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전쟁이다. 인조는 청나라 군대에 쫓겨 남한산성으로 숨어들었다. 40여일 농성 끝에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했다. 청과 화친을 주장한 최명길은 오랫동안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 훗날 정민시(1745~1800)는 “최명길이 없었다면 국가와 사직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재평가했다. 박세당(1629~1703)도 “조선 사람들이 편히 잠자리에 들고 자손을 보존한 것은 모두 최명길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병자호란 당시 명나라는 지는 해, 청나라는 뜨는 해였다. 그런데도 사대주의에 매몰된 조선 사대부들은 명과의 의리를 고집했다. 조선은 청을 자극했고, 병자호란을 자초했다.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했어도 인조정권은 명을 떠받드는 데 급급했다. 최명길은 현실을 우선했다. 나라가 보전된 다음에야 와신상담도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명은 절대적 우방도 아니었다. 인조 책봉을 2년 반 이상 미루며 조선을 길들였다.
380여년이 흐른 지금은 달라졌을까.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행태는 여전하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앞세워 한반도 역사를 자신들 역사로 날조하고 있다. 또 사드를 이유로 치졸하게 보복했다. 중국에서 한국 연예인을 몰아냈다. 또 한국 기업의 숨통을 조였다. 롯데는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고 중국 시장을 접었다. 5년째를 맞은 한한령(限韓令)은 계속되고 있다. 동네 깡패만도 못한 G2 중국의 모습이다. 한국을 속국으로 여기는 오만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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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 대응은 소극적이다. 동북공정, 사드 보복 당시에도 말을 아꼈다. 김치 논쟁도 관망 중이다.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외교정책 때문이다. 경제적 불이익을 우려해 가급적 중국과의 충돌을 피하려는 의도다. 한데 정작 중국은 우리 입장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한한령에서 확인됐듯 오만방자하다. 주권 국가로서 인내하기 힘들다.
반면 미얀마 군부에는 일관된 메시지를 내놓았다. 쿠데타 직후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충격적인 소식에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군부를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6일 SNS에 “미얀마 군과 폭력적인 진압을 규탄하며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을 비롯해 구금된 인사들 석방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아시아 국가 정상으로서는 처음이다. 제3국 문제에 대해 정부가 단호한 메시지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미얀마 사태로 60명 가까이 숨지고 1700여명이 체포됐다. 국제사회는 한목소리로 군부를 비난하고 있다. 5·18을 경험했기에 우리는 폭넓게 공감한다. 우리 정부가 미얀마 사태에 강경 메시지를 낸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홍콩 시위, 신장·위구르 인권 유린 당시와 비교하면 왠지 불편하다. 두 곳 모두 폭력 진압으로 얼룩져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우리 정부는 중국 눈치를 보느라 침묵했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생각했다면 같은 잣대를 대야 맞는다. 중국은 두려운 상대, 미얀마는 만만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대응이다. 바이든 취임 이후 미국은 가치 중심으로 국제사회와 연대를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시대 훼손된 외교를 복원하면서도 대중국 정책 기조는 승계했다. 바이든은 시진핑과의 첫 통화에서 중국이 “홍콩 인권 활동가를 탄압하고 신장·위구르에서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우리 정부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지난해 10월, 유엔은 홍콩 보안법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당시 39개국이 참여했지만 한국은 불참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380년 전 허약한 조선이 아니다. 교역 규모 세계 10위, 성숙한 민주주의는 국제사회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미국이란 우방도 곁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전략적 모호함을 내세우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왔다. 바이든 정부에서도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한다면 갈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분명한 가치를 놓고 움직일 때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오는 6월 한국은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호주, 인도와 함께 초대 받았다. 이들 국가는 민주주의라는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중국에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주권국가라면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