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양천구에서 보증금 2억원에 월세 10만원짜리 빌라에 거주하는 A씨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월세를 20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A씨는 집주인에게 “월세를 2만원까지만 올릴 수 있다”고 답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주임법)이 차임을 이전 계약보다 증액할 경우 최대 5% 상한을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개정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집주인은 “나는 임대사업자라 다른 법이 적용된다. 그 법에 따라 월세를 더 올려도 된다”고 말했다.
A씨는 이 집을 알선한 공인중개사 B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오히려 B씨로부터 “서로 다른 법이 충돌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민사소송이 유일하니 차라리 집주인과 대화로 잘 해결해 보라”는 말을 들었다. A씨는 억울한 마음을 뒤로한 채 월세를 10만원 올리는 것으로 집주인과 재계약을 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개정된 주임법과 민간임대주택특별법(민특법) 간 충돌이 임대차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주임법에 따라 임대차 계약을 연장할 경우 집주인은 차임을 직전 계약액의 5% 이상 올릴 수 없다. 이는 지난해 7월부터 시행 중이다. 이 법에 따라 집주인은 무조건 임대료 증액 상한 5%를 지켜 재계약을 해야 한다.
이와 달리 임대사업자가 세입자와 임대차계약을 맺으려면 주임법과 민특법을 동시에 적용받는다.
민특법은 2019년 10월 23일 이전에 임대사업자로 등록을 한 사람의 경우 기존 임대차 계약이 체결돼 있더라도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후 맺는 첫 번째 계약을 ‘최초 계약’으로 보고, 그 계약에 한해 임대사업자 마음대로 임대료를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2019년 10월 23일 이전에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이라면 주임법이 개정된 시점인 2020년 7월 이후에 기존 세입자와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더라도 민특법에 따라 5% 상한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런 혼선이 생기자 법제처는 “개정 주임법은 계약 갱신 시 임대료 인상 폭을 5%로 정했고, 민특법에 계약갱신청구와 관련한 조항이 없다”며 “개정 주임법을 따라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모두가 5% 상한제를 지켜야 한다는 취지다. 국토교통부도 지난해 8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해설집을 발간한 바 있다.
◆정부 해석과 다른 법원 조정 나오자 '시장 혼선'↑
하지만 정부의 기존 해석과 다른 법원의 조정이 나오면서 시장 혼란은 한층 가중되고 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지난달 19일 “민특법을 개정하기 전인 2019년 10월 이전 임대사업자 등록을 한 경우엔 임대차법 개정과 상관없이 5% 상한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사실상 정부의 유권해석을 뒤집은 것이다. 조정이란 판사나 조정위원회가 분쟁 당사자들로부터 각자의 주장을 듣고 여러 사정을 참작해 조정안을 제시하고 타협을 통해 합의에 이르는 제도를 말한다.
법원과 정부가 상반된 입장을 보이자 임대사업자들과 세입자 간에 유사 분쟁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당장 재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임대사업자는 법원, 세입자는 정부의 해석을 주장해 갈등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이번에는 법원의 조정 결정이어서 정부의 유권해석을 파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새 임대차법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법원 판결에선 정부의 입장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시장은 계속해서 불안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토부가 발간한 해설집이나 정부의 유권해석은 법령으로 볼 수 없어 결국 당사자들이 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