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원은 18일 오전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페이스북을 통해 “전 장군은 12.12와 5.18 두 차례에 걸쳐 거사를 감행했다. 12.12로는 군부를, 5.18로는 전국을 장악했다”며 “12.12까지만 해도 전 장군이 ‘대권’을 꿈꾸지는 않은 듯하다. 그보다는 자신이 끔찍이도 사랑하는 ‘하나회’를 지키기 위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선공을 날렸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승화가 하나회 해체에 나섰기 때문인데, 하나회 핵심인 전두환을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내칠려고 했다”며 “80년 서울의 봄을 맞이하자 유신 세력은 두려움에 떨었지만 전 장군이 구세주로처럼 나타났다. 전 장군도 ‘이왕 내친 김에’라는 심정으로 큰 꿈을 꿔 5.18 피의 학살을 감행해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다단계 쿠데타를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윤 전 총장의 시작도 조직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검찰의 권력에 조국 장관이 겁도 없이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니 조국을 칠 수밖에 없었다”며 “특히 ‘사람에 충성하지는 않으나 조직은 대단히 사랑하는’ 윤 총장이다. 먼저 칼을 뽑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로까지 보인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국만 도려내겠습니다’라고 보고했다고 하니, 당시만 해도 ‘역심’까지 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세력이 윤 총장을 ‘떠오르는 별’로 보기 시작한다. 윤 총장도 서초동 ‘조국 대첩’을 거치며 ‘어차피 호랑이 등에 탔구나’ 싶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왕 내친 김에 문 대통령을 향해 돌진해 울산시장 선거사건, 월성 원전사건 등에 명분을 축적한 뒤 ‘전역’을 하고는 본격적으로 대선 판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장군의 육사 졸업 성적은 126등이었다. 11기 졸업생이 156명이었으니 거의 바닥인데, 윤 총장은 9수 끝에 검사가 됐다. 그런데도 둘 다 조직의 우두머리가 됐다. 사람을 다스리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의원은 “10년 전 연희동 사정을 잘 아는 사람한테 들은 얘기다. 12·12 쿠데타의 주역들은 친분이 돈독해 생일 때면 다들 연희동으로 모였다고 한다”며 “대부분 70~80대 할아버지들인데도 허리는 여전히 꼿꼿하고, 위계질서는 엄격하다. 당시 모임의 막내가 60대인데, 그는 생일 때면 케이크와 포도주를 준비해 오고 미리 축사를 써 와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낭독식을 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4년 전 박근혜 탄핵 무렵 윤석열과 두 차례 술자리를 한 적이 있는데 한번은 가볍게, 한번은 찐하게 했다”며 “당시 검사 후배들로부터 전화가 계속 왔는데, 전화 건 이들은 아마도 ‘윤석열 사단’일 것이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검찰의 의리. 그 실체가 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