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당신] “얕은 우물 여러 개 팝니다”…청년 사진작가 김용재

“우물을 파라, 물이 나올 때까지!”

서울 어느 오래된 식당(노포·老鋪) 벽에 붙어 있던 글귀다. 다분히 ‘꼰대’스러운 이 문장을 요즘 시대 이렇게 적으면 어떨까. “여러 우물을 파라, 물이 나오면 좋고 아님 말고!”

2021년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많은 청년들은 오늘도 우물을 판다. 먹고 살기 위해, 만들고 싶은 미래를 위해. 크고 깊은 우물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각자 처한 상황과 계획에 따라 자기 우물을 파는 거다. 한 우물을 파는 이들도 있고, 여러 우물을 파기도 한다. 하지만 물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땅을 파다보면 물이 아니라 다른 뭔가를 찾을 수도 있으니까.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다른 땅으로 옮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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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라는 넓은 땅에서 중국 유학, 환경 협치기구 활동, 야생동물 사진작가, 유튜버 등 여러 분야에서 즐겁게 분투 중인 청년을 만났다. 우물을 화두로 받았다.

평일에는 환경 관련 일을 하고, 주말에는 야생동물을 촬영하는 유튜버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김용재(29)는 여러 우물을 파면서 그 아래를 연결하는 통로를 찾고 있다고 했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터, ‘우물을 왜 팔까, 그리 힘들고 어려운 곡괭이·삽질 안 하면 되잖아?’라고. 그는 즉시 답했다. “우리 삶에 자연과 동물이 없다면 얼마나 쓸쓸할까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구, 그런 미래를 막는 일을 하는 겁니다. 제가 좋아해서요!”
 

사진전 '생명의 숨소리', 김용재 작가 [사진=한승욱]
 

사진전 ‘생명의 숨소리’가 열리고 있는(8월 12일까지) 서울 인사동 '문화공간 KOTE'에서 그를 만났다. 이 사진전은 국내 새(조류) 사진 최고 권위자인 김연수 교수(한양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전 문화일보 사진부장)와 김 작가가 공동 개최했다.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 부자(父子)다. 또 이들은 야생동물 사진 부자(富者)다. 김용재 작가 인터뷰는 7월 하순 서면, 현장 대면 등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여러 우물, 그 통로
그는 “우물을 여러 개 파놓으면 우물과 우물 사이에 통로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서로 연결되는 것 같다. 여전히 무언가를 찾는 중”이라고 말한다.

김용재 작가는 중국 동북임업대 야생동물보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 대학원에서 조경학을 공부했다. 20대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그는 요즘 평일에는 환경 협치기구(녹색서울시민위원회)에서 일한다. 주말에는 야생동물을 찾아 산, 들, 강, 바다, 갯벌로 향한다. 아버지와 '따로 또 같이' 작업한다. 시간 날 때마다 사진을 정리하고 영상을 편집한다. 유튜브 채널 ‘K-Wild’(본문 맨 아래)에 수달, 황새, 점박이물범, 장다리물떼새 등 한국 야생동물을 담은 동영상 콘텐츠를 올린다.

▷녹색시민위원회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녹색서울시민위원회는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환경정책과에 있는 민관 거버넌스 기구다. 환경 보전을 위한 거버넌스에 관심이 있었는데 군대(해경)를 제대하고 생태보전시민모임 민성환 대표 권유로 들어오게 됐다. 기후대기, 생태, 환경보건, 자원 순환, 환경교육에 관련해 서울시에 정책 제안을 한다. 홍보물 및 소식지 작성, 국제협력 지원, 시민 참여활동 운영 등도 맡고 있다. 간사로 활동하는 2년 동안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환경 분야의 쟁점을 가까이서 접했다. 서울시가 정책적으로 어떤 선한 영향력을 추구하는지, 또 탄소중립 2050을 위해 어떤 실천지침 등을 마련하고 추진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려는 내 개인의 삶과 서울시와 녹색서울시민위원회가 가려는 방향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야생동물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나.
사진을 찍기 시작한 계기 같은 거창한 건 없다. 그냥 좋아하는 대상을 찍다보니 그게 자연스럽게 생태사진이 됐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곤충이나 동물에 관심이 있었고 좋아하는 대상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중국 유학 중 야생동물 보호학과로 진학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중국 내몽골 습지에서 시베리아흰두루미와 황새 무리가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연습을 하는 광경을 봤다. 그때까지는 카메라를 들고 야생동물 사진을 찍게 될 줄 몰랐다. 높은 곳으로 날아올라가는 새 무리를 보며 열심히 눈으로만 담았다. 따로 사진을 배운 적은 없다.

▷청년들은 좋아하는 분야를 찾기 힘들다. 비교적 빨리 찾은 것 같은데.
나도 뭔가 뚜렷한 걸 찾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이렇게 전시회도 할 수 있게 됐다. 한 우물만 깊게 파지 말라고 하지 않나. 여러 우물을 파야 할 것 같다. 야생동물에 중점을 두고 사진, 영상을 찍고 전시회를 여는 건 우물을 여러 개 파는 것과 같다. 우물을 여러 개 파니 우물과 우물 사이에 통로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서로 연결되는 것 같다. 토끼도 굴을 하나만 파지 않는다. 여러 굴을 파놓는다. 일단 얕게 많이 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나도 얕은 우물을 여러 개 파고 있고, 어디에 발을 담가야 할지는 아직 못 찾고 있다. 이게 뭔가 경제적인 활동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니까. 지금 하는 본업이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촬영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개인적인 삶의 만족이다.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나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 불만을 갖는다면 다른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야생동물 현장…전시
야생동물 사진을 찍고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원하는 작품이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그는 아쉽지 않다. 그 이유를 영화의 한 장면을 빌어 이렇게 설명한다.

“사진을 찍을 때 결과물보다 그냥 그 순간에 집중할 때가 있어요. 벤 스틸러 감독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처럼요. 눈 덮인 산속에서 기다리던 눈표범을 마주한 사진작가 오코넬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고 조용히 바라만 보는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 월터는 왜 사진을 찍지 않냐고 묻죠. 싸락눈 사이로 사라지는 눈표범을 보내고 난 뒤 오코넬은 대답해요. ‘정말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말야,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어. 그냥 이 순간에 머물 뿐이야.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오코넬은 눈표범을 마음 속에 새긴 것 같아요. 촬영하러 나갔다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바라만 보고 돌아오는 때가 있거든요. 사진을 찍는 ‘결과’에 집중하기보다 바라보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때요. 그런 공감대가 형성될 때 삶을 지탱하는 힘을 얻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사진=김용재 작가]

▷현장 나가기 전 계획하고 촬영하나.
계획하고 촬영하지 않는다. 어떤 종의 야생동물을 담아야겠다 정도의 목표만 설정해두고 나간다. 운이 좋으면 재미있는 모습들을 담지만 운이 없으면 수십 시간을 기다려도 발견하지 못한다.

▷현장에서 힘든 점은.
현장에서 어려운 점은 야생동물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가 아니다. 더위와 추위다. 여름에는 옷이 땀에 흥건하게 젖은 채로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니는 게 어렵고, 겨울에는 꽁꽁 언 발이 힘들다. 덥거나 춥거나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이동하는 건 고역이다.

▷찾았던 현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저어새 무리가 번식하고 쉬어가던 영종도의 습지가 기억난다. 1년 동안 영종도에 살았는데 틈만 나면 저어새가 먹이활동하고 쉬어가는 송산유수지와 홍대염전에서 모기떼에 잔뜩 물려가면서 저어새를 기다렸다. 영종도는 철새들이 쉬어가는 중요한 기착지인데 인근에 준설토 매립이 진행되고 있다. 더 당황스러운건 쓰레기 매립장 계획까지 추진됐다는 점이다. 해양에 건설되는 준설토 투기장으로 인한 갯벌소실, 쓰레기 매립으로 발생하는 해양오염은 새들의 휴식처가 사라지는 단순한 사실을 넘어 우리가 책임질 수 없는 거대한 재앙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즐거운 이 기억이 미래에도 회상할 수 있는 장소로 남아있길 간절히 바란다.

▷환경 파괴를 직접 목격하는 경우도 있겠다.
저어새 무리가 번식하고 있는 김포 앞바다의 매도라는 곳이다. 몇 달 전 저어새 둥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저어새는 지난해에 나온 명아주 줄기로 둥지를 짓는다. 그런데 둥지에 이상한 게 보였다. 둥지 안에는 폐어망, 날카롭게 조각난 플라스틱, 고무장갑, 과자봉지, 라면봉지, 종이컵 등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있었다. 둥지재료가 오죽 없었으면 이런 것들로 집 지을 생각을 했을까 싶다. 지난해 크리스 조던이라는 사진작가의 사진 중 죽은 알바트로스의 뱃속에서 온갖 플라스틱 덩어리가 섞여 있는 장면이 있었다. 먼 바다 너머의 일이 아니라는 걸 저어새 둥지에서 직접 확인했다.
 

저어새의 쓰레기 둥지. [사진=김용재 작가]
 

▷가장 좋아하는 야생동물은?
두루미 종이다. 전 세계에 15종의 두루미가 있는데 그중 재두루미, 흑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 쇠재두루미, 검은목두루미가 매년 겨울 우리나라를 찾는다. 이 새들의 이동경로를 쫒아가겠다고 중국의 동북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과 내몽골의 습지, 양쯔강 중하류를 누비고 다녔다. 흰색과 검정이 환상적으로 대비를 이루고 있는 두루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하다. 평화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두루미는 우리나라를 찾는 대표적인 멸종위기종 중 하나지만 번식지와 일부 월동지가 중국, 러시아, 일본에 분산되어 있어서 두루미의 서식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나라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동북아시아 각국의 협력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수적이다. 이 새들이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검은꼬리두루미  [사진=김용재 작가]

▷가장 보람 있었던 때는.
- 중국 북서부 칭하이성(靑海省) 출장 중 버스로 16시간 걸리는 티베트의 고원지대에 검은꼬리두루미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버스표를 끊었다. 검은꼬리두루미가 나타난 위수현은 해발 4200m, 고산병은 생각도 못하고 버스에 탔다. 밤새 뜬 눈으로 가는 동안 감기와 고산병이 동시에 찾아와 몸은 녹초가 됐다. 실제 위수현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6시간 정도, 그 후엔 돌아오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6시간 동안 길이 14㎞, 폭 3.5㎞의 강과 습지대에서 몇 마리 없는 검은꼬리두루미를 찾기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같은 무모한 일이었다. 출발 2시간여를 앞두고 꽁꽁 언 강 위에서 쉬고 있는 검은꼬리두루미 한 쌍을 드디어 발견했다. 그때의 희열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지난해 개인전시회도 열었다.
지난해 개인전 제목은 '꿈결 같은 만리 길'이었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들의 험난한 여정이 꿈결 같지만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다. 제목을 통해 이 야생동물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자연상태의 아름다움이나 안타까운 상황을 알리고 싶다.

그는 이 전시회를 영상으로 만들어 이런 글을 함께 적었다.

이 전시회에 선보인 사진의 주인공들은 특정한 서식환경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멸종위기종이다. 특히 두루미와 저어새 종(種)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월동지와 번식지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주하며 살아간다. 이들의 이동은 목숨을 건 여정이다. 꿈결 같지만 멀고도 험난한 길. 고향 땅으로 돌아가 가족을 꾸리려는 꿈을 품고 떠나는 먼 여정. 그들의 평온한 안녕을 기원하며 오늘도 자연의 삶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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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같은 만리 길' 출품 사진  [사진=김용재 작가]
 

◆‘아빠 찬스’ 아닌 ‘아빠 마이너스’
고관대작(高官大爵)의 자녀들이 대를 이어 부와 권력, 명예를 누리는 ‘세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는 말이 입에 착 붙는다.

하지만 김 작가에게 ‘아빠 찬스’는 없다. 아버지 김연수 작가는 40년 가까이 야생동물 사진, 특히 새 자신을 찍어온 최고 권위자다.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 ‘사라져 가는 한국의 새를 찾아서’, ‘바람의 눈’ 등의 저서를 통해 환경생태, 야생동물 사진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하지만 아들에게 아빠는 ‘찬스’가 아니라 되레 ‘아빠 마이너스’였다. 어릴 때는 새에 미친 아빠 때문에 새를 싫어했다. 지금은 둘도 없는 동료, 동반자지만.
 

김연수(오른쪽), 김용재 부자. [사진=김용재 작가]
 

▷어릴 적 아버지와 어땠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나.
어릴 때는 새를 지독하게 싫어했다. 아버지 일도 별로 안 좋아했다. 주변 친구들은 주말에 아버지랑 공도 차고 피시방도 가고 노는데 저는 스무살 이전에 같이 뭔가를 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새를 찍거나 쫓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은 변하더라. 환경과 사진에 대한 활동은 그냥 스펀지에 물 스며들 듯이 시작하게 됐다. 좋아하는 게 같으니까 같이 활동하면 편하더라. 아버지 일, 취미를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도 문제 아닌가, 하하.
부담이 많이 된다. 36년 경력의 대선배를 모시고 다니니까.(웃음) 촬영 나가면 대화는 거의 안 한다. 둘 다 기다리고 있는 대상에 집중하고 촬영 끝나고 집에 갈 때가 돼서야 신나게 이야기를 나눈다. 또 서로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재미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그런 아들에 대해 김연수 작가는 “아들과 함께 인생의 황금기를 만나고 있다”고 활짝 웃는다.

◆한국 야생동물 콘텐츠, K-Wild
한류를 상징하는 ‘K’가 여러 분야에 붙는다. 지난 5월 새로운 K가 등장했다. 한국의 야생동물을 전하는 K-Wild(케이 와일드)라는 유튜브 채널은 김 작가 부자가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다.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했나.
영상 편집은 전혀 생각 안 해봤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생명이 사라지고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는데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이미 그 생명이 없다면, 또 뿌연 기억처럼만 남아있다면 슬프지 않겠나. 그래서 사진을 찍다가 영상으로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록을 한다 해도 어차피 사라질 건데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이런 기록들이 필요한 건 나중에 수십 년 후 사람들이 ‘이런 새도 있었지’라고 슬픈 마음으로 회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록으로라도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K-Wild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나.
계절별로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야생동물이 다 다른데, 동물들은 같은 곳을 찾아오는 습성이 있다. ‘이때쯤 이 동물이 오겠구나!’ 할 때 습지와 바다, 강으로 가서 해당 야생동물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사람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라면 대본과 계획대로 촬영이 될 텐데, 야생동물은 뜻하지 않을 때 나타나기도 하고, 아예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도 해서 기약이 없다. 이런 한국의 고유하고 독특한 야생동물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
자연과 생태를 기록하는 데는 거창한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기록하는 걸 내가 좋아한다. 멸종위기종이나 야생동물을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은 이미 불타는 도서관에 뛰어 들어가 다시 못 펼쳐볼 책 제목을 적는 행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 글자라도 더 남기려 노력하는 이유는 아마 지구상에 우리 호모 사피엔스 종 하나만 남게 되었을 때의 적막감을 줄이고, 암울해지지 않기 위해서일 거다.

▷미래 불확실함, 막연함 등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도 매번 혼란과 두려움의 연속이라서 감히 말해도 되나 싶다. (미소를 띠며) 나도 왜 무섭지 않겠는가. 당장 한 치 앞도 안 보이는데. 어두운 길에 가로등이 켜져 있으면 따라가면 되는데,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막연한 불빛 하나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는 것 같은 희미한 불빛을 찾아 계속 걸어가는 거다. 결국에는 여러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함께하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힘이 되니까.

▷동물을 좋아하고 환경 관련 일을 하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주고 싶은 말은.
일단 계속 좋아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이걸로 경제활동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겠다. 하하. 좋아하는 일이 꾸준히 연결돼서 그게 자신의 직업적 성취랑 연결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지 않나. 그럼에도 생계를 위한 일과 좋아서 하는 취미를 너무 구분하지 말았으면 한다.

만약 어떤 회사원이 옛 문헌 수집을 일생의 취미로 가졌다고 치자. 이 사람이 죽기 전에 평생 수집해 온 조선의 고문서들을 나라에 헌납하면 그는 후세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그래서 그냥 일단 새를 보는 걸 좋아하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면 일단 계속 좋아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인터뷰 진행·정리=김성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