㉓옛 해동주조장과 해동문화예술촌

2022-02-1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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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과 문화예술 센터로 변신한 양조장

1960~1980년대 읍이나 면 단위의 중심 지역엔 어김없이 양조장이 한두 개씩 있었다. 술을 빚어 도매로 넘기기도 하고 주전자를 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소매로 팔기도 했던 양조장. 20세기 우리 일상에서 양조장만큼 삶의 애환이 깃든 공간도 드물 것이다.
우리에게 양조장이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20세기 초였다. 조선시대엔 집에서 술을 빚었으나 1909년 주세법, 1916년 주세령이 시행되면서 가양주(家釀酒)가 금지되었다. 모든 술은 허가받은 양조장에서만 생산해야 했고 집에서 술을 빚으면 불법 밀주(密酒)로 취급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양조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양조장의 등장은 일제 식민지정책의 산물이었지만 우리 일상에서 필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양조장은 그 지역의 상징이 되었고 양조장 집은 그 지역의 유지로 대접받았다.
 

옛 해동주조장 정문을 되살린 해동문화예술촌 입구. [사진=이광표]

1980년대 말 무렵부터 막걸리가 밀려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이후 양조장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막걸리가 다시 인기를 끌면서 양조장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막걸리뿐 아니라 수제맥주, 와인, 전통주까지 양조장이 늘어났다. 양조장을 탐방하고 즐기는 문화도 생겼고 양조장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담양읍에는 해동주조장이 있었다. 50여 년 동안 운영되다 2010년 폐업한 뒤 한동안 방치되었으나 지금은 문화예술공간 해동문화예술촌으로 다시 태어났다. 해동주조장의 역사는 1950년대 말~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담양중학교 인근에서 유류 판매업을 하던 조인훈은 선궁(仙宮)소주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소주 판매가 활성화되자 그는 1966년경부터 양조 시설을 확충했다. 주변의 땅을 매입하고 규모를 키워나갔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그 무렵 소주 중독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그러자 단속이 강화되었다. 전라남도 위생당국은 소주에 함유된 유해성분(에탄올)에 대해 점검을 했고 1968년 이 과정에서 선궁소주가 에탄올 함량 초과로 판매중지 처분을 받았다. 해동주조는 고민 끝에 소주를 포기하고 해동막걸리, 해동동동주로 주종을 바꾸었다.

옛 해동주조장을 활용한 박물관은 주조장의 역사와 흔적을 보여준다. [사진=이광표]

영세한 양조장의 난립을 막고 유통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1973년 규제를 가했고 이로 인해 전국의 막걸리 양조장은 2600여 개에서 1500여 개로 줄었다. 해동주조장도 양조 시스템을 더욱 체계화해 1974년 공식적으로 사업 등록을 했다. 그 후 해동주조장은 번창했다.
그러나 막걸리 소비가 점차 줄어들었고 2003년 조인훈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장남인 조영규 대표가 해동주조를 이어받았지만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 2010년 4월 문을 닫고 말았다. 폐업 이후 해동주조장은 방치되었다. 해동주조장의 물품들은 여기저기 팔려나갔다. 담양의 대표적인 산업시설이자 담양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공간은 그렇게 문을 닫았다. 그때, 해동주조의 역사를 보여주는 물품들이 적잖이 사라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2016년 담양군은 이 공간에 주목했다. 근대기의 산업공간, 생활공간을 되살려 문화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시기였다. 해동주조장 건물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었다.
해동주조장 일대는 2019년 6월 복합문화공간인 해동문화예술촌으로 다시 태어났다. 담양군은 해동주조장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교회 건물과 옛 담양의원의 안채 건물을 매입해 문화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해동주조장의 막걸리를 담아 자전거에 실어 배달하던 말통.[사진=담양군 문화재단 제공]

해동주조장은 2017년부터 보수 및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안채 한옥, 문간채(초창기 주조장) 기술자 숙소, 주조장(양조장), 차고, 유류고 등을 수리해 문화공간으로 바꾸었다. 해동주조장의 역사와 흔적 등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공간, 기획전시를 여는 갤러리, 어린이 문화예술터, 북카페, 식당, 회의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가장 두드러진 곳은 역시 주조장 아카이브. 엣 주조장 건물의 천장 트러스 구조를 노출시킴으로써 근대 건축물의 분위기를 살렸다. 해동주조장의 역사, 주조장의 산업적 문화적 의미와 가치, 막걸리 제조과정 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사업자 등록증과 장부 등의 서류, 선궁 소주의 병과 라벨, 해동막걸리 말통(곡식, 액체, 가루 따위를 한 말 분량으로 담을 수 있는 통)과 광고 현수막, 금고 등등 해동주조장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막걸리 양조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 술 익어가는 과정을 소리와 영상으로 재현한 공간도 있다.

해동주조장의 안채 마당에 지하수를 끌어올리던 펌프가 보인다. [사진=이광표]

아카이브 공간 옆의 안채도 매력적이다. 한옥인 안채는 해동주조장을 이끌었던 조인훈 일가가 1990년대까지 생활했던 곳. 건물은 1960년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당은 널찍하고 정원도 단정하게 조성되어 있다. 연못과 우물과 장독대가 있고 추억의 펌프도 있다. 안채는 남향이어서 햇볕도 잘 들어와 포근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전해준다. 안채의 일부 공간은 북카페로 조성했다.
근대 건축물 분위기가 아니라 새로 지은 유리 건물도 있다. 이곳은 해동식당 ‘치도’다. 청년창업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멕시코 음식 전문점. 치도는 스페인어로 “매우 좋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식당에 들어서자 멕시코 음식 특유의 향이 코를 강하게 자극한다. 2층과 옥상에 올라가보니 해동문화예술촌의 여러 건물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유리 건물이 주변의 근대 건축물과 낯선 조화를 이뤄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 식당 덕분에 해동문화예술촌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해동문화예술촌 아르코 공연연습센터 내부. 교회 예배당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사진=이광표]

해동주조장 바로 옆에는 아르코공연연습센터가 있다. 옛 교회 예배당을 매입해 지역 주민들과 예술인들의 활동 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이 건물은 예배당이었기에 내부 공간이 높고 널찍하다.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천장의 목조 트러스. 원래는 막혀있던 것인데 천장을 터 트러스를 노출시켰다. 근대 건축물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함이다. 그 트러스 아래 정면 벽에는 ‘천년 담양’이라는 문구와 심벌마크가 표시되어 있다. 벽의 창들은 담양군 12개 읍면의 심벌마크를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해놓았다. 담양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짙게 배어난다.
해동주조장 맞은편에는 옛 담양의원의 안채 건물이 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우람한 솟을대문. 원래 위치에서 약간 옆으로 옮겨 해동주조장의 입구와 마주보도록 했다. 위치를 옮기면서 기단부(받침)를 약간 높여 육중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대문에는 ‘추자혜’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추자혜(秋子兮)는 담양의 백제시대 때 지명. 대문 뒤쪽에는 큼지막한 한옥을 지어 담양군문화재단 사무실로 쓰고 있다. 마당에는 장독대와 연못을 만들고 이런저런 조형미술품을 설치해 놓았다. 양조장 건물과 마주보고 있는 한옥의 육중한 솟을대문. 그 낯선 만남이 신선한 분위기를 연출하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옛 담양의원 안채의 솟을 대문. 편액의 '추자혜'는 백제시대 담양의 지명.[사진=이광표]

해동문화예술촌을 운영하는 담양군문화재단은 이곳을 ‘예술로 문화를 빚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해동주조장의 아카이브 공간 입구엔 ‘문화를 빚다’라고 씌어 있다. ‘빚는다’는 표현은 이곳이 주조장이었음을 강하게 드러낸다. 한 시절, 막걸리를 빚어 담양의 산업을 이끌고 많은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고 풍류를 북돋운 것처럼 이 시대 담양의 문화예술을 멋지게 빚어내겠다는 뜻이리라. 해동문화예술촌의 김옥향 학예사는 이 공간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2010년경부터 담양에서 시각예술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습니다. 그러한 분위기가 해동문화예술촌 조성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관람객들을 만나보니 주조장 아카이브 전시공간에서 더욱 적극적인 체험을 희망하더라고요. 앞으로 해동주조장과 관련된 자료를 더 수집해 그것을 좀 더 입체적으로 전시하고 양조 체험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싶습니다.”해동문화예술촌의 출발점인 양조장의 흔적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해동주조장 안채에 마련된 북카페.[사진=이광표]

해동문화예술촌은 담양 지역 원도심 활성화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결실 가운데 하나다. 성공 비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공간이 양조장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시절 우리네 삶의 흔적이었기에 양조장의 의미는 두드러진다. 해동문화예술촌을 찾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양조장을 만나고 경험하고 그것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 기억을 통해 담양의 한 시대를 만나고 담양 사람들의 숱한 사연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 사연은 다채롭고 드라마틱할 것이다. 해동문화예술촌에서 그런 의미와 스토리를 더욱 적극적이고 입체적으로 제공해주길 기대한다. 양조장의 힘이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후원=담양군(군수 최형식) 뉴파워프리즈마(회장 최대규)

참고문헌
1.국립민속박물관 《우리 술문화의 발효 공간, 양조장》, 2019
2.담양군․담양문화재단 《해동주조장 아카이브 - 간극의 기록》,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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