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여기에 더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추가 안정화 의지를 드러내면서 시장은 벌써부터 연준이 다음달에도 연속적인 ‘자이언트스텝’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은행이 사상 첫 ‘빅스텝’을 통해 주요국 금리 인상에 발을 맞추고 시장 안정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16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는 7월 한은 금통위의 빅스텝 가능성에 대해 “시장 반응을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빅스텝’이란 기준금리 수준을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조치다. 현재 국내 기준금리가 1.75%인 만큼 다음달 실제 빅스텝이 단행될 경우 기준금리는 2.25% 수준으로 높아지게 된다. 그동안 한은이 기준금리 '빅스텝' 인상을 단행한 전례는 없다.
이 총재는 "다음 금통위 회의까지는 3~4주가 남아 있는 만큼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며 급변하는 시장 상황을 변수로 언급했다. 그는 “파월 연준 의장 언급대로 연말까지 금리 3.4% 정도를 예상하고 있을 만큼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빠른 것은 사실이나 (양국 간) 금리 격차 자체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시장에 어떠한 영향이 있을 것인지, 외환과 채권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한은은 수차례에 걸쳐 물가 안정 차원의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달 17일 기자들과 만나 “(물가 안정을 위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면서 “빅스텝 역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지난 9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 간담회에서는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가 “물가 상승 기조 속 (빅스텝이) 필요하다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변동성을 높이지 않으면서 기대를 조정해 나갈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물가 중심 통화정책’에 대한 언급은 이날 거금회의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입을 통해서도 나왔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원들도 물가 상승세 등을 감안해 보다 긴축적인 통화정책에 힘을 싣고 있는 분위기다. 한은이 전날 공개한 5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이 총재를 제외한 5명의 금통위원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물가를 잡기 위해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드러냈다. 인상 속도에 대해서도 5명 중 3명의 위원이 중립금리 수준에 근접하도록 빠른 금리 인상 필요성을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물가상승세가 확대될수록 향후 보다 긴축적인 정책대응이 불가피하며 이는 결국 향후 더 큰 성장 손실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기준금리를 빠르게 중립수준으로 높여나가는 것이 중장기 시계에서 거시경제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7월을 비롯해 올해 남아있는 4차례의 금통위에서 모두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될 것으로 예상했다. '빅스텝' 대신 연속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미 연준의 긴축 정책과 국제 유가 상승, 원화 약세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은이 오는 7월 ‘빅스텝’을 단행할 경우 우리 금융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정부와 중앙은행이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는 ‘물가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물가상승률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사상 유례없는 연 5%대로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황. 일반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그와 연동돼 있는 시중금리가 뛰고 자산가치 감소로 진행되는 구조다. 이는 곧 소비 및 투자수요 감소로 이어져 물가 안정이라는 결과로 도출되는 방식이다.
또 미 연준의 자이언트스텝 여파로 인한 한·미 기준금리 역전이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도 빅스텝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특히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리겠다는 연준 의지가 강력한 현 시점에서 한은이 금리 인상을 주저할 경우 미국보다 국내 기준금리가 더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더 높은 수익률을 위해 외국인 투자자금이 국내 시장을 빠져나갈 수 있고 금리 역전에 따른 원화가치 하락이 국내 물가 상승을 자극할 우려도 있다.
반면 기준금리 급등에 따른 악영향도 적지 않다. 당장 대출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부채 리스크와 경기 둔화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금통위에서 한 금통위원이 기준금리 속도조절을 주장한 배경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해당 위원은 "우리나라의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모두 단기금리와 연동성이 강하므로 채무상환부담과 자금조달비용의 급격한 상승이 실물경기 회복을 제약할 수 있다"면서 "기준금리 인상속도를 신중하게 조절하면서 성장 손실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당장 다음달로 다가온 한은의 '빅스텝' 행위 자체보다도 향후 최종적으로 도달할 기준금리 목표치와 시장 기대 등에 방점을 두고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금융연구실장은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에 있어 시장이 따라오지 못해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속도조절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최근 시장에서 (빅스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만큼 생각보다 부작용이 크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기존 속도를 유지해 시장 불확실성을 키울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