는 '국민 배우'다. "한국 관객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낯부끄럽지 않다.
1990년 연극 '최선생'으로 데뷔해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초록 물고기'(1997), '넘버3'(1997), '쉬리'(1999), '반칙왕'(2000), '공동경비구역 JSA'(2000),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밀양'(2007), '박쥐'(2009), '설국열차'(2013), '밀정'(2016), '택시 운전사'(2017), '기생충'(2019) 등 송강호의 필모그래피(작품 목록)는 한국 영화의 역사기도 하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영화 역사의 중심축으로 활약하는 그는 국내를 넘어 세계로 나가며 '한국 영화'의 아이콘으로 불리고 있다.
굵직한 작품으로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송강호는 지난 5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제가 연기를 잘해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건 아니에요. 영화라는 게 사실 많은 요소가 모여 한 작품이 되는 거거든요. 배우만 따졌을 때도 배두나, 강동원, 아이유, 이주영부터 특별 출연해준 송새벽, 김새벽, 김선영까지 모든 배우의 노력으로 '브로커'가 완성된 거예요. 훌륭한 분들이 모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브로커'가 칸에 갈 수 있었고 영광스럽게 상을 받은 거라고 봐요."
송강호는 영화 '괴물'(2006)을 시작으로 '밀양'(2007),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박쥐'(2009), '기생충'(2019), '비상선언'(2021), '브로커'(2022)까지 칸 국제영화제를 총 7번 방문했다. 오랜 시간 칸 국제영화제를 방문했지만, 개인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남우주연상 수상' 자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그는 그저 묵묵하고 꾸준하게 임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제 출품과 수상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감독, 배우는 없을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모두 초청받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영광이고 기쁘고 최고의 순간이었지만 수상 자체에 의미가 크다고 보지는 않아요. 우리가 영화를 만드는 처지에서 더 중요한 건 주체가 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거니까요. 과정을 넘어 관객과의 만남이 중요한 거죠."
송강호와 칸 국제영화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지만 특히 최근에는 '기생충' '비상선언' '브로커'까지 3년 연속 초청되며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았다.
"최근 3년을 연이어 (칸 국제영화제에) 갔네요. 때마다 많은 걸 느끼지만, 이번에는 특히 세계 영화인, 팬들이 한국 콘텐츠와 영화를 존중하고 인정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항상 어느 자리를 가든 한국 영화, 콘텐츠에 관해 이야기해주어서 내심 뿌듯하고 자긍심도 생겨요.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가고, 제가 상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니라 임권택 감독님부터 시작해서 20여 년 동안 천천히 쌓아온 게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쌓아갈 게 많아서 저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인 모두 다시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과정을 겪을 거로 봐요."
칸 국제영화제를 7번이나 참석한 '베테랑' 배우이기에 '브로커' 제작진과 배우 모두 송강호를 의지했다는 후문이다. 이를 두고 송강호는 "든든한 선배이길 바랐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든든한 사람이 앞에 있으면 뒤에 선 사람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영화제는 축제잖아요. 세계 최고 영화제이고 최고 영화와 영화인이 모이니까 그 자체가 설레요. '브로커' 배우들에게도 영화제 자체를 즐기자고 수시로 이야기했어요. 참석하는 자체만으로도 영광이고 즐거운 일이니까요. 추억이고 잊지 못할 시간이니 마음을 그리 먹자고 했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다른 가정에 돈을 받고 넘겨주는 브로커와 아이 엄마의 여정을 담고 있다. 2007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브로커'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정식으로 '브로커' 미팅을 진행했다"라며 '브로커'와 만난 과정을 설명했다.
"그 당시 제목은 '요람'이었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를 워낙 좋아했고 예술가로서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브로커' 출연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캐릭터도 현실에 발붙인 '실재 인물'로 만들어버리는 힘을 가진 송강호는 이번 작품에서 브로커 '상현' 역을 연기했다. 일상적이지 않은 이야기조차 일상적으로 그려내는 편안한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레 관객의 마음에 녹아들었다.
"극 중 '상현'의 전사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죠. 영화가 끝나도 '상현'은 어떻게 되었다는 설명이 없어요. '상현'은 정의하기 힘든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예측할 수 있는 캐릭터이기를 바랐어요. 그가 가진 미지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죠. '상현'이 어떤 상황을 겪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송강호는 영화감독이라면 꼭 한 번은 만나보고 싶은 배우일 거다. 그는 봉준호 감독부터 박찬욱, 김지운 감독과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까지 여러 거장 감독과 작업해왔다. 그에게 "왜 유명 감독들이 '송강호'를 찾는 거 같으냐?"고 묻자 그는 "축복받은 배우"라며 겸손하게 답했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서 속으로 계속 고민해보았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제가 평범해서 그런 거 같아요. 이웃 같고 잘생기지 않은 얼굴이 친숙한 느낌을 주는 거 같거든요. 그런 요소 때문에 기회를 많이 얻은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일본 감독과는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송강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편견이 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일본 감독님이시니 뭔가 더 치밀하고 정교하게 연출할 거로 생각했어요. 곧 그것이 선입견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놀랄 정도로 자유롭고 배우들에게 해방감을 주는 감독님이더라고요."
송강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두고 "한국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거장 감독들 각각의 차별점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며 "오히려 공통점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천재적인 재능과 감각을 가졌으면서 배우들에게 자유롭게 뛰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줘요. 거장 감독들의 공통점인 거 같아요. 그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자신감을 느끼게 돼요. '저렇게 천재적인 사람들이 내게 또 다른 연기를 할 기회를 주다니'라고 감탄할 때가 많죠."
'브로커'를 통해 처음 호흡을 맞춘 아이유(이지은)에 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솔직히 노래는 잘 모른다"라고 운을 떼었지만, 그가 출연한 작품은 모두 찾아보았다고.
"'최고다 이순신'부터 안 본 드라마가 없어요. 최신작인 '나의 아저씨'까지 참 열심히 봤죠. 이렇게 노래도 잘하면서 연기까지 잘할 수 있다니. 오히려 제가 (아이유와 호흡을 맞춰) 영광이었죠. 아이유 씨는 앞으로 대성할 거예요. 자기 일에 사랑이 크고 태도도 훌륭하니까요. 선배로서 (아이유를 봤을 때) 대견할 뿐만 아니라 배울 점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의형제'(2010)로 처음 만나 '브로커'(2022)로 재회한 강동원에 관해서는 "인간적이고 소탈하다"라고 칭찬했다.
"생긴 건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완벽하게 생겼는데 알면 알수록 '뚝배기 된장' 같은 친구예요. 그게 정말 좋아요. 차를 마시든 맥주를 먹든 함께 있으면 정말 즐겁고 재밌어요. 생각보다 더 유머러스한 친구거든요. 그동안 장르 영화에서 존재감을 발휘한 친구인데 '브로커'에서 이토록 소탈한 매력을 보여줄지 몰랐어요. 이렇게 세심하게 표현할 수 있나? 놀라웠죠.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잠재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송강호는 최근 김지운 감독의 영화 '거미집' 촬영을 마쳤다.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전후로 배우 송강호에게 달라진 점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라고 담백하게 답했다.
"최근 '거미집' 촬영을 무사히 마쳤어요. 잘 끝냈고 내년이 되면 소개해 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더라도 달라진 건 없어요. 예전이랑 똑같죠. 변함없이 묵묵히 한 땀 한 땀 걸어가려고요. 그게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