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자동차의 심장이 바뀐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이 전기차 시대는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약 12년 전 필자가 ‘국내외 전기자동차 보급 동향 및 정책 제언'(2010)이라는 제목의 논단을 한 전문지에 게재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마치 다음 생애에나 벌어질 수 있는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가 되었다. 자동차의 심장이 엔진에서 배터리로 바뀌고 있다. 2021년 유럽에서는 전기차 판매량이 경유차를 앞질렀다. 전기차는 17만6000대 판매되었고, 경유차는 16만대 판매되었다. 유럽에서는 경유차 규제를 강화하는 데 반해 세계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출시를 가속화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유럽의 탄소중립 이행 계획은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강하게 규정하고 있고, 사실상 내연기관차는 가까운 미래에 판매가 어렵게 될 전망이다.
국내만 보아도 전기차로 대체되는 현상이 자명하게 드러난다. 2021년 전기차는 10만402대 판매되었고, 2020년 4만6,677대에서 2배 이상 늘었다. 정부는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확대하고, 전기 충전 인프라 보급 속도를 올리고 있다. 반면 노후 경유차에 매연저감장치 부착을 지원하거나 조기 폐차를 지원하는 등 노후 경유차 제로화를 추진하고 있다. 2021년 EU가 발표한 탄소국경조정제도 입법안이 승인되었고, 2023년 발효되어 시범운용기간이 끝나면 사실상 친환경차가 아니면 유럽에 수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유럽뿐만 아니라 ‘친환경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할 가능성이 높아 수출이라는 측면에서 전기차로의 대체는 필연적인 일이다.
전기차는 한국 수출의 효자 상품으로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2020년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수출이 각각 13.1%, 17.3% 감소했을 때 전기차 수출은 39.9% 증가했다. 2021년에도 전기차 수출은 51.7%나 증가했고, 약 70억 달러 규모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2022년에는 100억 달러 수출액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수출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 7.7%에서 2020년 12.3%, 2021년 15.0%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2022년 1월 7일 자동차 경주 역사상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자동차 경주장에 시속 300㎞로 달리는 레이싱카가 있고 관중도 있었지만, 운전자가 없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모터스피드웨이에서 열린 ‘자율주행 챌린지(Aotonomous Challenge)’에서 벌어진 일이다. 심지어 가로등마저 없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라이트를 켜지 않은 채로 달리는 자동차의 모습은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명장면 중 하나였다. 한 전문가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This technology is not vision based(이 기술은 시야(눈) 중심이 아니다).” 자율주행 기술 경주였지, 운전 실력 경주가 아니었다.
자동차 운행에 인간의 개입이 사라지고 있다. 인간은 눈을 통해 사물을 인지하고, 뇌로 판단하며, 팔과 다리로 제어했다. 자율주행차는 눈이 아닌 센서로 사물을 인지하고, AI가 판단하며, 제어기가 속도와 방향을 조절한다. 자율주행기술은 레이더, 라이더, 카메라 등의 인지기술과 인공지능, 차량용 소프트웨어 등의 판단기술, 구동장치(Actuator) 등의 제어기술, V2X(Vehicle to Everything) 통신 네트워크로 구성된다. 특히 라이다는 대상물에 레이저를 비춰 사물과의 거리 등을 감지할 수 있는 기술로 사람의 눈을 대신한다.
주요국들은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할 수 있는 여건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의 자율주행 기술 및 산업 정책의 모티브는 선제적 규제 완화에 있다. 웨이모, 모빌아이, 모셔널, 엔비디아, 아르고 AI, 크루즈 등 자율주행 세계 최정상 기업들이 미국에서 급성장하게 된 배경이다. 일본도 자율주행 상용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2023년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레벨(Level) 4 무인버스 운행을 허가할 계획이다. 독일은 2021년에 이미 세계 최초로 레벨 4 자율주행차에 대해 도로 주행을 허용하는 법률을 시행했다. 한국에서도 2020년 5월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고, 자율주행차 활성화를 위해 전용면허제 도입 및 보험 신설 등과 같은 제도 정비가 한창이지만, 여전히 느리다.
모빌리티, 생각이 바뀐다
‘만들어서 판매’하는 방식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생각 자체가 바뀌고 있다. 이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생태계가 바뀌고 있음(MaaS·Mobility as a Service)을 뜻하기도 하고, 자동차 산업이 아닌 모빌리티 산업으로 콘셉트의 전환이 일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동차 구독서비스가 확대되고, 다양한 모빌리티 플랫폼을 이용해 이용자 편의가 확대되는 것도 자동차 제조업에서 모빌리티 서비스업으로 개념의 전환이 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통적인 자동차 강자들 외에도 IT 기업 혹은 통신사들이 모빌리티 산업에 뛰어드는 이유다. 웨이모는 미국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완전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하고 있다. 2009년부터 자율주행차 개발에 착수했고, 승객 수천명을 태우고, 총 200억마일 이상을 주행했다. 웨이모는 자율주행기술을 트럭에도 적용해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화물 운송 기업인 JB헌트와 협업을 확대해 물류 분야 자율주행에 뛰어들고 있다.
혁신의 아이콘, 애플이 내놓을 ‘애플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2024년이면 애플카 생산이 시작될 전망으로,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통합해 나갈 것이다. 자동차에 전자제품을 싣는다기보다는 스마트폰에 바퀴를 단다고 생각해도 괜찮겠다. 사람은 자동차를 타고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현실(VR) 콘텐츠를 즐기는 등 메타버스를 앞당길 것이다. 통신사와 콘텐츠 회사들도 자율주행차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SDV 시대, 무엇이 필요한가
자동차는 더는 하드웨어가 아니다. 소프트웨어다. 자동차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3가지 트렌드를 축약한다면, SDV(Software Defined Vehicle)다. 소프트웨어로 통제되며,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다. 이는 곧 자동차 산업의 가치사슬이 변신하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SDV는 디자인 단계부터 생산 단계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이용하는 과정까지도 거대한 변신이 시작됨을 뜻한다.
모빌리티 산업이 한국을 이끌 미래 주력산업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산업 정책도 변신해야 한다. 첫째, 자동차의 경쟁력은 주행거리가 될 것이다. 한 번 충전해 더 멀리 달리기 위해서는 경량화 소재 개발과 배터리 고도화가 동시에 요구된다. 경량화 소재 및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 니켈,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을 안정적으로 조달받는 것도 로드맵 안에 있어야만 한다. 둘째, 규제가 산업의 변신을 막아서는 안 된다. 자율주행의 주요 기술인 무선소프트웨어업데이트(OTA·Over The Air)조차 아직 막혀 있다. 자동차관리법상 정비업체를 방문해야만 자동차 업데이트가 가능하다. 제작 안전기준상 레벨 4 자율주행차는 출시조차 어렵다. 셋째, 모빌리티 플랫폼 시장에도 경쟁력이 필요하다. 플랫폼이 주는 효용과 경제적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치사슬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주지하고, 산업의 경계를 그어놓고 고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산업이든 막론하고 전문가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해 새로운 가치사슬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센터 본부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