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인재근 의원 외에도 윤미향 무소속 의원과 더불어 민주당 의원 8명이 참여했다.
또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해 방송이나 기타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규정(제17조)도 신설했다. 다만 학문 연구나 예술적 창작 목적을 위한 행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목적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을 뒀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인 의원은 “최근 국내·외에서 일본군위안부 관련 역사를 공공연하게 부정·왜곡하고, 피해자를 모욕하여 그 명예를 훼손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피해와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며 “허위사실 유포는 피해자와 유족 등에게 모욕감을 주고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넘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내·외에 잘못된 인식을 전파·확산시킬 우려가 있다”고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나 유족 등이 형법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을 통해 권리피해 구제와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므로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더욱 강력하게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기존의 법보다 강하게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일본군위안부 피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이미 사망한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도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으며 '위안부' 피해 실태와 관련한 증거들을 조작, 날조, 왜곡, 인멸하는 경우에도 처벌을 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됐다.
일부에서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다"는 반대가 있었지만 양 의원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며 "일본군 '위안부'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반면 정치권·법조계 일부에서는 위안부단체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출신인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발의자에 포함된 점, 법안 내용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법률안에 부정적 시각도 제기된다. 윤 의원은 현재 정의연 후원금 유용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진행 중이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정부가 재단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며 "개인의 명예에 대한 보호는 이미 형법이나 민사상 손해배상 등으로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데, 위안부 피해자 관련 문제들에 대해서만 특별법을 따로 두는 것 자체가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같은 것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맹렬하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유승민 전 의원 측도 “윤미향 셀프 보호법”이라고 입을 모아 비판했다.
원 전 지사는 해당 법안이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을 내세우며 슬쩍 관련 단체를 끼워 넣기 했다”며 “윤 의원과 정의연 비리 의혹을 비판하셨던 이용수 할머니까지 위법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유 전 의원 캠프 측은 논평을 통해 “우리 아픈 역사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팔아 개인의 배를 채운 혐의로 기소된 윤 의원과 민주당 의원들이 이번에는 일명 ‘정의연 보호법’이라 불리는 셀프 보호법을 발의하고 나섰다”며 “피해자, 유족 또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단체의 명예를 가장 심각히 훼손한 자는 바로 윤 의원”이라며 “즉각 법안 발의를 철회하고 윤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윤미향 "수요집회 가면 '위안부'는 가짜라는 자들 설쳐" 반박, 직접 가 본 수요집회
윤미향 의원은 해당 법안이 위안부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안이라고 반박했다. 24일 국회에서 '아프간 여성 인권 보장을 위한 대한민국 여성 의원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윤 의원은 "일본 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가봐라"라며 "거기서는 예를 들면 '이건 가짜다, 사기'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안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법안 취지에 대해선 "법안에 대해서는 법안을 발의한 인재근 의원께 취지를 여쭤봐 달라"고 답했다. 야권의 '윤미향 보호법' 지적에 대해선 "법안 내용을 봐라. 윤미향은 지금 여기 있다"고 답했다.
대표발의자인 인재근 의원도 같은 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떤 취지에서 단체를 명기한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인 의원은 ‘야당에서 단체 비판을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는 질문엔 “비판할 건 비판하고…조문을 다 보고 판단을 하세요”라고 했다. 개정안에는 피해자와 유족을 비방할 목적이라는 단서조항이 있기 때문에 윤 의원에 대한 비판을 막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이날 집회의 주요 연설자로 참여한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이같은 '성노예는 없었다'는 식의 허위사실을 규제하지 않으면, 사실로 둔갑되거나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짜뉴스가 공론장에 끼치는 해악을 막기 위해 '위안부 명예훼손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박 의장은 "시민단체들은 처음에는 저런 (보수) 시위에 나온 사람들을 가볍게 생각했다"며 "(하지만) 8·15 광복절 집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위안부에 대한 허위사실에 세뇌되고, (허위사실들이) 사실처럼 확대되며 갈등구조가 심화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 '위안부 명예훼손'을 막는 법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보수를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유로운 주장이) 편향되지 않도록 올바르게 보호하고 지원하도록 국가의 역할을 높이는 것이 이 법의 취지(같다)"라며 의견을 밝혔다.
시위에 참석한 대학생들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현 정부가 정치적 우위를 점하려고 위안부를 이용한다'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를 동원한다'는 등의 보도를 많이 봤다"며 "(일본과의) 외교·경제적인 측면도 따져야 하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하나, 현 상황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교적 상황만 생각하지 말고, (할머니들의 인권을 위해) 허위사실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역사왜곡, 일본이 손놓고 있으니 한국이라도 방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의견도
이를 두고 위안부 문제 등 역사왜곡을 막자는 법안의 취지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제법 전문가인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명백한 팩트를 왜곡하는 것을 처벌하자는 것이 해당 법안의 입법취지인 것 같다"며 "표현의 자유가 있다 하더라도 '역사 자체'를 왜곡하고, 또 그 왜곡이 한·일간의 역사 정립에 있어 '중대한 나쁜 영향'을 미칠 때는 어떤 형식으로든 방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고 강조했다.이 명예교수는 이어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표현을 처벌하는) '홀로코스트 부정 방지법'의 경우, 나치들이 자행한 반인륜적인 전쟁 범죄를 반인륜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 법들이 독일뿐 아니라 유럽 각국에 있다"며 "대승적으로 독일 나치의 잘못을 다시는 인간 문명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큰 대의가 존중된 것 아니겠나"라며 "한·일간의 경우, (일례로 2015년) 일본은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에 있어서도 (과거) 자신들의 근대화만 강조할 뿐, 그 안에 희생된 한국인 강제노동, 피해자의 아품을 전시하도록 국제적 약속을 해 놓고 지키지 않았다. 이는 역사가 왜곡될 심각한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일제강점기 당시 가해국인 일본이 한국을 착취했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국내에서라도 역사 왜곡 방지를 위한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명예교수는 "독일은 가해국가 스스로 주류 양심 세력들이 주도해 법을 만들었다. 우리의 경우 일본이 그런 노력도, 사과도 않고 왜곡하고 있으니 우선 (국내적으로)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를 보호해 잘못된 역사왜곡이 유포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동기에서 입법 논의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정의기억연대 측은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내부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 정리가 된 후 알려드리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