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맺은 사제간 ‘차(茶)약속‘...“바로 이맛일세“

2021-07-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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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따라 걷는 강진 여행

스승 존경하는 마음 차에 담아…‘이한영 전통차문화원’서 엽전 모양의 떡차 체험

정약용 발자취 남은 다산초당·백련사 숲길…강진만 생태공원도 꼭 가봐야 할 명소

‘이한영 전통차문화원’에서 경험해볼 수 있는 차기세트. [사진=강진군문화관광재단 제공]


“다산 정약용과 강진의 제자들이 맺은 ‘다신계(茶信契)'의 약속은 1818년부터 1918년까지 100년 동안 지켜졌습니다. 다산이 봄이 되면 기다렸던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는 신의가 있는 차입니다.”

‘이한영 전통차문화원’을 운영하는 이현정 원장의 설명을 들으니, 마시고 있던 차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향이 깊어 좋았던 차에는 100년이라는 시간과 사제 간의 끈끈한 정이 담겨 있었다.
문득 정약용과 제자들이 200년 전에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차와 똑같은 차를 마시면서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 상상을 해봤다. 전통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차 한 잔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정약용은 유배가 끝난 후에도 강진의 제자들과 연락을 계속 이어갔다. 제자들은 매년 공부한 글과 함께 스승이 좋아했던 차를 보냈다.

정약용이 차에 얼마나 조예가 깊었는지는 1830년 강진의 제자 중 가장 어렸던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지난번 보내준 차와 편지는 가까스로 도착하였네. 이제야 감사를 드리네. 다만 지난번 부친 떡차는 가루가 거칠어 썩 좋지가 않더군. 모름지기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아주 곱게 빻아야 할 걸세. 또 반드시 돌샘물로 고루 반죽해서 진흙처럼 짓이겨 작은 떡으로 만든 뒤라야 찰져서 먹을 수가 있다네.”

이시헌은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차를 만들었고, 정성스럽게 차를 만드는 비법은 후세까지 이어졌다.

우리 것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후손인 이한영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에서 난 차가 일본 차로 바뀌어 유통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우리 고유 상표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백운옥판차'다. 이는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차’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한영은 한반도 모양의 문양을 차에 새겼다.

현재 ‘이한영 전통차문화원’을 지키고 있는 이현정 원장은 이한영 선생의 후손이다. 이곳에서는 정약용이 마셨던 엽전 모양의 ‘떡차’를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엽전 모양의 ‘떡차’는 뜨거운 물에도 풀어지지 않으며 깊은 맛을 자랑한다. 선조들의 지혜를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현정 ‘이한영 전통차문화원’ 원장이 ‘백운옥판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전성민 기자]


정약용의 발자취는 강진 곳곳에 남아 있다. 다산초당은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을 집대성한 정약용이 18년간의 유배 기간 중 10여년간 생활하며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다. ‘다산학단’으로 일컬어지는 18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목민심서’를 비롯해 500여권의 책을 저술했던 조선 실학의 산실이다.

정약용은 초당을 가꾸는 데도 정성을 기울였다. 밭을 일구고 연못을 넓히고 집도 새로 단장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윤씨 집안의 산정은 다산초당으로 거듭난 것이다.

원래 초당은 무너졌지만 강진 다산유적보존회가 1958년 현재 초당을 다시 지었다. 추사 김정희가 쓴 ‘다산초당’ 현판을 볼 수 있다.

초당 뒤 바위에는 다산이 직접 깎은 글자 ‘丁石(정석)'이 새겨져 있다. 아무런 수식도 없이 자신의 성인 정(丁)자만 따서 새겨넣었다. 다산의 군더더기 없는 성품을 그대로 보여준다.

초당에서 만덕산 백련사로 이어지는 산길은 아름답다. 동백림으로 유명한 숲길은 조용하고 신비로웠다.

신라 말에 창건되어 1211년 원묘국사 요세에 의해 중건된 백련사는 1236년 백련결사 운동을 주창했으며, 고려 8국사와 조선 8대사를 배출한 명찰이다.

정약용은 다산초당에 있을 당시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가깝게 지냈다. 정약용과 혜장선사가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을 길을 따라 걸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산초당 [사진=전성민 기자]


역사와 함께 자연을 잘 보존한 곳이 강진이다. 강진만 생태공원은 꼭 한번 가봐야 할 장소다.

1131종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강진만 생태공원은 탐진강과 강진만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둑이 없는 열린 하구로 자연적인 기수역이 넓게 형성되고 3㎞의 생태탐방로와 20만 평의 갈대 군락지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수달·큰고니·큰기러기·노랑부리저어새·삵·꺽저기·기수갈고둥·붉은발말똥게·대추귀고둥 등을 볼 수 있는 장소다. 큰고니의 경우 매년 2500여 마리가 찾는다고 한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다. 갯벌에 사는 다양한 수천종의 생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큰 집게발을 가지고 있는 농게가 서로 싸우는 장면이나, 셀 수 없이 많은 짱뚱어가 꿈틀거리는 장면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새삼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강진은 통일신라 후반기부터 고려 말까지 청자를 굽던 곳이다. 강진 청자박물관에 가면 다양한 청자를 감상할 수 있다. 소장유물로는 고려청자 완품 100점과 청자 가마터에서 수습한 청자편 3만여점이 있다. 특히 청자편은 1991년에 강진군 내에 있는 188기의 청자 도요지에서 모은 것으로, 도요지별로 청자를 굽던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매년 10월에는 강진청자축제가 열린다.

강진 청자박물관에서는 청자 빚기 체험도 해 볼 수 있다. 손잡이가 있는 컵이나 호리병, 필구 등 원하는 모양을 선택한 후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표면에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 된다. 모양을 내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도 함께 할 수 있다. 만든 작품은 초벌, 시유, 본벌 소성 작업을 하기 때문에 완성까지는 60일 정도가 걸린다. 완성품은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한쪽에는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두 손으로 미세하게 힘을 조절해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볼 수 있다.

강진 청자박물관 바로 옆에는 한국 민화박물관이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민화 전문 박물관으로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생활민화 전시실, 춘화전시실, 4차원(4D) 가상 체험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산초당 뒤 바위에 다산이 직접 깎은 글자 ‘丁石’(정석) [사진=전성민 기자]


 

강진만 생태공원 [사진=전성민 기자]

 

강진만 생태공원에서 볼 수 있는 농게 [사진=전성민 기자]

 

강진 청자박물관서 도자기 빚기 체험을 하는 모습. [사진=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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