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증시에 입성한 공모주의 옥석이 가려지고 있는 가운데 '구주매출'의 비중이 투심을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구주매출이란 상장을 하면서 기존 주주의 보유 지분 중 일부를 공모 과정에서 매물로 내놓는 것을 말한다.
지난 21일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이하 시몬느)이 상장을 철회했다. 계획대로라면 카카오페이와 같은 25일부터 일반 공모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시몬느 측은 수요예측 결과 회사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수요예측에서 미달을 기록했다는 후문이다.
시몬느는 지난 2015년 사모펀드 블랙스톤PE가 3000억원을 투자해 주식 954만주(30%)를 보유 중인 곳이다. 이번 기업공개를 통해 블랙스톤 측은 이 주식의 70%인 669만5000주를 구주매출 형식으로 공모주 투자자들에게 매각하려 했다. 기업공개로 상장되는 주식의 80%(구주매출 비중)였다.
이대로 진행됐다면 블랙스톤 입장에서는 공모가 밴드 상단을 기준으로 구주매출 수익 3207억원, 잔여지분 가치는 1363억원을 기대할 수 있었다. 수익을 더해 투자금을 회수하며 상당한 규모의 잔여지분까지 남기는 것이다.
게다가 블랙스톤 측은 지난 6년 동안 배당수익으로만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챙겨갔다. 그야말로 이번 공모가 그대로 진행됐다면 블랙스톤 측으로서는 대박이 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관투자자들이 이런 구조의 기업공개를 용인하지 않은 셈이다. 보통 기업이 상장을 할 때는 조달하는 돈의 대부분을 회사가 사용할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고 일부를 투자자의 수익회수에 쓰이곤 한다. 하지만 이번 시몬느의 상장 구조는 조달 자금 대부분이 블랙스톤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됐다.
기관 수요예측 결과 블랙스톤 측은 구주매출 수익이 3000억원을 밑돌 것으로 예상되자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내년 2월까지 상장예비심사효력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공모 구조를 바꾼 뒤 재상장에 도전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구주매출 비중이 높다면 성공적인 상장을 보장하기 힘들다.
시몬느 외에도 구주매출 비중이 높았던 기업들이 공모 과정과 이후 거래에서 저조한 실적을 보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상장에는 성공했지만 경쟁률과 상장이후 주가가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케이카도 구주매출 비중이 높았던 종목이다. 케이카는 구주매출 비중이 90%가 넘었다.
케이카의 수익성이 준수하다는 점은 시장에서 이견이 없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늘고 있으며 시장 점유율 또한 높아지고 있어 안정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하지만 케이카는 기관수요예측 결과 40:1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올해 상장을 진행한 기업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 13일 상장 이후 주가도 지지부진하다. 공모가 2만5000원을 겨우 회복하고 이후 큰 변화가 없다.
투자자들이 외면하는 이유는 구주매출이 꼽힌다. 케이카는 한앤코오토서비스홀딩스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한앤코오토서비스홀딩스는 지분의 25.5%인 1226만2067주를 이번 공모를 통해 내놓았다. 공모 물량의 91.07%에 달한다. 그 결과 기업공개를 통해 케이카로 실제 유입되는 금액은 약 287억원에 불과하다.
구주매출 비중이 50%에 달했던 롯데렌탈도 상장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롯데렌탈의 상장은 3대 주주인 그로쓰파트너와 4대 주주 롯데손해보험이 보유지분을 전부 공모시장에 내놓는 구조로 진행됐다.
구주매출 비중을 감안해 할인율을 높게 잡아 공모가를 낮췄으나 지난 8월 기관 수요예측과 공모 청약에서 각각 217대 1, 6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기업 인지도와 공모 규모에 비하면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장 이후 주가는 계속 하락하면서 현재 공모가(5만9000원)보다 낮은 3만9000원 선에서 거래 중이다.
반면 구주매출 비중이 낮은 회사들은 기업 공개와 상장 이후 주가 흐름에서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기관 수요예측과 일반 청약을 진행한 현대중공업과 카카오페이의 경우 구주매출이 없는 100% 신주발행으로 상장을 진행했다. 기관 수요예측 결과는 현대중공업이 1835대 1, 카카오페이는 1714대 1을 기록하는 등 시장의 호평을 받으며 상장을 진행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비상장 기업 투자 이후 상장을 통해 엑시트(자금 회수)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중요하다"며 "배당이나 M&A 등으로 투자금 회수를 다변화하는 것이 기업의 가치를 흔들지 않고 안전하게 엑시트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장 시 지분 분산 요건을 맞추거나, 과거 삼성생명과 같이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구주매출 비중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공모주 투자의 인기에 기대서 수익률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려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