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 대선에 부는 중풍(中風)

2022-02-0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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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동계올림픽 '한복공정' '편파판정' 대선 변수될까

윤석열 후보, 혐중 마케팅…국익 위한 실용외교와 배치

보수표 결집에 도움, 중도층 표심 '찻잔 속 태풍'


▶북풍·병풍·일풍의 히스토리
선거 때마다 바람(풍·風)이 분다. 그 바람을 타고 승기를 잡아야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유권자들의 표심, 마음을 흔드는 바람 말이다. 그런데 그 바람을 억지로 만드는 ‘정치 공작(工作)’도 있었다. 또 교묘히 유권자들의 성향, 불안, 혹은 기대심리를 이용하는 일종의 여론 조작도 있다.
 
1997년 15대 대선, 보수진영 이회창 후보 측 인사가 북한에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총풍(銃風)이 있었다. 2002년 대선에 다시 도전한 이회창 후보는 ‘범죄인’ 김대업이 일으킨 이 후보 아들 병역 의혹, 즉 병풍(兵風)에 무너졌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대선 때마다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북풍(北風)이 따라 다녔다. 2012년 18대 대선에선 보수진영이 ‘노무현 대통령 NLL 포기 발언’ 논란을 일으키며 ‘신(新)북풍’을 제기하기도 했다.
 
2020년 총선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이 ‘노 재팬’ 반일감정 이슈 몰이, ‘일풍(日風)’을 일으켜 재미를 봤다. 당시 보수 야당 지도부는 미국을 찾아 “총선 전까지 도널드 트럼프-김정은, 양자 북·미 정상회담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미풍(美風), 트럼프 바람이란 뜻의 ‘트풍’까지 나왔다.
 
▶3월 대선에 중풍(中風)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3월 9일 20대 대통령선거에는 이렇다 할 바람이 없었다. 선거 때마다 나왔던 ‘○○풍’이라는 신조어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개막하면서 중국이 한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중풍이 불 조짐이다.
 
4일 중국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한복 입은 여성이 등장, 문화공정 논란이 시작됐다. 여야 대선 후보 공히 중국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사드 배치 이후 경제 보복,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역사 왜곡, 김치 원조 논란 등을 거치며 한국인들에게 반중(反中)정서가 누적된 터.
 
급기야 7일 밤 벌어진 쇼트트랙 스케이팅 경기에서 일어난 편파판정 시비는 활활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한복(韓服)이 한푸(漢服)에서 비롯됐다는 중국의 주장은 어이없을 뿐 아니라 중국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중화주의의 비뚤어진 모습이다. 스포츠에서 판정 시비는 자주 있는 일인데, 유독 중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한국이 피해를 볼 때가 더 많고 심하다.
 

8일 중국 베이징 메인미디어센터(MMC)에서 열린 쇼트트랙 편파판정 관련 대한민국 선수단 베이징 동계올림픽 긴급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용 반중·혐중
대선 후보들은 한복 공정에 이어 편파판정에도 일제히 항의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7일 페이스북에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편파판정에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우리 선수들이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력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단 여러분이 진정한 승자”라고 적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선수들의 분노와 좌절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선수들이 공정이라는 문제에 대해 많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8일 페이스북에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올림픽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 그 어느 올림픽보다 공명정대한 올림픽이 돼야 한다. 우리 선수들 힘내시기 바란다. 진정한 승자가 누군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고 썼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쇼트트랙 편파판정으로 우리 선수들의 금메달을 도둑맞았다. 중국 심판단의 못된 짓에 국민과 함께 분노한다. 중국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스포츠인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스스로 잘못된 판정을 바로잡을 것을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서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여기까진 충분히 대선주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윤석열 후보의 앞선 혐중(중국 혐오) 조장은 표에 도움이 될지언정 외교의 기본, 국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윤석열 후보는 지난해 12월 28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서 “한국 국민들, 특히 청년들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1월 30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외국인 건강보험 관련 글을 올리며 중국을 겨냥했다.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 해결”이라는 사실상의 공약 발표였다. 외국인 중 중국 국적자(대부분 조선족)들이 우리 건강보험 혜택을 부당하게 많이 받고 있다는 주장이었는데, 팩트가 틀렸다. 2018년 기준 중국인의 국내 인구 비중은 1.5%인데, 건강보험 급여액은 0.8%다. 인구 수에 비해 건강보험 혜택은 평균 이하다.
 

왼쪽부터 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 대선 후보 [사진=연합뉴스]

▶중도층, 중풍이 '찻잔 속 태풍'돼야
반중 정서 왜곡의 극단화, 혐중까지 조장하는 정치적 표 계산은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서 곤란하다. 혐오를 조장하는 갈라치기는 국민의힘 특기인데, 특히 혐중은 대중 외교에 전혀 득이 되지 않는 접근이다. 자존심과 실용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외교가 한·중 양국 간 문제 해결에 절실하기 때문이다.
 
반중 정서가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을 거다. 특히 반중 정서가 강한 보수 지지층이 결집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 정권교체에 필사적인 유권자들이다.
 
그럼에도 중도층 표심은 일부 후보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는 반중, 극단적인 혐중 정서에 휘둘리지 않을 거다. 이념을 떠나 ‘먹고사니즘’을 위한 실용적인 대중 접근을 우선해 생각할 듯하다. 중풍이 선거의 본질이 되지 않는, 찻잔 속 태풍으로 여기는 상식이 필요하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교수(중국어문화학과)는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정치권의 중풍에 대해 이렇게 꼬집었다. “일국의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민감한 외교 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표를 얻기 위해 혐오 정서에 잽싸게 올라타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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