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는 도시개발업자가 '용역깡패'에 비교되더니 이제 화천대유 때문에 온갖 부정부패,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업계요? 실망을 넘어 절망입니다."
최근 만난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자) A에게 화천대유 사태에 대한 업계 분위기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십수년간 디벨로퍼로 일하면서 크고 작은 오해에 시달렸지만 요즘처럼 직업 자체에 대한 인식히 싸늘해진 적은 없었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디벨로퍼 전용 커뮤니티에는 "청춘을 바쳐 일했는데 3년 일하고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는 '어나더레벨(디벨로퍼)'의 세상이 있다는 걸 이번 사태를 통해 알았다"면서 "억울하다는 감정도 안든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얼마나 더 많을까 하는 생각에 허탈하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또 다른 관계자는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온 내 모습이 누군가에겐 '개·돼지의 몸부림'이었냐"고 말했다.
A와 처음 만난 건 2년전 이맘 때다. 멀끔한 정장에 뒷축이 다 무너진 운동화를 신고, 커다란 백팩을 맨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카페로 들어왔다. 그는 "개발 중인 신도시 횡단보도 설치 문제 때문에 담당 공무원을 설득하느라 진을 다 뺐다"며 "이쪽으로 길을 내면 아이들이 더 안전하게 등교할 수 있는데 공무원들이 사고 위험 때문에 허가를 안내주고 있어서 1년을 설득했다. 마침내 오늘 허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1ℓ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횡단보도"고 덧붙였다.
그날, 그의 모습은 꽤 오랫동안 멋진 기억으로 남아있다. 몽둥이를 들고 철거민들을 구타하던(?) 스크린 속 디벨로퍼의 모습은 그날 이후 기자에게 도시의 작은 영웅으로 기록됐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A와 비슷했다. 그들은 아파트 앞 어린이 전용 통학로, 작은 쉼터 앞 벤치 등 일상의 평온이 될 도시 시설물을 하나라도 더 설치하기 위해 공무원들을 수천, 수만번 만난다.
개발에 성공해놓고 자취를 감추는 디벨로퍼도 허다하다. 개발사업의 리스크가 워낙 높아 단 한번의 실패로도 재기가 불가능할 만큼 처참하게 망가지기 때문이다. 강남에서도 VIP들이 입주 대기 순서를 기다리는 고급빌라 'ㄱ'를 성공시킨 디벨로퍼 B는 사업 실패 후 업계를 떠나 지금은 시골에서 은둔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한 디벨로퍼 관계자는 "비정상적인 로비와 권력에 기댄 자들에게 항상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면서 "이로인한 분양가 상승과 부실시공, 도시 개발의 실패 책임은 결국 서민들이 떠안아야할 부채"라고 한숨지었다. '성공한 디벨로퍼는 검찰 앞에 서고, 실패한 디벨로퍼는 도시의 거름이 된다'는 원로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