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ESG 채권은 모두 1등급이다. 무차별한 1등급은 ESG 채권 평가의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시장이 태동기다 보니 '그러려니'할 뿐이다.
'묻지마 1등급'이란 오명 하에 놓인 ESG 채권 평가 시장에 국내 한 신용평가사가 합리적 차별을 위한 새로운 평가 제도를 신설했다.
21일 한국기업평가는 '기후 전환 금융 인증 평가 방법론'을 발표했다. 기후 전환 금융은 탄소집약적 산업의 2050 탄소중립 이행방안을 지원하기 위한 금융상품으로 한국기업평가는 기후 전환 금융상품을 평가대상으로 한다.
ESG 채권 평가, '중간고사 전 벼락치기' 가능한 OX 퀴즈 형태
환경 관련 채권 평가는 올해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고 평가될 만큼 시장이 커졌다. 커진 만큼 부작용도 상당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1등급이다. 아주경제 자본시장부가 21일까지 국내 신용평가 3사가 평가한 102곳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 평가를 취합한 결과, 102곳에 이르는 국내 기관과 기업에 대한 평가는 모두 최고 등급이었다.
전문가들은 '1등급 100%'현상에 대해 "평가항목이 OX 퀴즈처럼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프로젝트(투자처)가 주요 평가항목이다. 프로젝트의 투자 비율을 제외하면 100점 혹은 0점뿐이었다. 0점이 예상되는 기업은 자체적으로 최고 등급을 받을 상태를 만든 이후 ESG 채권 평가를 받으면 됐다.
더 큰 문제는 현행 평가 기준으로는 앞으로도 등급 '차별성'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데 있다. 마치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공개된 평가 기준에 맞춰 대비하면 최고 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평사 관계자는 "ESG 채권 평가는 투자처가 중요한데 적격한 투자처가 아니면 평가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성적 평가보다 정'량'적 평가에 치우쳐 있는데 정량적 평가 항목의 세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자체적으로 ESG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절차가 있는지 △내부의 공식적인 절차가 있는지 △내부에 보고하는 공식적인 절차가 있는 등을 체크하고 제대로 작동할 경우, 최고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같은 프로세스 준수 여부는 ESG 채권을 발행할 만한 주요 대기업이라면 쉽게 통과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주요 대기업들은 내부적인 프로세스를 갖추는데 익숙하다"며 "ESG 평가가 아직 중소·중견 기업까지 확산되지는 않았기에 프로세스 평가에 차별화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벼락치기는 더 이상 No
기후 전환 금융은 '미래가 아닌 현재'가 된 탄소 중립 요구와 궤를 같이 한다. 지난 2010년대 중반 파리협정에서는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보다 훨씬 낮은 `1.5℃ 이하'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했다.
지구의 기후 전환이 벼락치기로 될 수 없듯이 평가 항목에도 장기적인 항목이 반영된다. 이는 '발행사의 기후 전환 전략 및 거버넌스'란 평가항목으로 구현될 전망이다. 아직 구체적인 평가(기후 전환 금융 Taxonomy) 기준은 발표되진 않았으나 △발행사의 장기 전환전략이 파리협정 목표와 일관성을 지니는가? △발행사의 전환 전략에 장기 전환전략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목표가 존재하고 일관성을 지니는가? 등이 주요 질의사항 임을 고려할 때 장기적인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지 않은 기업들은 최고 등급(탁월)을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즉, 장기적인 계획 수립 여부를 통해 채권 발행사의 적극적인 의지를 간접 평가하는 셈이다.
한기평 관계자는 "ESG채권 평가는 투자처가 가장 중요하다 보니 프로세스 관련 부분은 부수적이다"면서 "하지만 기후 전환금융은 '2050 탄소 중립 전환 전략'과 같은 프로세스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전략은 1달 만에 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과거부터 계획을 갖고 전략을 수립한 기업만이 `탁월' 등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