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사, 우크라 대피 완료...러시아 영향 '예의주시'
4일 해외건설협회(해건협)에 따르면, 지난해 이후 국내 건설사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수주한 금액은 각각 300만 달러(약 36억2100만원)와 17억8450만 달러 수준이었다.
국내 건설사의 우크라이나 진출은 1993년 삼성물산의 마카예프카제철소 슬래그 처리설비공사(300만 달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13개사가 3억1000만 달러 규모다. 러시아의 침공 사태 전까지도 3개사가 6건(1020만 달러) 시공 중이었다. 다만 지난달 22일 러시아의 군사작전이 시작되면서 우크라이나 현지에 감리·용역 업무 수행을 위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국내 건설사 소속 노동자 4명은 인근 국가로 대피한 상황이다.
사태 초기 국내 건설사의 러시아 사업장의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파악됐다. 시공 현장이 우크라이나 전선과는 다소 떨어져 있기에 여파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건설업계는 러시아에서의 해외 수주건에 대한 피해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 국내 건설사가 러시아에서 체결한 주요 사업은 크게 3건으로 꼽힌다.
DL이앤씨는 지난해 3월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인 가즈프롬네프트와 3000억원 규모의 모스크바 정유공장 현대화 사업을 진행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1조6000억원 규모의 대형 가스화학 플랜트 사업인 발틱 콤플렉스 프로젝트를 수주한 상태다. 해당 사업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서쪽으로 110㎞ 떨어진 우스트-루가 지역에 단일 생산 라인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폴리머 공장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DL이앤씨는 2015년 현지에 법인을 설립하며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해왔다.
현대엔지니어링의 경우, 러시아에서 국내 건설사 최초로 EPC(설계·구매·시공)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쪽 1500㎞에 위치한 오렌부르그주 부주룩 유전 지역에서 러시아 민간석유기업 노비포톡과 가스의 정제 처리 공장·유틸리티·부대 설비를 건설하는 1000억원 규모의 EPC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계약 후 아직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최근 러시아 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중국 국영 건설사 CC7과 러시아 발틱 에탄크래커 프로젝트의 설계 및 조달 업무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액은 약 10억 유로(약 1조3721억원)로 오는 2024년까지 계약 업무를 완료할 계획이었다.
이와 관련해 해건협은 양국에서의 사업 중단 상황은 불가피하지만, 국내 건설사의 피해 영향은 미미하다면서 향후 사업 재개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시 상황에 돌입한 우크라이나 현지에선 수주 활동과 수행 사업이 모두 중단할 수밖에 없지만, 이들 사업 자체는 적은 수준이기에 영향이 미미하다는 평가다.
러시아의 경우, 국내 건설사 전체 수주액의 1.8%에 불과한 수준이라 큰 영향이 없지만, 대러 제재로 국내 기업의 철수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퇴출 등 금융제재로 시공 중인 공사의 기자재 수급과 공사대금 수령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러시아 내 신규사업 발주 역시 불가하고, 신규 사업 발주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러시아 현지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국내 기업도 국제사회 제재의 영향에 휘말릴 수도 있다.
따라서 해건협은 각 기업의 발주처에 불가항력에 의한 사업중단을 통보하는 한편, 공사 지체 보상금 유책과 피해보상 청구 등에 대비해 전쟁 관련 변수와 현황을 미리 문서화할 것을 조언했다.
아울러, 해건협은 법무법인 율촌과 함께 오는 7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한 미국 등의 대(對)러 제재가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웨비나도 진행한다. 오성익 국토교통부 해외건설정책과장·이백순 율촌 고문의 인사말과 각 전문가의 주제 발표를 통해 대러 제재 상황을 공유하고 현지 진출 국내 기업들의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 정부, 기업 피해 최소화 위해 전방위 대책 모색 중
한편, 이번 사태로 국제유가와 식료품 가격 인상을 비롯해 △시멘트 △철근 △알루미늄 등 원자재·건자재 가격 상승도 불가피해지면서 국내 기업과 경제에 대한 영향 역시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각 관계부처는 태스크포스 중심의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경우, 해건협·현지 진출 국내 기업과 함께 '긴급 상황반'을 운영 중이다. 지난달 22일 1차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현지에 파견된 국내 건설 노동자들의 대피 현황을 파악했고, 지난 2일에는 대러 국제 제재 강화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국토부는 제재 기업 명단과 세부 제재 내용을 파악하고 시나리오별로 대응 계획과 현지 진출 기업의 대응 방안 등을 수립할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하 전략물자관리원에 국내 기업 등을 대상으로 취급 제품이 수출통제 품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전담 창구인 '러시아 데스크'를 가동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중소기업 피해 접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또 중기부는 대러시아·우크라이나 수출 비중이 큰 중소기업을 '특별관리 대상'으로 분류하고 이들 기업에 최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해수부는 태스크포스 중심의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고,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수산물 물가와 해운운임 변동 등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정부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사태 비상대응 태스크포스 회의도 진행하고 있다. 전날인 3일까지 총 10차례의 회의를 개최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불가피한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 등에 신용보증 무감액 연장과 보험금 신속보상 등 무역금융을 지원하고, 이와 별개로 최대 2조원 규모의 긴급금융지원 프로그램도 가동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