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7개 계열사들(삼성전자ㆍ삼성물산ㆍ삼성SDIㆍ삼성전기ㆍ삼성SDSㆍ삼성생명보험ㆍ삼성화재해상보험)의 합의로 탄생한 준감위의 첫 수장은 김지형 전 대법관이 맡았다. 김 전 대법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대법관에 임명되면서 김영란 전 대법관 등과 함께 ‘독수리 오형제’라 불리기도 했던 진보 성향 법조인이다. 특히 노동법 분야 권위자로 ‘노동법 해설’, ‘근로기준법 해설’ 등의 책도 집필했다. 준감위 업무가 최고경영진(CEO)을 포함한 임직원의 불법행위를 근절하고 준법경영 강화에 무게추를 둔 만큼, 위원회의 독립성 담보를 위해서라도 법조계의 명망 있는 인사로 채워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이 부회장은 지난달 18일 파기환송심 최종선고에서 결국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말았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삼성 준법감시위 활동이 미흡하다고 평가하고 “새로운 준법 감시 제도가 실효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상 양형 조건으로 참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그러자 준감위는 발끈했다. 이 부회장의 선고 직후인 지난달 21일 정기회의 개최후 입장문을 통해 “이 부회장의 4세 승계 포기를 이끈 조치 보다 실효성 있는 게 무엇이 있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판결과는 상관없이 제 할 일을 계속해 나가겠다. 준감위 목표는 삼성 안에 준법이 깊게 뿌리 내리고 위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오로지 결과로 실효성을 증명해 내겠다. 의지는 확고하다”라며 심기일전의 자세를 보였다.
이 부회장도 첫 옥중 메시지를 통해 준감위의 행보에 힘을 실었다. 이 부회장은 준감위 회의 당일 아침 변호인을 통해 준감위의 활동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위원장과 위원들은 앞으로도 계속 본연의 역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준감위는 삼성 7개 관계사 사장들과도 소통에 나섰다. 지난달 26일 준감위와 삼성 7개 계열사 경영진은 정기적인 만남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준법경영을 통해 삼성이 초일류기업을 넘어 존경을 받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계열사 외에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사업지원TF’가 준법경영을 실천하도록 틀을 짜는 것도 준감위의 남은 과제다. 사업지원TF는 삼성이 2017년 초 오너경영 해체의 상징으로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없앤 뒤 신설한 조직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삼성이 사업지원TF를 둔 것이 결국 이 부회장의 실형을 야기한 악수(惡手)가 됐다는 분석이 적잖았다. 재판부도 최종선고에서 “피고인 노력은 긍정적이지만,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부패) 위험에 대한 예방 및 감시 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준감위는 지난 1년간의 활동을 통해 삼성그룹 내부에서 최고경영진이 준법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달라지고, 준법경영 문화가 서서히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는 판단이다.
준감위 측은 “각 사의 준법의식이 높아질 수 있는 한 해로 만드는 것이 올해 목표”라며 “가장 바람직한 준법감시제도는 무엇일지 전문가들과 사회 각계의 혜안을 모으고 구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건강한 지배구조 구축과 승계 문제 등 다른 리스크를 예방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 승계와 노동, 소통 등 세 가지 부문에 방점을 찍고 심도 깊은 논의와 해법을 모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