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의사가 아닌데도 동업자와 공모해 영리목적의 의료기관을 설립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3억원을 편취했습니다”
어제(24일)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윤석열 前검찰총장의 장모 최은순씨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이 밝힌 공소사실이다. 검찰은 최씨가 병원건물의 인수를 위해 17억원을 대출을 받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병원운영에 관여했다’라고 주장했다. 사위인 유모씨를 병원에 취직시켜서 상황을 보고 받았고, 직원들의 급여로 2억원을 송금한 점도 병원을 운영한 정황으로 봤다.
최씨와 함께 사무장 병원을 개설하고 운영했던 동업자 3명은 지난 2015년 모두 처벌을 받았다. 그중 한명은 징역 4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공동이사장이던 최씨는 경찰수사 직전(2014년)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났고 ‘병원 운영에 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책임면제 각서를 받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피했다.
‘사무장 병원’은 명백한 범죄다. 범죄의 기수시점(죄를 이미 저지른 것으로 보는 때)은 사무장 병원을 설립해 운영을 시작한 때로 볼 수 있다. 사무장 병원이 운영을 시작한 뒤라면 이미 범죄가 저질러져 버린 뒤이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처벌을 피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절도죄라면 남의 물건을 손에 넣는 순간 죄를 지은 것(기수)이기 때문에 나중에 ‘나는 빠지겠다’며 도적떼를 벗어났다고 해도 이미 저지른 도둑질에 대해서는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처벌면제 각서’가 아니라 각서 할애비를 받아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정상참작이라면 모르겠지만 검찰의 기소를 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 바로 윤석열 前총장의 장모 최은순씨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정말 궁금할 뿐이다. 하지만 필자와 달리 그점에 궁금증이 생기는 언론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재판이 열리는지 어쩌는지 관심도 없다가 MBC 뉴스에 나가니 겨우 한두줄 따라 쓴 게 고작이다.
그마저도 ‘혐의를 부인했다’는 점을 잔뜩 부각시키며 장모 최씨를 감싸고 돈 기사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그와 같은 일을 최은순이 아니라 정경심이 했다면 어땠을까? ‘혐의를 부인했다’라고 간단히 쓰기만 했을까? 그럴로 끝이었을까?
정경심이 사무장 병원의 공동이사장으로 2년 가까이 일해놓고 경찰 수사가 본격화되기 몇 달 전 갑자기 그만두면서 ‘책임면제 각서’를 받아 나갔다면, 그리고 그 각서를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말 아무런 추가 의혹도 제기하지 않고, 후속취재도 하지 않았을까?
검찰은 윤 前총장 장모의 공소장도 공개하지 않았는데, 정경심이 기소됐었대도 그랬을까? 알권리 운운하고 언론의 자유를 주워섬기며 한바탕 난리를 피우지 않았을까? 정경심이 최은순처럼 혐의를 부인했다면 또 어땠을까? 그때도 '부인했다'라고 간단히 쓰고 말았을까?
참고로 지난 2019년 7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이른바 ‘조국 사태’ 와중에서 언론이 쏟아낸 기사 건수가 100만건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어느 검사의 입에서 나온 ‘정보’인지, 검찰 수사정보는 실시간으로 유출됐고 언론은 그걸 돌려쓰고 베껴쓰고 다시써 백만건이라는 진기록을 만들어 냈다. 이 중에는 중국집 배달원의 오토바이를 둘러싸고 ‘짬뽕을 먹었나? 짜장을 먹었나’라고 캐묻는 희대의 코미디도 포함된다.
조국 前장관 뿐만이 아니다. 추미애 前법무부 장관도 아들의 병가 관련 수사때에는 옆 부대 병장까지 동원해 ‘병장회의’ 운운하는 보도가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그러고 보면 정경심 교수가 윤석열 前총장의 장모가 아닌 게 참 아쉽다. 분명 수백만건의 기사를 쏟아낼 큰 장이 섰을 거고 큰 웃음을 줄 해프닝들도 많았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