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매수에 ‘파죽지세’ 비트코인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16일 오전 7시 30분(현지시간·한국시간 16일 오후 9시 30분) 개당 5만689달러(약 5621만원)를 기록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5만 달러를 넘어선 것은 2009년 발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12년 만의 최고점이다.
지난해 3월 개당 4000달러에 불과했던 비트코인은 지난해 하반기 급등세를 타기 시작해 연말 2만9000달러에 달했다. 올해 들어서도 상승세를 지속해 1월 초 3만 달러 벽을 깬 뒤 지난 7일에는 4만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1년간 10배 넘게 오른 셈이다. 17일 기준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 시가총액은 9166억 달러(약 1014조원)를 넘어서 1조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 급등에는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2017년 비트코인 열풍이 불었을 당시에는 개인투자자가 대부분으로, 기관투자자들은 실체 없는 비트코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글로벌 기업, 외국 금융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에 투자하거나 거래 수단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하며 실생활에서 사용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거래와 결제 기능을 도입한다고 발표하면서 비트코인은 급등세를 탔다. 뒤이어 테슬라는 지난 8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15억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테슬라는 향후 자산의 일부를 추가로 투자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비트코인 거래를 인정하지 않았던 금융사들도 비트코인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라즈 다모다란 마스터카드 부사장은 테슬라의 발표 직후인 지난 11일 자사 블로그에 “올해 안에 가상자산 결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으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뉴욕멜론은행(BNY 멜론)은 가상화폐의 보유·이전·발행 업무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캐나다에선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한 상장지수펀드(ETF)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기도 했다. 일본 금융 대기업인 SBI홀딩스도 외국계 금융회사들과 암호화폐 합작법인 설립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영향도 컸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발행 총량이 제한된 비트코인이 대안 안전자산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더리움·리플·도지코인도 ‘롤러코스터’
암호화폐 투자 열풍은 비단 비트코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암호화폐 투자 열풍은 이더리움, 리플, 도지코인 등 다른 암호화폐로 옮겨붙는 모습이다. 다만 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암호화폐들은 급등락을 반복하며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이더리움은 지난해 12월 세계 2위 선물상품 거래소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이더리움(ETH) 선물 출시 계획을 발표하자, 700달러 수준이던 이더리움 가격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CME에 상장된 지난 8일 종가 기준 1751.75달러까지 올랐으며, 거래 규모는 액면 기준으로 3000만 달러를 넘기도 했다.
리플의 경우, 커뮤니티를 통해 리플 단체 매수 활동을 전개할 것이 예고되면서 변동성이 커졌다. 지난달 30일 300원대에서 이달 1일 저녁 고점인 833원을 찍은 뒤 3시간 만에 456원으로 반토막 났으며, 이때 리플 총 거래량은 38조원으로 올 초 평균 일 거래량인 5조~6조원보다 6배 이상 높았다. 이후 다음날인 2일 390원대로 하루 새 폭락세로 돌아섰으며, 현재 50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개미군단의 상징인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 회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이달 최고가(0.087달러)를 기록한 ‘도지코인’ 역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트위터에 글을 올려 또 한번 화제가 됐다. 도지코인은 2013년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빌리 마커스와 잭슨 팔머가 재미 삼아 만든 암호화폐다.
머스크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주요 도지코인 보유자들이 갖고 있는 코인 대부분을 매각한다면 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내 생각에는 지나친 집중이 유일한 진짜 문제”라는 글을 올렸다. 머스크의 언급 이후 도지코인 시가총액은 한때 100억 달러를 넘기도 했으며, 가격은 16% 급등한 0.08달러로 치솟았다.
◆“투기냐, 투자냐"··· 안전성 의심은 ‘여전’
일각에서는 여전히 암호화폐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직까지 실질적인 사용처가 없는 데다 돈세탁에 사용되거나 일부 조작이 가능하다는 의견에서다. 암호화폐가 버블이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은 비트코인 등이 여전히 투기 자산에 불과하며 역사상 가장 큰 거품으로 끝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닥터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많은 사람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암호화폐를 사고 있다”며 “투자하면 돈을 날리고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금을 비롯한 대다수 원자재의 경우 어느 정도 효용성이 있지만, 비트코인은 효용성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거품이 꺼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암호화폐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사용처도 부족하다. 테슬라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결제수단으로 채택하겠다고 발표하기는 했지만, 비트코인은 기관 매수세에도 과거와 같은 과도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어, 다른 회사의 재무책임자들이 이를 결제수단으로 채택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암호화폐는 돈세탁 가능성이 큰 만큼, 추가로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비트코인은 화폐(real currency)가 아니다”며 “ECB는 그걸 사지도 보유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또 돈세탁 가능성을 들어 비트코인에 대한 추가 규제를 촉구했다. 실제로 분석 회사인 체인 아날리시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자산을 통한 불법 거래는 1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역시 지난달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많은 가상화폐가 주로 불법 금융에 사용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러한 사용을 축소시키고 돈세탁을 근절할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급등락을 반복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기관의 매수세가 시장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암호화폐를 ‘투자’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비트코인은 2017년 말 2만 달러 선을 넘은 후 급락장을 거쳐 3000달러 선까지 폭락한 경험이 있지만, 당시에는 개인이 장을 이끌어 현재 급등장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JP모건체이스는 비트코인이 투자자산으로 금의 경쟁자로 떠올랐으며, 금과 비슷한 대접을 받으면 가격이 장기적으로 14만6000달러(약 1억5861만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마이클 세일러 CEO도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라며 "비트코인은 3년 전보다 안정적인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가상자산 투자사 그레이트케일의 운용자산은 지난달 21조원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미국 뉴욕 증시 상장사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이미 7만2000개의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있다. 테슬라도 비트코인으로 자사 전기차를 결제하려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관의 매수세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으로 음식값을 결제하고 물건을 팔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 결제 서비스 페이코인이 국내 90만 이용자를 대상으로 비트코인 결제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4월부터 페이코인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손쉽게 구매하고 이를 통해 국내 6만여개 페이코인 제휴 가맹점에서 결제 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해외 글로벌 핀테크 업체들이 앞다퉈 가상자산을 구매·교환할 수 있는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암호화폐 급등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글로벌 기업, 외국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암호화폐 사업 진출이 가시화되긴 했지만, 변동성이 너무 커 개인투자자들이 손을 대긴 위험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