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ESG 컨트롤 타워&현장은 누구, 어디?

2021-05-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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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개약진 말고 융복합적 접근 필요

ESG가 실제 이뤄지는 현장을 직접 확인해야



축구에서 킥오프는 전·후반전(연장 포함) 개시 혹은 골인 후 경기장 정중앙 점에서 시작하는 첫 볼 터치를 말한다. 과거에 킥오프는 무조건 앞으로 차야 했다. 그래서 공격권을 가진 팀 선수 두 명이 공을 살짝 앞으로 찬 뒤 다시 백패스를 하는 게 일반적인 킥오프였다. 축구는 상대 골문에 공을 넣기 위해 ‘앞으로만’ 전진해야 한다는 교조적인 원칙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6년 축구의 발상지 영국 축구협회(Football Association)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규정을 바꿨다. 뒤로 공을 차는 백패스 킥오프를 허용한 거다. '축구의 시작은 앞으로'를 포기한 혁명적인 변화였다. 한 번의 터치마저도 줄여 경기의 흥미진진함, 박진감을 높이자는 차원이었다. 지금은 공격팀 선수 1명이 백패스로 킥오프를 한다.

‘앞으로만이 아닌 뒤로도 가능’이라는 축구 룰의 변화는 요즘 글로벌 경영, 투자의 최대 화두인 ESG를 연상시킨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다. 오로지 앞으로 전진, 성장을 지상과제로 해온 경제가 이제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ESG는 제왕적 자본가가 전횡을 휘두르는 기업이 환경 파괴를 일삼고, 노동자 인권과 소비자 권리를 무시해온 행태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절실히 경험한 환경 위기의 심각성, 자본의 탐욕이 가져온 누적된 폐해를 리셋하려는 일종의 ‘새로 고침’인 셈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스탠더드, 즉 게임의 규칙이 ESG를 중심으로 새롭게 바뀌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게임 룰에 따라 축구의 승패, 기업의 흥망성쇠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실 ESG는 ‘오래된 미래’다. 친환경, 동반성장, 상생경제, 착한기업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채택된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세계 각국은 탄소 배출을 줄이자고 합의했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선 탄소 감축 목표를 설정했고,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지구 온도 상승 억제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이 오래된 미래 중 E의 1차 종착점은 2050년, 탄소 제로 시대다.

S, 사회는 10여년 전 불었던 ‘CSR 열풍’이 요즘 더 넓고 강해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기부 등 사회공헌, 사회적기업 지원 등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제 ESG의 S는 기존 CSR에 노동자 인권, 고용, 노사관계, 지역사회 기여, 소수자 차별 방지 등 다양한 요소가 추가됐다.

G, 지배구조 역시 20년 전부터 기업의 의사결정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꾸준히 진행돼온 이슈다. 오너 일가의 갑질 문제, 족벌·황제경영 논란이 나올 때마다 민주화된 지배구조는 한국 대기업의 오랜 숙제였다.

이처럼 오래된 각각의 E-S-G는 ‘따로’에서 앞으로는 ‘따로 또 같이’, 나아가 ‘같이 가치’로 가야 한다. ESG로 합체해 ‘오래된 밝은 미래’의 경제를 지향해야 한다. 왜? 민생! 우리 모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다. 과거 ESG 이전에는 회사가 무조건 돈 많이 벌어 월급 많이 받으면 됐지만, 이제는 착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공정하게 잘 나누는 회사가 생존하고 유지할 수 있다. 그런 회사가 주식 투자자들의 환호를 받는다.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 ESG가 여전히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또 각 업종별·기업별로 제각각인 점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 ESG의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평가 기준이 없으니 일부 업종, 기업에서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 판친다.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위장하는 걸 말한다. 이는 환경뿐 아니라 SG역시 마찬가지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나'라는 속담에 딱 들어맞는다.

그런데 뭐가 수박인지 호박인지 판가름해 줄 기준이 없는 게 현재 대한민국 ESG의 현실이다.  파편적인 ESG 접근 방식을 조율하고 수박인지 호박인지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할 정부 부처들이 저마다 자기 갈 길만 가고 있는 듯하다. 한마디로 ESG 관련 ‘정부 컨트롤 타워’의 부재 상황이 우려된다.
 

[2021년 5월 현재 정부 조직도.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형 ESG 지표인 이른바 ‘K-ESG’를 내년까지 마련한다고 하고, 환경부는 올 상반기 중 지속가능한 녹색 경제 활동 여부를 판단하는 표준 평가 안내서(가이드라인)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은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공개했는데, 그게 E·S·G 각각, 기업 규모에 따라 2022년부터 2030년까지 천차만별이다.

미국, EU 등 선진국은 ESG 글로벌 스탠더드를 자기들 이익을 위해 이미 만들었고, 계속 가다듬는 중이다. 그러나 K-ESG와 관련한 정부의 움직임은 정권말 무기력증의 단면을 보여준다.

ESG가 연관된 정부 부처, 공공기관을 모두 아우르는 컨트롤 타워가 시급하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중소기업벤처부 등 경제 관련 부처는 물론이고 외교부, 환경부, 법무부, 노동부, 보건복지부(국민연금관리공단),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아우르는 태스크포스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이미 발빠른 기업들이 꾸리고 있는 조직을 보고 배우면 될 듯하다. 현대차그룹은 이사회 내에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투명경영위원회’를 포괄하는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회사의 ESG 정책·계획·주요 활동 등을 심의· 의결하는 권한을 가져, 향후 ESG 경영의 실질적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경영지원실 산하에서 운영해 온 지속가능경영사무국을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지속가능경영추진센터로 격상했다. 개별 사업부 단위에도 지속가능경영사무국을 만든다. 제품 기획에서부터 연구·개발(R&D)과 마케팅까지 ESG를 실제적인 상품과 서비스로 내놓을 계획이다.

기업에서 정부가 배울 점은 바로 현장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움직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현장’이다. 제품 생산 현장, 노동 현장, 마케팅과 AS 현장에서 실제로 ESG가 구현되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체크하겠다는 거다.

청와대는 ESG의 컨트롤 타워 조직을 하루빨리 만들고, 정부 각 해당 부처는 ESG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확인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진 전문가그룹을 가동시켜야 한다.

최근 EU는 ESG 관련 기업들에 대해 인권 및 환경 실사를 의무적으로 강제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ESG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현장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책상 위 공허한 논의, 탁상공론은 ESG 경제에선 안 통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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