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 칼럼] ESG의 E, 녹색 금융과 세계화의 그물

2021-06-3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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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천망회회 소이부실(天網恢恢 疎而不失).

2000여년 전에 오늘의 세계를 내다보는 듯한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이다. ‘하늘의 그물은 촘촘해서 엉성한 것 같지만 빠져나갈 수가 없다’라는 뜻이다.

누구도 탈출하기 어려운 현대판 하늘의 그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세계적 금융화 현상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베르나르 마리스는 그의 2006년 저서 <케인스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에서 이렇게 적는다.

‘우리가 진입한 세계에서는 미국 연금저축을 관리하는 몇 사람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바뀜으로써 한국 노동자의 임금소득을 대거 축소하거나···’라고. 즉, 세계화 과정에서 금융이 세계적 분배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또한, 세계화를 주도한 금융이 지구촌 기후변화의 운명을 가를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성장 정체와 저금리 그리고 저물가, 부채 증가, 자산가격 버블, 불평등 등등의 용어가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 경제의 걱정거리로 자주 등장한다. 더구나 이 골칫거리들은 코로나19 범유행 이후 그 추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한 처방은커녕 원인 규명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혹자는 이러한 추세가 자본주의 위기라고도 한다. 도대체 세계화란 무엇이기에 이런 골칫거리를 양산한 것일까?

대략 세계화가 시작된 시기는 1979년 마가릿 대처 영국 총리 등장과 뒤이어 1981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한 무렵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1970년대 석유 위기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수립으로 전후 세계 경제질서를 경영하던 케인스학파가 설명력을 상실했다.

이 틈을 타 자유주의 경제를 신봉하는 영국 보수당이 정권을 잡자, 몽펠르랭 소사이어티를 중심으로 한 신고전학파·통화주의자들이 와신상담, 세계경제 경영권을 잡은 것이다. 대처의 영국은 1986년 자본이동을 자유롭게 하고 금융 규제를 전면 철폐하는‘금융 빅뱅’을 시행했고 미국도 레이거노믹스로 동조하며, 세계화는 이후 40여년간 지구 주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세계화는 여행 자유화나 해외 주식의 손쉬운 매입 등 단순한 편의 확장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화 시대에는 달러와 유가, 금, 은, 원자재, 심지어 농산물 가격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이나 영국의 거래소 시장에서 결정되고, 세계 각국 산업과 우리 일상생활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세계화된 가격 시스템을 통해 (금융)선진국은 군사적·외교적 노력 없이 손쉽게 지구촌을 시시각각 조종할 수 있다.

한편 영국 경제학자 그레이스 블레이클리는 그의 저서 (금융도둑!, 2019)에서 세계화에 대한 놀라운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 뉴욕과 런던에 세계 최대 금융시장을 보유한 미국과 영국은 1980년 초부터 시작된 세계화를 ‘금융주도 성장 체제’로 몰아가고 있다.

이때 보수당 정부는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고, 그 수단으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한다는 명목 하에서 고금리를 통해 가계를 흔들었다. 기업의 통제에 노동자들은 불평등에 저항할 보호막이 사라졌다. 또한, 자본이동과 금융 자유화 결과, 막대한 규모의 자금 풀(펀드)이 형성되었고, 이를 운용하는 기관투자가와 금융회사는 그들의 투자처인 기업을 금융화했다. 기업은 신자유주의 경제관에 따라 이윤과 주주가치 극대화를 무자비하게 추구하기 시작한다.

기업의 생산함수를 구성하는 자본과 노동에 투자를 줄이고, 수익과 잉여자본은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에 투자해 투하자본수익률을 높이거나, 자사주 매입과 주주 배당을 통해 기업 주가를 높이도록 독려 받는다.

기업은 성장 수단으로 생산 대신 인수·합병에 집중한다. 금융회사는 궁핍한 노동자에게 대출을 통해 가계 또한 금융화했다. 부채가 부족한 가계소득을 보완하고 기업의 소비 수요를 충당하는 가계경제 구조가 만들어진다. 한편 일부 중산층에게는 부채를 통한 부동산 보유와 주식 투자를 권장하며, 자산가격 상승을 통해 레버리지라는 금융 마약에 중독시킨다. 그들에게 ‘부의 효과’를 영원히 누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부채형 소비와 자산투자를 반복하게 한다. 결국, 금융주도 성장과 세계화는 자산 버블, 저성장, 불평등을 초래한다.

이렇게 1980년 이후 금융은 자기 확장을 위한 탐욕 본능으로 세계 경제구조를 변화시켰다. 그러나 금융주도 세계화도 코로나19 범유행으로 부각된 기후변화 위기에 의해 변화의 고비를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지금 전 세계는 산업혁명 시점 대비 1.5℃ 이내로 지구 온도 상승을 낮추기 위한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미국·중국·EU 등 초강대국이 망라되어 2015년 시작된 파리협약의 이행을 앞다투고 있고, 무엇보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기후행동 100+’를 결성하며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한 기후변화 주주행동주의에 나서고 있다. 2차대전 전후(戰後) 복구 이후 가장 강한 민·관 공동 연대 움직임이며, 탄소 중립을 채택하지 않는 기업·금융기관은 존립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한편 지구의 탄소 중립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돈이다. 2050년까지 해마다 3조~5조 달러(2018, 2019년 6000억 달러의 약 5~8배)를 기후변화 분야에 추가 투자해야만 탄소 중립 목표가 가능하다고 씨티그룹이 최근 보고서(Financing a greener planet, 2021.2)에서 밝히고 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의 전격적인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국제기구, 정부, 중앙은행들이 금융회사를 규제할 전망이다. 기후변화 위기가 이제 금융을 공익과 이윤의 갈림길에 세운다. 그러나 금융주도 세계화를 포기하기에는 금융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 기후변화 산업은 장기적 투자 회임기간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금융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아직 지배적인 주주 이익 극대화 시스템은 기후변화 투자와 양립하기 어렵다. 2015년 파리협약 이후 금융 지원과 참여가 지지부진한 이유이다.

이제 녹색금융이란 용어를 자주 정부 사업에서 관찰할 수 있지만, 실제로 금융이 자기 보호색을 녹색으로 바꿀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직 녹색금융은 그저 구색 맞추기나 틈새시장이다. 녹색금융이 '인가받은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 되지 않도록 감독해야 한다. 금융이 주도해온 세계화의 그물이 지구의 미래를 옴짝달싹 못 하게 옭아맬 것이라는 우려가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조수연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 석사 △하나금융투자 상무 △ 금융투자분석사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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