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공교육 정상화를 빌미로 사립 학교 퇴출 작업에 돌입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힘을 쏟고 있는 사교육 규제의 연장선상이다.
다만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이 같은 옥죄기가 자녀의 신분 상승을 바라고 교육에 목숨을 건 중국 부모들의 열정을 이겨 낼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19만개 사립학교 전면 재점검
중국 교육부 등 8개 부처는 이달 말까지 사립학교에 대한 일제 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학교 설립 및 운영, 재무 상태, 학생·교사 모집, 수업 내용, 행정 관리 등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2년 내 공립학교로 전환하거나 아예 학교 문을 닫아야 한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 전역의 사립학교는 18만6700곳으로 전체 학교 수의 3분의1 수준이다.
재학생 수는 5564만명으로 전체 학생의 20%를 차지한다. 초등학생의 16.8%, 중학생의 12.2%가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는 일본이나 유럽 등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일본은 전체 초등학생 중 사립학교 재학비율이 1.2%에 불과하고 중학생도 7%를 넘지 않는다. 유럽 역시 3~7%에 불과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의무교육에 해당해 국가가 직접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중국도 9년의 의무교육 제도를 두고 있지만, 사립학교 비중만 놓고 보면 사회주의 체제라는 게 무색할 정도다. 그만큼 공교육이 부실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국가교육자문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양둥핑(楊東平) 21세기교육연구원 이사장은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 사립학교 비중이 10%를 넘지 않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대도시는 물론 지방 도시와 농촌도 전체 학교 중 사립학교가 30~60% 수준"이라며 "이 같은 현상은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지적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학교로 돈벌이
2000년대 이후부터 중국 전역에서 사립학교가 우후죽순으로 생겨 났다.
개혁·개방의 진전으로 중국인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녀 교육에 대한 수요가 다양해진 영향이다.
개인과 기업은 물론 유명 공립학교까지 분교 형태로 사립학교를 설립해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다.
지방정부도 교육 예산을 줄이고자 사립학교 설립을 방조했다. '공퇴민진(公退民進·공립은 쇠퇴하고 민영은 흥한다)'이라는 말이 괜히 나도는 게 아니다.
양둥핑 이사장은 "사립학교는 영리성이 매우 강해 최근에는 대규모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았다"며 "자본과 부동산 시장까지 결합돼 이익을 도모한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종 부조리가 횡행한다.
사립학교에서 고액을 보장하며 우수한 교사를 빼 가는 바람에 지방과 농촌의 교사 수가 줄어들고 교육 환경이 더욱 열악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높은 진학률을 앞세워 성적이 좋은 학생을 싹쓸이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무엇보다 교육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얼마 전 톈진시가 관내 사립학교 학비 현황을 공개했는데 초등학교는 가장 비싼 곳이 4만8000 위안(약 851만원), 중학교는 15만 위안(약 2661만원)에 달했다.
지방의 한 공립학교 교장은 "예를 들어 부동산 개발상이 설립한 사립학교의 경우 기업이 번 돈으로 학교를 지원하는게 타당한데, 오히려 학교 운영으로 더 많은 돈을 번다"고 토로했다.
지나친 이윤 추구는 각종 사건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지역 명문인 청두 7중(중고교)이 설립한 분교 청두 7중 실험학교는 교내 식당에서 곰팡이가 핀 식재료를 사용하다가 적발돼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교육부 등은 지난 5월 '사립 교육 촉진법 실시 조례'를 수정하면서 의무교육 단계의 공립학교가 사립학교를 직접 설립하거나 설립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을 삽입했다.
또 '사립 의무교육 발전 규범에 관한 의견'을 통해 신규 사립학교 설립을 불허하고, 전체 학생 중 사립학교 재학생 비중도 5%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후난·장쑤·쓰촨성 등 지방정부도 2~3년 내 사립학교 제도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불타는 교육열 잠재울 수 있을까
당국의 팔 비틀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공립학교 전환을 선언하는 사립학교도 속출하고 있다.
상하이 장장지퇀학교가 대표적인데 푸둥신구에서 성적 1위를 놓치지 않던 학교다.
지난 5월에는 충칭시 내 사립학교 10곳이 공립학교로 전환하기로 했는데, 충칭 1중과 3중, 8중 등 지역에서 명문으로 이름난 학교들이다.
지난달 2일에는 쓰촨성 메이산시의 헝방자샹외국어학교 인가가 취소됐다. 이 학교는 오는 9월 공립학교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중국의 사립학교 때리기는 올 들어 수위를 높여 온 사교육 규제 정책의 일환이다.
중국 내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은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 증가와 사회적 위화감 확대라는 악효과를 낳고 있다.
신생아 출생이 6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질 만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진 요인 중 하나가 교육비 부담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구밍위안(顧明遠) 베이징사범대 교수는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사립 교육의 난맥상은 젊은 부모들의 불안과 부담을 가중시키고 인구 출생률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여러 정황상 사립 교육 정비와 규범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성토했다.
이어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고, 교육은 공익 사업"이라며 "자본주의 국가처럼 사립학교는 고비용·고품질, 공립학교는 저비용·저품질이 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2019년 기준 중국의 교육 예산은 5조178억 위안에 달해 수준 높은 의무교육을 할 능력이 충분하다"며 "질 낮은 사립학교를 퇴출시키고 국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국은 사립학교 정비 작업을 통해 명문 학교 인근의 이른바 '학세권' 부동산 가격까지 잡겠다는 각오다.
학세권 주택을 일컫는 쉐취팡(學區房)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상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쉐취팡 투기를 막으라"고 직접 언급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다만 정책이 중국 부모들의 교육열을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 역시 신분 상승 통로가 갈수록 좁아져 학부모는 자녀의 명문학교 진학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투기 세력이 뻥튀기해 놓은 수십억원짜리 쉐취팡을 망설임 없이 구매하는 것도 자녀들이 좋은 학군에서 공부하기를 바라는 일념 때문이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시 주석이 내년 재집권을 앞두고 사교육 문제 등 사회 혼란 요소를 일거에 정리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면서도 "위에서 정책을 만들면 아래는 빠져나갈 대책을 만든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이 있듯이 강력한 규제만으로 중국 부모들의 교육열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