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규 칼럼] 새 대통령 집무실 용산과 대통령 풍수론

2022-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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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풍수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김두규 우석대 교수 [사진=우석대 ]


서기 1101년 고려 숙종 때의 일이다. 최사추·윤관 등이 왕에게 보고한다. “신들이 노원·용산 등에 가서 산수(풍수)를 살펴보았는데, 도읍지로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삼각산 면악(面嶽·북악) 남쪽이 산의 모양과 물의 형세가 옛 문헌에 부합합니다. 남향하여 형세를 따라 도읍을 건설하기를 청합니다.”

‘용산’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다. 윤관과 최사추는 청와대·경복궁 일대를 용산보다 높게 평가했다. 청와대 터 길흉론은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그 길흉 논쟁사는 조선왕조 개국과 더불어 시작하기에 책 한 권 분량이다. 좋다고 말하고자 한다면 이를 방증할 풍수서가 수없이 많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용산터 또한 그러하다. 여기서는 터의 길흉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풍수상 두 곳의 특징과 제왕풍수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청와대터는 주산 북악산 바로 아래에 있고, 용산은 주산인 남산(인경산·仁慶山)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풍수 고전 ‘금낭경’은 이를 ‘고산룡’과 ‘평지룡’으로 구분한다. 고산룡(高山龍)의 터 ‘청와대·경복궁’은 삼각산 높이 솟은 데서부터 내려오는데, 생기(生氣)가 드러나 흩어지기 쉬우므로 바람이 두렵다. 이 단점을 보완해주는 것이 바로 북악산·인왕산·낙산·남산이다. 사방을 산으로 감싸주어 길지가 된다. 이런 형국을 ‘장풍국(藏風局)’이라 한다.

평지룡 터는 평지에서 솟은 것인데, 생기는 땅속으로 가라앉으므로 바람 부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방에 산이 없더라도 좋다. 다만 이때 기의 흐름을 멈춰줄 수 있는 큰 물이 필요하다. 용산이 바로 그러한 평지룡의 터이며, 이때 필요한 물은 한강이다. 따라서 용산은 한강이 있음으로써 길지가 된다. 이와 같은 형국을 ‘득수국(得水局)’이라 부른다.

장풍국인가 득수국인가에 따라 기(氣)가 다르다. 기는 인간과 사회에 영향을 끼쳐 그 결과 역사가 달라진다. ‘산은 인물을 키우고, 물은 재물을 늘려준다(山主人水主財)’는 풍수격언이 있다. 장풍국이 인물·권력·명예·명분의 땅이라면, 득수국은 재물·예술·문화의 땅이다. 장풍국은 폐쇄적이며, 득수국은 개방적이다. 

일본과 조선의 도읍지 풍수를 비교하면 쉽게 이해된다. 교토와 에도(도쿄)는 물 중심으로 터를 잡았으나, 조선왕조는 산을 고집하였다. 산은 사람을 고립시키지만, 물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 그 결과 일본과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다. 일본은 19세기에 이미 해상강국이 되어 제국주의 열강 대열에 진입하였다. 반면 조선은 끝까지 성리학이란 계급독재에 매몰되어 쇄국을 고집하다가 망했다(김두규, <조선풍수 일본을 논하다>).

왕이 산에서 물가로 가고자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광해군의 ‘파주교하 천도론’이 그것이다. 당시 풍수학인 이의신의 상소를 수용한다. 일찍부터 조선 풍수학인들은 ‘一漢·二河·三江·四海’론을 펼쳤다. 조선의 미래 도읍지로 물가를 지목했다. ‘홍길동’의 저자 허균은 이를 “조선의 수도는 처음에는 漢(一漢), 두 번째는 河(二河), 세 번째는 江(三江), 네 번째는 海(四海) 순서로 바뀔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의신은 이를 바탕으로 광해군에게 상소를 올린다. 조선 풍수학인들은 늘 ‘풍수의 법은 물을 얻음이 으뜸이고, 장풍(藏風)은 그 다음이다(風水之法, 得水爲上, 藏風次之)’란 금언을 준용했다. 그러나 당시 유학 문신들에게 배척당한다. 용산은 ‘한강(漢江)’에 있다, ‘삼강(三江)’의 시대일까.

조선풍수 전통은 도선국사로부터 시작한다. 도선풍수 목적은 ‘삼한통일(三韓統一)‘이었다. 그 풍수전통은 불교와 풍수를 국교로 채택한 고려에서 ‘비보진압풍수(裨補鎭壓風水)’로 나타난다. 땅마다 달라지는 지기와 권력의 강약을 파악하고, 강한 것을 누르고 약한 것을 부추기는 억강부약(抑强扶弱)론이다. 윤 당선자가 내세우는 ‘국민통합과 상생 그리고 여야 협치’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은 고려·조선·대한민국 역사에서 큰 사건이다. 고려·조선에서도 ‘왕의 집무실 이전’을 시도했다. 공민왕과 광해군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실패 원인을 여기서 논하지 않는다. 풍수학 밖의 일이다. 

더 이상 터가 불길하여 대통령의 말로가 안 좋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대통령이 불행했다면 그것은 개인의 불행이지 국가의 불행은 아니었다. 그들은 본래 ‘역사의 하수인’이었다. “이성(Vernunft)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역사 속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공물로 삼지 않고 정열과 야망을 지닌 개인을 활용한다(헤겔·Hegel).” 그들은 때가 되면 용도 폐기된다. 역사가 진보하는 과정 속에서 겪어야 할 지도자 운명이다. 한 나라 지도자가 되려는 정열을 가진 이들이라면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출간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에서 대통령 실패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대통령들에게 비스마르크를 경청할 것을 조언한다. “신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가 지나갈 적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외투자락을 잡아채는 것이 정치인의 책무이다.” 부디 ‘대통령 집무실 이전’도 신의 외투자락을 잡아채는 계기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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