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이의 다이렉트] 한식의 근원 '장' 익는 고장 담양·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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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식품명인·유명셰프와 함께 떠나는 'K-미식 장 벨트'

내달 유네스코 유산 등재 앞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체험

담양 기순도 명인에게 듣는 370년 전통 청장·중간장·진장 비결

삼다리내다마을에서 '죽로차'와 귀한 별미 '죽신황금차' 시음

순창에서는 강순옥 명인과 찹쌀고추장과 고추장버터 만들기

 
기순도 명인 사진김다이 기자
기순도 명인 [사진=김다이 기자]

"태어나서 오늘 처음으로 간장은 맛본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알던 간장은 간장이 아니었어요."

기순도 명인의 간장을 처음 맛본 외국인 셰프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라도 전통 방식으로 담근 장맛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장맛과는 차원이 달랐다.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앞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이처럼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장(裝)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전남 담양과 순천에 다녀왔다.
 
사진김다이 기자
순창장본가에서 순창 고추장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볼 수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K-미식벨트 첫 주자 '장 벨트'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 코레일관광개발은 2024년부터 2032년까지 발효문화, 전통한식, 제철밥상, 유행한식 등 4가지 주제로 30개 'K-미식벨트' 조성에 나선다. 

K-미식벨트 첫 주자는 '장(醬) 벨트'다. 대한민국 장문화를 세계시장에 알리고 누구나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도록 이번 'K-미식 장 벨트'를 기획했다.

장 벨트는 장의 기원과 유래부터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장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를 하나의 관광스토리로 구현했다. 여행하는 동안 전통 장에 관한 내용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순창삼합 사진김다이 기자
순창 고추장과 간장, 된장을 이용해 만든 '순창삼합'. [사진=김다이 기자]

장 벨트에서는 국내 최초 갈비(가리구이) 분야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82호 박규완 명인의 담양 대통밥과 떡갈비를 맛보고, 유명 셰프를 초대해 전수받은 '순창삼합'을 즐길 수 있다. 간장과 된장, 고추장 만들기는 물론 버선금줄 만들기와 차 체험, 그릇 만들기까지 포함된다.

장 벨트는 시범투어로 검증을 거쳐 내달 13일부터 14일까지 1박 2일간 처음 운영된다. 숙박과 식사, 모든 장 관련 체험 등이 포함된 고가 상품이지만 올 한 해는 50% 이상 할인된 가격에 투어를 즐길 수 있다.

대한민국 대표 고추장 도시 '순창'과 죽염으로 장을 담는 진장명인이 활동하고 있는 '담양'.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장의 기원부터 완성까지 그 위대함을 한국 장의 탄생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봤다.

 
담양 고려전통식품 [사진=김다이 기자]
담양 고려전통식품 [사진=김다이 기자]

◆370년 역사 '씨간장'과 1200개의 숨 쉬는 항아리

370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고려전통식품에는 1200여 개 항아리에서 장이 익어가는 냄새로 가득하다. 370년 세월이 담긴 씨간장은 장흥 고씨 가문의 가보와도 같다.

이곳에서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5호 진장명인인 기순도 명인을 만날 수 있었다. 기순도 명인은 52년을 오로지 '장'과 함께했다. 종갓집에 시집와 시어머니께 장 만드는 방법을 전수받아 묵묵히 장을 담그다 보니 어느새 명인이 되었다고 한다. 

기 명인은 해마다 장 담그기를 반복한다. 좋은 콩을 갈아 동짓달에 끓여서 섣달에 발효해 메주를 만든다. 그리고 정월에 장을 담가야 가장 맛있단다. 깨끗한 죽염수 염도를 잘 맞춰서 넣고 고추와 대추씨도 더한다.
 
사진김다이 기자
1200개 항아리에 담긴 장은 저마다 맛과 향이 조금씩 다르다. [사진=김다이 기자]

"좋은 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염도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싱거우면 발효가 안 되고 부패되며, 염도가 높아 너무 짜도 맛이 없어지죠. 같은 장이라도 기후에 따라 빨리 숙성될 수도, 느리게 숙성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물, 메주, 죽염 단 세 가지 재료로 빚어낸 간장의 깊은 맛은 오랜 세월을 거친 명인의 노하우가 담겨 맛이 깊고 진하다.

60~90일간 항아리에서 잘 숙성한 장에서 간장을 걸러내면 청장과 중간장이, 메주는 된장이 된다. 1년 숙성한 간장은 맑은 '청장'으로, 주로 소고기뭇국이나 콩나물국 등 맑은 요리에 쓰인다. 숙성기간이 2~3년이면 청장보다 색이 진하고 단맛이 더해진 '중간장'이 된다. 중간장은 미역국이나 불고기, 잡채와 같이 색이 더 진한 요리를 만들 때 사용한다.
 
진한 검은 색상이지만 기순도 명인의 진장은 짜지 않고 단맛과 감칠맛이 풍부하다사진김다이 기자
진한 검은색이지만 기순도 명인의 진장은 짜지 않고 단맛과 감칠맛이 풍부하다.[사진=김다이 기자]

5년 이상 숙성한 '진장'을 항아리에서 퍼 올리니 칠흑 같이 검은 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예상과 달리 짠맛은 적고 부드러운 감칠맛이 느껴진다. 짠맛보다 단맛이 좋은 진장은 주로 보양식에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기 명인은 "집마다 장맛이 다르고 항아리마다 그 맛이 또 다르다"며 "앞으로도 우리 장 문화를 지켜가기 위해 교육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비법을 묻는 말에 별다른 비법이라기보다 좋은 재료와 정성이 그 맛을 좌우한단다. 
 
기순도 명인이 장 가르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기순도 명인이 장 가르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이곳에서 기 명인의 손길로 탄생한 6개월 이상 숙성한 장으로 '장 가르기'를 체험할 수 있다. 장물을 깔때기로 걸러내고 남은 메주 건더기는 잘 다져 된장이 될 준비를 한다. 간장과 된장은 따로 숙성을 거쳐야 더 깊은 맛을 낸다.

명인이 내어준 직접 담근 조청으로 만든 식혜와 약과는 너무 달지도 않은 은은한 단맛을 낸다. 명인의 간장과 된장을 활용한 요리들도 맛볼 수 있다. 된장국과 간장 김치는 개운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기 명인은 "한식의 근원은 장이라고 하는데, 인류가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인데 하물며 우리가 소원하면 안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삼다리 내다마을에 있는 찻집 명가혜에서 죽로차를 맛볼 수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삼다리 내다마을에 있는 찻집 명가혜에서 죽로차를 맛볼 수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댓잎 이슬 먹고 자란 담양 '죽로차'

대나무의 고장 담양에서는 대나무를 다양한 곳에 활용한다. 그중에서도 세계중요농업유산 마을로 지정된 삼다리 내다마을에서는 대나무밭에서 댓잎 이슬을 먹고 자란 차나무로 만든 '죽로차'를 시음할 수 있다. 

죽순 껍데기를 덖고 비벼서 만든 귀한 '죽신황금차'도 이곳만의 별미다. 10g에 1만원이나 한다는 귀한 차다. 은은한 차향과 예쁘게 빚어낸 다과 한 상은 눈과 입을 모두 즐겁게 한다.
 
담양 대나무숲 사진김다이 기자
사시사철 푸른 담양 대나무숲. [사진=김다이 기자]

과거 선조들은 장이 맛있게 익기를 기원하며 버선금줄을 만들었다고 한다. 잘 만든 버선금줄은 장을 담근 항아리에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여기에는 장맛이 변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버선은 발을 보호하는 기능도 있고 사람 발은 건강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상들은 임신했을 때 건강한 아이를 낳으라는 의미에서 버선을 선물하기도 했으며, 시집가는 딸에게 평생 신을 수 있는 버선 함을 보냈다고도 한다.
 
버선에 기원이 적혀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항아리에 장을 담가 넣고 버선에 기원하는 바를 적어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사진=김다이 기자]
기자가 직접 만든 버선모빌 사진김다이 기자
기자가 직접 만든 버선모빌. [사진=김다이 기자]

버선을 거꾸로 매달면 나쁜 기운이 올라가다 버선코 끝에 걸려서 떨어진단다. 한지로 만든 버선에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접어 넣으며 버선 모빌을 만들어 본다. 나뭇조각을 매달고 버선 안에 솜을 채워 넣고 모빌 끝에는 청아한 소리를 내는 종을 달아본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드는 색상의 리본을 버선에 매어주면 버선모빌 완성이다.
 
순창장본가 강순옥 명인 [사진=한식진흥원]
순창장본가 강순옥 명인 [사진=한식진흥원]

◆ 명인의 노하우 담은 '찹쌀고추장'

'고추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순창'. 순창이 대한민국 대표 고추장 마을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창의 자연환경 덕이 크다. 순창은 지형적 특성상 일교차가 적고 바람이 적게 불어 장류가 숙성되는 데 최적인 조건을 지니고 있다. 

맑은 물을 지닌 강천산에서 기운을 얻고 대한민국 전통식품 고추장 식품명인 제64호 강순옥 명인을 만나러 가본다.
 
순창 강천산 계곡
순창 강천산 계곡 맑은 물 위로 새빨간 단풍이 들었다.  [사진=김다이 기자]

강 명인은 국산 재료들만 엄선해서 전통발효 방식으로 고추장을 만든다. 매실고추장, 찹쌀고추장, 청양고추장, 보리고추장 등 장 종류마다 맛도 색도 향도 다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을 하나 골라 쌈을 싸 먹으면 별다른 재료 없이도 그 감칠맛에 입맛이 싹 돌아온다.
 
찹쌀 고추장을 만들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순창장본가에서 직접 찹쌀 고추장을 만들어볼 수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직접 고추장 만들기 체험도 해본다. 명인본가 고추장에는 동그란 떡메주, 고춧가루, 조청, 찹쌀, 소금까지 국산 유기농 재료들이 들어간다. 찹쌀을 끓이고 각종 재료를 잘 섞어 정성스럽게 담근 고추장은 숙성 과정을 거치면 우리 입에 착 감기는 맛있는 찹쌀고추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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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만들기 체험 후 매실, 찹쌀, 청양 등 가지각색 고추장을 맛본다. [사진=김다이 기자]
동서양의 조화가 느껴지는 고추장버터 사진김다이 기자
동서양의 조화가 느껴지는 고추장버터. [사진=김다이 기자]

고추장을 만드느라 허기진 배는 버터에 찹쌀고추장을 섞어 만든 '고추장버터'로 달래본다. 버터와 찹쌀고추장, 꿀, 쪽파, 마늘플레이크까지 자신만의 비율대로 제조한 고추장버터를 잘 구운 빵에 올려 한입 베어 무니 고소하고 매콤한 맛이 매력적이다. 남녀노소 외국인들도 좋아할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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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옹기체험관에서 권운주 장인이 옹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1200도에 구워낸 숨 쉬는 옹기

우리 전통 장이 먹기 좋게 숙성될 수 있도록 돕는 옹기를 직접 만들어 보기 위해 순창 옹기체험관도 찾았다.

대한민국 향토 명품 장인 권운주 도예가는 "1200도 미만으로 굽는 옹기는 도자기와 다르다. 흙 사이에 기공이 많이 살아 있어 옹기는 숨을 쉰다"며 "입자가 미세해 물은 빠져나가지 못하지만 공기가 드나들며 숨구멍 역할을 한다"고 옹기에 관해 설명했다. 

지역마다 장을 담는 옹기 모양도 제각각이다. 따뜻한 남쪽은 옹기를 넓게 만들고, 추운 북쪽은 옹기를 홀쭉하게 만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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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운주 장인이 도자기를 빚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빚어진 도자기는 가마에 구워 그릇으로 탄생한다 사진김다이 기자
빚어진 도자기는 가마에 구워 그릇으로 탄생한다. [사진=김다이 기자]

진흙에서 공기를 빼기 위해 토연기에 여러 차례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다. 공기를 100% 빼내지 않으면 100도 이상 온도를 받은 진흙 안에서 공기가 부풀어 오른다. 

물레에 진흙을 올려 중심을 만들어준다. 물레를 돌리며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한다.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다 못해 어깨와 팔, 온몸이 다 쑤신다. 적당한 두께로 정성스럽게 빚은 그릇은 잠시 말려뒀다 유약을 발라 구워준다. 손자국이 나면서 삐뚤빼뚤 만든 그릇이지만 그 모습 그대로도 정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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