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동유럽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러시아가 미국과 서방이 우려하는 대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다면 그 후폭풍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러시아 사이의 최대 완충지대이자 '유럽의 화약고'로 불린다. 만약 현 상황을 외교적 해법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이곳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는 대혼란의 수렁 속에 빠져들 위험이 크다. 미국 등 서방세계는 우선적으로 군사적 대응보다는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에 대한 첨단 기술의 수출 통제 또는 금융·경제 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세계경제는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자산시장 거품과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인 상태다. 과연 올해 지구촌은 동유럽발(發) 지정학적 갈등으로 확산되는 '경제 신냉전'의 초대형 태풍을 피해갈 수 있을까?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사태 문제 해결은 그의 정치적 생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난 1년간 초라한 국정 수행 성적표를 받아 든 바이든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은 곧 동유럽 평화와 국제질서 수호자로서 미국의 위상은 물론 자신을 심각한 리더십 위기에서 구원하는 길이다. 그가 최근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을 진두지휘하며 취임 이래 가장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황제'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분쟁 지역 접경에 10만 병력을 집결시켜 긴장을 고조시키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표면적으로 미국과 서유럽의 집단 안보 기구인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우크라이나가 가입한다면 러시아 안보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명분이다. 러시아가 나토의 동진(東進) 중단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푸틴은 이미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이번 사태를 통해 큰 승리를 거두었다. 즉, 러시아가 유라시아의 최대·최강 반서방 세력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계기로 만들고 있다. 21세기 들어 국제질서가 미국과 중국(G2)의 양강 체제로 급속히 전환하는 가운데 푸틴은 이번 사태를 통해 러시아가 중국 못지않게 미국의 버거운 상대임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푸틴의 안갯속 전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는 '음흉한' 푸틴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쉽게 알 수 없다. 그들은 대규모 전쟁까지 불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전면전을 감행하기 전에 폭탄테러 협박 등 비(非)군사적 수단으로 우크라이나에 불안과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 러시아의 주장대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혀 고려하지 않거나 아니면 우크라이나를 인질 삼아 '벼랑 끝 전술'로 서방의 양보를 최대한 이끌어내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지난 수년 동안 러시아와 서방세계가 가장 심각한 유럽의 안보 위기인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지난해 말부터 국경 인근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기 시작하자 그때서야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은 황급히 외교적인 협상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하고 있으나 양측 간 입장 차이가 너무 커서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미국 주도의 서방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번 사태에 대응할 것인지는 러시아의 추후 움직임에 달려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혹독한 서방의 고강도 제재로 인한 경제적·정치적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전면전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낙관은 하고 있다. 그러나 예측 불허의 전략을 즐겨 쓰는 러시아에 대한 분석가들의 진단은 과거 잘못 짚은 경우가 많았다. 러시아는 2008년 8월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막식 날 조지아 침공을 개시했다. 2014년에는 자국에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닷새 만인 2월 28일 크림반도 심페로폴 국제공항을 전격 점령했다.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이나 직후 우크라이나를 기습 침공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초대된 푸틴 대통령은 지난 4일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담하고 개막식에 참석한 후 서둘러 귀국했다. 7일에는 모스크바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나 우크라이나 국경지역 긴장 완화 방안을 논의했다. 푸틴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군사적인 방법으로 크림을 반환하려 시도한다면 유럽 국가들은 자동으로 러시아와 무력 분쟁에 끌려 들어오게 된다"고 경고했다. 같은 날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를 만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대책을 논의했다. 두 정상은 외교적 해법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독일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직접 들여오기 위해 추진 중인 '노르드스트림-2' 프로젝트가 중단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당장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역은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등 동유럽 인접국가와 발트해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이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의 안보위협 직접 영향권에 들게 된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나토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등 주요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로 직접 군대를 파병하지는 않겠지만 회원국인 인근 국가들에 병력과 군사장비를 추가적으로 배치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장악한다면 유럽은 과거 동서 냉전 시대로 돌아가 유럽의 동쪽 가장자리는 서로 적대적인 대규모 군대가 상시 대치하는 모습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에 구(舊)소련 몰락 이후 그동안 겪어 보지 못한 가장 심각한 안보위기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침공이 가져올 경제적인 파장은 지금으로선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 시 고강도 수출 규제를 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일부 국가들은 미국의 제재 방안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가 제재에 대한 보복 조치로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공급 중단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비중은 약 35%나 된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공급이 줄고 긴장이 높아지면서 유럽 내 천연가스 가격은 폭등했다. 에너지 시장의 혼란과 더불어 흑해를 지나는 곡물 수출이 차질을 빚으며 보리·밀·옥수수 등 세계 곡물가격 폭등은 불가피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카자흐스탄·루마니아와 함께 세계 4대 곡물 수출국이다.
미국의 보복 카드
미국이 지역 패권의 복원을 노리는 러시아의 야심을 차단하기 위해 당장 쓸 수 있는 카드는 수출과 금융 거래 규제 등 경제 보복 조치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 조치를 유럽 국가들이 흔쾌히 따를지는 불확실하다. 최근 동맹의 가치보다는 자국 우선주의로 치닫는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 회복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에너지 자원을 무기화할 경우 러시아의 경제적 손실이 훨씬 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서방국가들과 대(對)러시아 제재의 가장 효과적인 카드로 러시아 금융회사들에 대해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접근을 차단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러시아가 스위프트에서 퇴출되면 러시아와 외국 금융기관 간 자금 송금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즉, 러시아로 통하는 달러 공급선이 봉쇄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스위프트에서 배제될 경우 유럽에 대한 가스·석유 수출을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강력한 제재가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무엇보다도 유럽 동맹국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현실적으로 러시아에서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이 절실한 독일 등 일부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 완벽한 보조를 맞추기는 힘들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의 연대 움직임일 것이다. 미국이 외교적으로 보이콧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정상회담을 하고 반미(反美)·반서방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에 동조하며 나토의 세력 확산 움직임에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다. 중국은 또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확대해 재정적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추이를 어느 나라보다 면밀히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의 요구에 굴복한다면 중국도 러시아를 따라 대만 통일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세계경제가 흔들리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는 더욱 험난해진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미국과 중국이 대만 문제를 놓고 군사적 충돌로까지 간다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는 우리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격랑에 휘말릴 수도 있다.
지난해 8월 미국의 갑작스러운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유럽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독자적이며 자율적인 안보 역량 강화로 쏠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침체된 세계경제의 회복 여부를 결정할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실험하는 무대다. 유럽은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인 미국과 동맹 관계에 금이 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동시에 유럽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아무 때나 갑자기 단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유럽에 최대 에너지 공급원인 동시에 최대 안보위협이다. 유럽 통합의 쌍두마차라 할 수 있는 독일과 프랑스도 정권이 바뀐 지 얼마 안 되거나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어 그들이 어떤 수위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응할지 불확실한 상태다. 유럽이 러시아와 어떤 관계를 정립할 것인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러시아의 패권 야욕은 계속 불타오를 것이다. 바햐흐로 국제 정세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이다. 이렇게 우크라이나 사태 우려로 각국이 초긴장하며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은 대선을 앞두고 '강 건너 불 구경'처럼 무관심한 모습이어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