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 초조한 시장···기업실적·소비 개선에 비관론은 다소 줄어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2%로 31년 만에 최대폭으로 폭등했으며, 유럽의 10월 물가 역시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이처럼 물가가 오르자 당장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중앙은행에 긴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15일(이하 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즉각 금리인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미국 기업들의 실적 개선과 16일 발표된 소비지표는 시장에 퍼진 비관적 전망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있다. 16일 미국 상무부는 10월 소매판매가 지난달보다 1.7% 증가해 7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오른 물가가 소비 증가에 반영됐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3분기 미국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호실적을 기록한 것을 미뤄볼 때 소비의 실질적 증가가 있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유로존도 물가상승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유럽연합(EU) 통계당국 유럽통계청(Eurostat)은 지난달 29일 유로존 국가들의 10월 물가가 지난해 대비 4.1% 상승했다고 밝혔다. 2008년 7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올해 4분기 전문가들이 2021년과 2022년 연간 인플레이션을 각각 2.3%, 1.9%로 지난 3분기에 비해 각각 0.4%p(포인트), 0.2%p 상향 조정했다. 여기에 유럽은 소비가 다소 주춤하고 있다. 유럽통계청은 5일 유로존의 9월 소매판매가 지난달 대비 0.3% 하락했다고 밝혔다. 시장의 전망치 0.3% 증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역시 물가 상승세에도 좋은 기업 실적을 기록하며 성장 여력을 보였다. 16일 기준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의 IBES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3분기 STOXX600 기업 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4.8% 증가했을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 경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물가는 오르고 있지만, 경제성장률이 목표치를 달성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3%에 그쳤다. 이에 따라 앞서 정부가 올해 연간 목표치로 제시한 4.0%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달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에 맞춘 방역 체계 전환이 시작되면서 소비 심리에 훈풍이 불고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19 신규확진자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불안 요소다.
문제는 물가상승세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7일 '우리나라와 미국의 주요 물가 동인 점검' 보고서를 내고 글로벌 공급 병목 현상의 영향과 방역체계 개편에 따른 수요 증대로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내년 후반기까지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스태그플레이션 현실화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10%대 인플레이션에 0% 성장률을 보인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은 불가능할 것"이라면서도 "5% 인플레이션에 1% 성장 같은 '축약형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다"고 말했다.
반면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3%대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건 조금 이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이 조금 빨리 진행될 수는 있어도 아직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부 역시 과도한 우려는 경계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 등을 보면 내년 글로벌 경제는 3~5%대 회복세를 보인다"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지적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단 1명이 제기했고, 그나마도 크게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