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지역별로 온도차는 있다. 수도권과 지방으로 구분하면 그 격차는 꽤 크다. 수도권에서는 취업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지방에서는 365일 채용난이다. 젊은이들은 부푼 꿈을 안고 모두 서울로 떠난다. 지방에서는 일할 사람이 항상 부족하다. 경제적 자립도가 낮아 기업을 지원하는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에서 스타트업의 성공은 사막에서 생존하기와 같다.
대전 동구에서 8년째 모빌리티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김선호 새천년카 대표는 “지방에서 ‘벤처붐’은 딴 세상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는 제대로 된 창업지원기관은 물론이고, 투자 유치 프로그램, 스타트업 밀집 창업공간, 지방자치단체의 초기 창업 정책 등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개최하는 각종 간담회에 참석하며 지방 기업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대전시 동구 일자리경제 분야 명예구청장으로 일하며 활동의 폭은 넓어졌지만, 새천년카도 여전히 채용난에 시달리고 있다. 김 대표는 “인력 문제는 우리 회사만 겪는 게 아니다. 직원 구하는 공고만 1년 내내 올리는 기업도 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 지방에서 8년째 사업을 하고 있다. 새천년카는 어떤 기업인가.
- 사업하기도 바쁠 텐데, 대전 동구 명예구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평소에 청년 창업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대전 동구에서 나고 자라 사업을 하면서 지역사회 환원에 대해서도 꾸준히 생각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있어 대전 동구의 경제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 대표는 2019년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대전 지역 혁신가로 선정됐다. 같은 해 청년 기업인 과기정통부 장관상, 2020년엔 모범 소상공인 중기부 장관상도 받았다.)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서울에 왔다 갔다 한다. KTX를 하도 많이 타고 다녀서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사람을 만나려면 서울로 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연봉·복지 맞춰도 인재 찾기 어려운 현실
- 지방에서 사업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인재 채용이다.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낮지 않은 연봉과 복지를 내걸어도 사람이 너무 없다. 우리 회사는 기능직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다른 업종을 살펴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세종시에 있는 한 기업은 청년 직원을 구하는 일자리 공고만 1년 내내 올린다. 그 회사의 복지는 지방 기업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좋다. 초봉이 3400만원이고, 복지혜택으로 헤어숍 예매, 차 수리비 지원, 어버이날 선물 등을 제공하는데도 사람을 못 뽑는다.”
- 보통 지방 기업의 여건이 열악해 청년들이 지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역 사회의 일자리 부족 문제는 기능직에 국한되지 않는다. 디자이너, 개발자는 물론이고 사무직도 부족하다. 한 번씩 찾아오는 직원들은 3개월 정도 일하고 힘들다고 나간다. 몇 달 다니고 실업급여 받아야 하니까 권고사직해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다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이런 분위기가 깔려 있다.”
- 지방 기업 채용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젊은 인재들이 다 서울, 수도권으로 가기 때문이지 않겠나. 지방에서는 서울에 가면 양질의 일자리가 많고, 기본급이 높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대전시 동구 청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청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왜 대전에서 취업 안 하냐고 물어보면 ‘대전에는 기업이 없잖아요’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강소기업이 많은데도 말이다.
서울만 동경하는 시선을 바꿀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우리 지역에 강소기업은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도록 각 지자체에서 계속 홍보해줘야 한다. 젊은이들이 지역 회사에서 취업하고, 일하다가 또 그 지역에서 창업하고 선순환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계속 인재들이 유출되고 있다.”
- 홍보 부족의 문제만은 아닐 것 같다.
“물론, 서울 대기업이나 빅테크 기업으로 가면 실질 임금은 더 높다. 근무여건이나 문화 인프라 환경도 더 좋다. 대전만 해도 절대적인 기업 수가 적고, 판교 밸리 같은 지역도 없다. 아무리 지방에 살더라도 쿠팡, 배달의민족에 합격했다면 서울로 가야 하지 않겠나.
문제는 미스매칭이다. 서울에서도 모두 다 대기업 가고, 빅테크 기업에 취업하는 건 아니지 않나. 대전에 서울보다 더 좋은 기업도 많은데, 모든 인재가 다 나가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대전에서 강소기업에 취업하고 일할 수 있는 인재가 서울에서 비싼 집값과 물가를 감당하면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전문가는 없고, 브로커만 있다
- 지방의 열악한 인프라에 관해 여러 번 지적했다.
“인프라가 너무 없다. 각 지방에 창업 지원기관이 있다고 하는데, 청년 창업을 위해 제대로 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제 경험을 예로 들면, 법률상담을 받으려고 관련 기관에 물어보니 예산이 없다고 하더라. 서울에선 흔하디 흔한 법률자문도 지방에선 받기 어렵다. 여기선 투자 유치 프로그램이 거의 없고, 창업 밀집 지역도 부족하다.
대전만 해도 지방 최초로 팁스타운이 개관했지만, 홍보가 잘 안돼 지역사회에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공유 오피스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나마 있는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는 산업단지공단처럼 외진 곳에 있다. 창업공간은 제조 공단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과 어우러져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안 가는 지역, 교통이 안 좋은 지역에 위치한다. 일자리센터, 지식산업센터도 공실이 너무 많다. 밥 먹을 식당도, 변호사 사무실도 없으니 분양이 안 된다. 청년들이 모여서 커뮤니케이션하고,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진짜 창업 공간이 시급하다.”
- 창업에 대한 온도 차가 서울과는 상당한 것 같다.
“한 번은 일자리 담당 주무관을 만났는데, 해커톤(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팀을 이뤄 일정 시간 내 시제품 단계의 앱을 개발하거나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는 대회)이 무엇인지도 모르더라. 지식산업센터가 생긴다고 하면 홍보는 하는데, 정작 창업에는 큰 관심이 없다. 심지어 토스, 컬리 같은 유니콘 기업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매출 몇억원 안 나오는 작은 기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관공서에 창업 전문가는 없고, 브로커만 있다.”
- 지방 스타트업에 진짜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창업을 준비할 때와 창업 이후 기업을 운영할 때를 구분해서 지원해주면 좋겠다. '한 달에 식사비 60만원' 이런 지원 말고, 실제로 창업할 때 기업소개(IR) 자료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주고, 법률 자문과 투자 유치 상담을 진행하면 좋겠다. 또, 직원을 채용할 때 모집공고 광고비를 지원해준다거나 지방에서 취업한 청년들이 겪는 주거 문제에 도움을 주면 창업과 채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청년 내일채움공제 요건도 완화해야 한다. 요즘에는 채용 면접에서 5명 중 3명은 내일채움공제 가입되는지 물어본다. 지금은 34세 이하여야 하고 이전에 직장 다닌 기록이 없어야 하는데, 지방의 경우는 이 요건을 완화해야 하지 않나 싶다. 대학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 조금 다니다가 젊은 나이에 고향에 돌아와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있지 않겠나. 은퇴 이후에 고향을 찾는 것이 아닌 젊은이들이 지방으로 돌아와서 일할 수 있도록 계속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로필
새천년카 대표
대전 동구 제4대 명예구청장
대전동구청 일자리창출 위원
대전동구청 청년위원회 부위원장
소상공인진흥공단 혁신단원
벤처스타트업위원회 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