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갤러리] '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 선생 영면

2021-02-1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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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시위 도중 백골단의 구타에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 1주기 추모식에서 연설하는 고 백기완 소장의 모습. [사진=민족사진연구회 제공]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부터 농민·빈 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1974년 긴급조치1호 위반으로 장준하 선생과 군법재판을 받는 고 백기완 소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백 소장은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85년 6월 민통련 서울 지부 현판식에서 인사말하는 백기완 지부장. [사진=연합뉴스]

1987년 대선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 대선에도 독자후보로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왔다.


 

1987년 대선 후보 출마 당시 대학로 유세 모습. [사진=연합뉴스]

 

1987년 성문밖 교회에서 열린 서울노동조합운동 결성식에서 격려사하는 백기완 소장. [사진=연합뉴스]

 

1987년 12월 대학로 유세장에서 한 표 호소하는 백기완 대통령 후보.[사진=연합뉴스]

 

1987년 12월 11일 당시 김대중 평민당 후보와 야권후보 단일화 문제를 논의하는 무소속 백기완 후보. [사진=연합뉴스]

 

1991년 3월 서울 종로구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에서 수서부정 청산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백기완 모습.[사진=연합뉴스]

 

2000년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행사 참관차 방북했다가 55년전에 헤어졌던 누님 인숙씨를 만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사진=연합뉴스]

 

2008년 8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광복 63주년 8.15 민족 자주선언 행사에서 발언하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사진=연합뉴스]

 

2011년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한미 FTA 비준반대 범시민단체 집회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백기완 소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2년 1월 서울 갈월동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보호센터)에서 열린 고 박종철 열사 25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사진=연합뉴스]

 

2017년 5.18 제37주년 기념 서울행사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고 백기완 소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


백기완 소장의 장례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으로 엄수된다.

장례는 오일장으로 발인은 19일 오전 8시에 진행되고 같은 날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노제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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