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금융당국에 신고를 하지 못한 가상자산 거래소의 폐업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600만명 안팎의 투자자가 피해를 보고, 수 천명의 업계 종사자가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지난 20일 금융당국에 사업자 신고서를 제출한 업비트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서비스 중인 거래소 60곳 가운데 대부분이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고접수 위한 은행 실사가 투자자 보호 첫발”
업계는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거래소 신고 접수를 위한 은행 실사 평가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석원 한국블록체인협회 사무국장은 “가장 시급한 것은 은행들이 거래소에 대한 실사 평가에 적극 나서는 것”이라며 “은행 실사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당국에 신고 접수조차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용자 실명이 확인된 계좌를 발급해줄 은행의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한 것이다.
실제로 가상자산에 부정적인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은행들이 실사에 소극적이라는 볼멘소리가 거래소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김 국장은 “인터넷진흥원의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은 20개 거래소 가운데 16곳을 회원사로 뒀다”면서 “거래소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은행 실사에 대한 준비를 마쳐도 정작 실사에 나서는 은행이 없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정부의 거래소 옥석 가리기에 동의하면서도 ISMS 인증을 받은 20곳에 대해서는 은행이 실사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국장은 “ISMS 인증을 받은 거래소는 사업 의지가 강하고, 소비자 보호 등 자정 노력에도 적극적”이라며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 건실한 거래소는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의 호소에도 은행들이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줄폐업은 현실화되고 있다. ISMS 인증을 획득한 거래소마저도 은행의 평가 통과를 장담할 수 없어 신고절차가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거래소의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실사는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지평 디지털경제그룹 핀테크팀은 최근 특금법 분석 보고서를 통해 “시중은행으로 하여금 실명계정 발급을 강제할 수 없고 이는 여전히 은행과 사업자 간 사적 자치(계약)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면서 “결국 실명계정 발급 여부는 사업자의 자금세탁 위험에 대한 은행의 판단 및 평가 결과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특금법, 투자자 보호에 인색··· 대책 마련 시급
거래소들이 특금법에 따라 신고 절차를 마쳤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에 초점을 맞췄지만 투자자 보호 등 관련 내용은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 범위 제한 △가상자산의 범위 제한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발급 기준 마련 △가상자산 이전 시 정보제공 대상 및 기준 마련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등을 규정할 뿐 소비자 보호 부문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법 입법 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조명희·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등이 법제도 미비를 지적하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윤창현 의원실은 “전방위적인 이용자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서버 관리 문제, 접속불량 문제, 개인정보보호 이슈까지 업계와 협회가 한데 모여 최상의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