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사태에 곡물·에너지가격 비상...물가도 급등세

2022-03-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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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곡물과 에너지가격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우리 경제에도 수급 불안정과 고물가 등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망과 우리 경제에 대한 영향 및 대응방안’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의 상품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으므로 러시아와 서방 간 대립이 우리나라 교역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에너지와 광물수입에서 해당 국가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 수급 등에 있어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러시아의 상품수출과 수입규모는 각각 1.55%와 2.82% 수준을 나타냈다. 우크라이나 역시 상품 수출과 수입 비중이 0.1%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러시아 디폴트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둔화 영향은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와 부품, 화장품 수출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원자재 수입 역시 제동이 걸릴 여지가 높다. 대러시아 수입 비중이 높은 석유제품과 원유, 천연가스, 석탄 등 원자재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러시아산 우라늄은 전체 우라늄 수입에서 카자흐스탄 다음으로 많은 33.8%를 기록했고 합금철·선철과 고철, 금·은·백금 수입 비중은 각각 11.5%, 9.7%를 기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로부터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네온과 크레온을 수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네온가스 공급의 70%를 점유하고 있어 수입의존도가 크다.

연구소 측은 “우리나라는 우라늄과 백금, 고철 등 광물 제품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면서 “러시아와 서방의 상호 제재로 원자재들의 수입이 제한되거나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이번 사태가 이미 치솟은 국제 곡물 가격에 기름을 부을 여지도 높다. 우크라이나는 주요 곡물 수출국으로 해당 국가의 옥수수와 밀 수출량은 각각 세계 3위, 4위다. 해바라기씨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미 개전 이후 호밀과 귀리, 기장, 메밀, 소금, 설탕, 육류, 가축의 수출을 중단한 상태다.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또한 세계적인 곡물 생산국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의 전세계 밀과 옥수수 수출량을 합치면 각각 29%, 20%에 달할 정도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전 세계 곡물 공급이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연구소 측 시각이다. 이미 밀 가격은 지난 2020년 4월과 지난해 12월 사이 80%나 올랐다. 지난 1일(현지시각)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의 5월물 밀 선물가격은 5.35% 상승해 부셸당 9.8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9.85달러에 거래됐던 2008년 4월 4일 이후 최고치다.

보고서는 이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주요 수출곡물의 국제시장 공급 제한에 따른 가격 상승 가능성이 있고 국내 수입물가 상승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이번 사태로 농산물 가격과 광물 및 원자재의 공급 제한이 가격 상승으로 확대돼 국내 업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연구소 측은 국제가격 상승이 전망되는 곡물과 에너지, 광물 등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수입과 수출 노선을 다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연구소는 "전쟁 발발 시 유럽시장에서의 천연가스 가격 급등으로 LNG 현물이 유럽으로 집중돼 아시아 LNG시장의 현물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면서 "원자재 수급 동향과 가격 변동 추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수출과 수입 다변화를 위해 공급망을 재점검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날로 확산되고 있다. 수입 단가 상승에 따른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 악화를 비롯해 국내 물가 인상 압박과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병합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오른 당시 상황보다 여파가 더 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글로벌 주요국들의 제재 수위가 높아지면서 유가도 치솟고 있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2월 넷째 주 두바이유 평균 가격은 95.0달러로 전주(92.1달러) 대비 3.1%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평균 가격인 73.2달러와 비교하면 두 달 만에 30% 가까이 오른 수치다. 국제 유가는 지난해부터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3.2%를 기록하며 9년 8개월 만에 3%대에 진입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물가쇼크'가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와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5일 공동 성명을 내고 "양국 간 전쟁과 그에 따른 제재가 세계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줄 것"이라며 "물가 쇼크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특히 가계 지출 중 식비와 연료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저소득층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이 수정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미 한국은행은 유가 상승을 반영해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1%로 조정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로 오르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1%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물가가 2.2%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올해 경제전망에서 물가상승률이 1.7%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정부와 KDI 모두 국제유가가 70달러라는 가정 하에 물가상승률을 예상했다. 정부는 6~7월께 발표하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KDI는 5월 발표할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물가 예측치를 수정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부 전문가들 역시 "3%대를 이어가던 물가상승률이 4%대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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