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중소·중견 가업 단절…제도 확대에도 승계 절벽
② "회사 팔자" 부모 설득하는 중소·중견 경영 후계자들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70대에 접어든 창업자는 은퇴시점을 고려하고 있고,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미국 유학을 다녀온 창업 2세는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노조와 갈등까지 있다면 이른바 '기업 사냥꾼'들의 우선순위에 오른다.
사모펀드가 경영 승계를 포기한 중견·중소기업을 줄줄이 인수하면서 이들 기업의 기술력 유지와 고용 보장 등도 위협받고 있다. 경영 은퇴를 앞둔 대부분의 중견·중소기업 창업주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막대한 상속세를 부담하면 가업 상속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가업상속공제제도가 있지만 활용하기도 어렵다.
일선에서는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회사 경영을 심각하게 제약할 정도로 요구 조건이 까다롭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기업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업종 전환조차 추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회사를 매각해야 된다고 부모를 설득하는 창업 2세를 보는 게 어렵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해 5월 코스닥협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스닥에 상장된 80개 중소·중견기업 40%는 가업승계 계획이 '없다'고 대답했다. 승계계획이 있다고 대답한 기업은 전체의 20%에 불과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가업승계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 중 상속세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업주 경영 후계자의 경우 창업주가 회사를 물려주고 싶더라도 현금으로 납부해야 하는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회사 매각 외엔 선택지가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연매출 3000억원 미만 중소·중견기업을 10년 이상 경영한 사업자가 기업을 물려줄 때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재산에서 공제해 주는 상속 및 증여세법상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창업 2세가 기업 지분을 상속받은 뒤 7년 이내 업종을 바꾸거나 고용유지 요건을 어긴 경우, 자산을 일정 비율 이상 처분하거나 상속인의 주식 지분율이 기준 이상으로 감소한 경우 각각 세금을 추징당한다. 가령, 신사업이 성공해 기존 제품보다 매출 비중이 커지면 회사의 ‘주 업종’이 바뀌어 상속세 공제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갑작스러운 대표의 사망, 승계나 상속을 위한 전문 인력을 뽑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가업승계를 위해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아예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가업을 승계해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호주는 1979년에 상속세를 폐지하고 1985년에 사망시 양도소득과세를 도입했다. 뉴질랜드는 1999년, 스웨덴과 포르투갈은 2004년, 오스트리아는 2008년에 각각 상속세를 폐지한 바 있다.
일본은 2018년 비상장 중소기업의 소유주가 친족인 후계자에게 자신의 주식을 상속・증여할 경우, 상속세의 100%를 2027년 12월 31일까지 10년간 납부유예 시켜주는 특례조치를 도입했고, 2019년에는 개인 사업자에게까지 특례를 확대했다.
스웨덴은 상속과세 강화를 통해 경제적 기회균등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상속세제를 폐지하고 자본이득과세를 도입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상속세 개편 논의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이후 처음 6개경제단체장을 만난 자리에서 법인세와 가업상속, 기업승계 등에 관한 세제를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세율 인하보다는 공제 확대 등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 윤석열 “상속세 부담, 기업 제대로 운영 할 수 없어”…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3월 인수위에 ‘신정부에 바라는 기업정책 제안서’를 전달했다. 해당 제안서에는 OECD 평균 최고세율(약 25%)의 2배 수준인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60%에서 25%로 인하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가업상속공제 대상에 대기업을 포함하고, 유산취득세 전환 방안 등도 요구했다.
대한민국의 총조세 대비 상속세 비중은 2020년 기준 2.8%로, 2019년 OECD 평균인 0.4%보다 높은 수준이다. 재계가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 경영이 위축될 수 있다고 토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재계에서 요구하는 유산취득세 방안으로 변경될 경우 부담액은 크게 줄어든다. 현행 유산세 방식은 고인(피상속인)이 사망 시점에 보유했던 모든 재산에 상속세율을 적용한 반면 유산취득세는 실제 취득 유산에 세율이 적용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상속세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공공연하게 내보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추 부총리도 후보자 시절부터 선진국에서는 왜 상속세가 없어졌는지 등 상속세 완화에 대한 당위성을 설파해왔다. 그는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선 상속세 완화가 결국은 ‘부자감세’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어 사회적 공론화 과정에서 조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