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출범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장(長)을 누가 맡을지, 국정운영 밑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 관심이 쏠린다. 새 정부 살림을 꾸리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역대 정부에서 인수위는 문서 파기, 대통령기록물법 등을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직 인수위라는 명칭은 제14대 김영삼(YS) 정부에서 최초로 사용했다. 정부 '이양'이 아닌 '인수'라고 표현해 범위를 보다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행정연구원은 지난달 내놓은 '정부인수위원회 역할과 기능에 관한 연구: 1993~2017년' 보고서에서 "DJ 정부 인수위는 활동 기간과 범위가 크게 확대됐는데, 이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국정 인수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제16대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인수위는 색달랐다. 국정목표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를 내걸고, 국민참여형 토론 등을 강조하며 인수 활동을 했다. 시민(단체)과 학계, 외부 전문가 등 각계 각층의 의견을 두루 수용했다. 당시 노무현 당선인은 인수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회의를 직접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수위는 매주 1회 화요일 오전 9시 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업무 추진현황 등을 보고·공유했다.
파열음은 이명박(MB) 정부로 넘어갈 때 발생했다. MB 정부 인수위는 내실 강화에 초점을 두고 밤낮 없이 활동했다. 이명박 당선인은 특히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강력한 업무 추진력을 선보였다. 이 과정에서 참여정부의 철학·가치를 허무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내놔 노 전 대통령과 갈등을 키웠다. 노 전 대통령은 "인수위는 기존 정책이나 당선자의 공약에 찬·반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며, 호통 치고 자기반성문 같은 것을 받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고 비판했다.
다른 갈등 요인은 대통령기록물이었다. 참여정부는 MB 정부에 대통령기록물을 넘기면서 일부 매뉴얼을 제외하곤 서류함과 컴퓨터를 깨끗이 비워 다툼이 일었다. 이번 인수 때 이 같은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장 최근 꾸려진 박근혜 정부 인수위는 조용히 움직였다. 하지만 '철통 보안'을 강조하면서 소통에 소홀해 '불통'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구성도 다소 늦었으며, 새로운 정책을 발굴하기보다는 대선 공약을 구체화하는 데 중점을 둬 역대 가장 소극적인 인수위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