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에서 채식(비건) 열풍이 불면서 그녀는 채식주의, 그리고 사찰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한국관광공사(사장 안영배) 초청으로 지난달 방한했다.
본지는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그녀를 만나 방한 후 활동과 앞으로 활동 계획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번 방한은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며 "영국에서 비건에 대한 관심도가 점차 증가하는 가운데 한국 사찰 음식에 대해 좀 더 깊숙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한국 사찰 음식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채식이라는 점에 가치를 두고 이를 더 많이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어머니 영향 덕분" 한식 매력에 푹 빠진 이유
다해 웨스트는 3세 때 부모님 손을 잡고 영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오랜 세월을 영국에서 보낸 만큼 한국어도, 한국 음식도 그에겐 낯설 만도 하건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어려서부터 한식, 그리고 한국과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 덕분이었다.
"처음 영국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한국 식재료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해요.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가족을 위해 한국 음식을 자주 하셨어요. 삼시 세 끼 한식을 먹기도 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한식과 친해졌고, 관심을 갖게 됐어요. 대학생이 되어서는 '나의 뿌리' 한국, 그리고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죠."
한국이 본인의 뿌리인 만큼 한국 음식을 넘어 식문화, 더 나아가 역사까지 알고 싶었다. 부지런히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자료를 찾았다. 한국을 방문한 것도 수차례다. 그의 고향 부산을 비롯해 국내 지역 곳곳을 다니며 한국 식재료, 한국 음식에 대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그러다 2012년 남편과 함께 런던에서 한식을 판매하는 길거리 푸드트럭 '부산 바비큐'를 선보였다. 한국식 버거 등을 만들어 판매했다. 영국에서 한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시기라 현지인들 호응도가 높았다고 한다.
새로운 맛에 도전하려는 영국인들이 부산 바비큐를 많이 찾았고, 김치 버거나 불고기 버거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대기줄이 길어서 놀란 적도 있고,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식당 안에서 반짝 매장(팝업스토어)을 열기도 했다고 전했다.
부산 바비큐를 운영한 지 3년 만인 2015년 영업을 중단했다. 다해 부부에게 소중한 선물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3년간 부산 바비큐를 운영했어요. 아이를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운영을 접게 됐어요"라며 웃어 보인 다해 웨스트.
가게 운영은 중단했지만 한식을 향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2015년에는 첫 요리책 'K-Food'(단행본 'Eat Korean')를 출간했고, 현재는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식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 유명 음식 프로그램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고, 한국대사관과 주영한국문화원이 협업한 '한식 쿠킹 클래스'에도 참여했다.
이 밖에 2016 한국대사관 한식 행사(Hottest K-Food Event) 연설자로도 나선 그녀는 현재 '영국 푸드라이터 전문협회(Guild of Food Writers·GFW)'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GFW는 음식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 방송인, 칼럼니스트, 기자 등 550명 이상의 회원으로 구성된 전문 협회다.
"한식에 관한 열정은 크지만, 전문 요리사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수강생들이 집에서 좀 더 쉽게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채식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에 전 세계적으로 환경 보호와 윤리 소비 등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MZ세대를 중심으로 채식(비건) 열풍이 불고 있다. 순채주의(비거니즘)는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물건을 구매하는 가치 소비, 환경 보호, 동물 윤리 등과 맞물리며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도 이런 추세를 따르고 있다. 육류 대체품으로 만든 버거나 베이컨, 매운 치킨, 피자, 마요네즈, 유제품을 넣지 않은 제과류 등은 영국 채식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환경식품농림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은 육류 대체품 분야 최대 시장이다. 2019년 육류 대체품 소매 가치는 14억 유로(약 1조8832억원)에 달했고 지속적으로 성장 중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25년까지 25억 유로(약 3조36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점쳐진다.
영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한 다해 웨스트가 비건에 주목하고, 한국 대표 비건 음식으로 손꼽히는 '사찰 음식'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어쩌면 영국 내 추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2020년 영국 순채주의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추진한 한국관광공사 런던지사 측 초청을 흔쾌히 수락한 것도 그 맥락일 터.
그녀는 방한 후 전남 장성군에 자리한 사찰 '백양사'로 달려갔다. 이곳에서 사찰 체험(템플스테이)를 하고, '한국 사찰 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을 만났다.
템플스테이는 그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기도를 드리기 위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고, 명상을 통해 고요함 속에서 잠든 정신을 일깨우기도 했다. 아침식사를 한 후에는 자리에 앉아 천천히 차를 마시며 불교에 대해, 마음 챙김에 대해 이야기했다.
백양사에서 이뤄진 정관 스님의 사찰 음식 강좌, 그리고 스님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그녀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다해 웨스트는 단순한 음식 경험을 넘어 자아 성찰을 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전했다.
"정관 스님은 수업 중 틈나는 대로 자아 찾기의 중요성, 자연과 사람의 균형, 명상과 올바른 음식 섭취의 중요성, 그리고 이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어요. 차를 대접해 주시며 불교철학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요. 정관 스님과 함께한 것은 몇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 시간 동안 저는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해 웨스트는 한식의 매력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서구 사회에서도 발효 음식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인기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한 그녀는 "된장, 고추장, 간장 등 한국 '장'류가 제격이다. 깊은 맛을 낼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 한국의 장이 가진 풍미는 한식을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식은 다양한 재료와 양념이 조화를 이뤄 완성돼요. 다양한 식재료, 양념이 매력적이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참깨가 참 좋아요. 참깨를 볶아서, 또는 기름을 짜서 재료의 맛을 더 고소하게 하죠. 이런 식재료들이 한식의 독특함을 한껏 살려주는 것 같아요."
다해 웨스트는 곧 우리나라를 다시 찾을 외국인 여행객에게 미식 여행지로서 한국을 가장 잘 홍보할 방법으로 '그 나라가 가진 전통'을 꼽았다. 한국 음식 역시 전통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이들이 이런 부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외국 여행을 즐기는 이들은 그 나라 전통에 큰 흥미를 느껴요. 전통을 알면 그 나라 문화에 대해서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죠. 미식 여행지로서 한국을 알리는 방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에서 그친다면 이들이 한국을 아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겠죠.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의 전통, 한국의 식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간 후 한국 사찰 음식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영국에서 채식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완전한 채식주의자 수요가 절대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관심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식을 함으로써 좀 더 건강해지길 원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번 방한은 제게 무척 가치 있었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사찰 '백양사'에서 묵으며 불교정신에 대해 알게 됐고, 정관 스님께 사찰 음식을 배우는 시간 속에서 그분의 철학까지 가슴에 담게 됐죠. 서울의 유명 사찰음식점 '발우공양'에서 맛본 사찰 음식도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널리 알리는 것은 제 몫이 되겠지요. 귀국 후 제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이야기해 주려고 합니다. 사찰 음식을 넘어 불교철학까지 모든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