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대해 답답함을 털어놨다. 해당 정책이 오로지 탄소중립 하나만을 생각했을 뿐 국민경제에 대한 영향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 '2050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는 지난 5일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시나리오의 초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산업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까지 5310만톤(t)을 감축해야 한다. 2018년 대비 79.6% 줄어야 하는 수준이다. 그 중 산업권 탄소배출량 1위인 철강업계는 2018년 1억120만t 배출에서 2050년 460만t으로 95% 감축에 성공해야 한다.
정부는 현재 운영 중인 고로를 전기로로 전환하거나 수소환원제철 기술 도입 등을 감축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둘 모두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전기로만 활용해서는 질 좋은 철강 제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소환원제철도 막대한 도입 비용이 필요한데다 상용화가 가능할지 미지수라는 점이 문제다. 결국 가장 확실하게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철강제품 생산을 줄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중국의 행보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글로벌 대부분 국가가 철강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말 철강 부족 현상의 여파로 글로벌 철광석 가격이 지난해 5월 대비 2.7배나 올랐다. 글로벌 대부분 국가가 한시바삐 철광석을 사들여 철강을 만들려했기 때문이다.
국내 철강업체도 수출 물량을 줄여가면서 내수 공급에 힘썼지만 철강이 부족하다는 여러 산업권의 아우성이 많았다. 올해 5월 수도권 외곽 지역에서 조달청이 공공 발주한 교량을 건설하던 한 건설사가 공사를 전면 중단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조달청마저 교량에 활용할 철근(봉강)을 제때 구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도 조선·건설업계는 철강 제품 가격이 너무 높은 탓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2분기 대형 조선 3사가 철강 제품 등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2조1000억원이 넘는 충당금을 적립한 결과 한 곳도 빠짐없이 적자를 기록했다. 탄소중립이라는 나비의 날갯짓이 대형 기업의 수익성마저 흔드는 큰 태풍으로 비화된 셈이다.
탄소중립은 인류의 존속을 위한 시대의 사명이 됐다. 주요 국가와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원칙을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또한 이러한 흐름에 뒤쳐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탄소중립 계획에 매몰돼 국내 산업권이 흔들릴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급하게 마신 물은 체하기 마련이다. 탄소중립 계획의 현실성을 따져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