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세력에 의해 구금돼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은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통한다. 평생을 민주화에 투신하면서 25년을 투옥이나 망명 생활로 보냈고, 1991년 노벨평화상 등 다양한 인권·평화상을 받았다.
수치의 아버지는 '버마의 국부'로 불리는 독립운동 지도자 아웅 산 장군이다. 영국과 일본의 무력 지배에 맞서 항쟁을 주도하면서 60여 년에 달하는 식민지 역사를 끝낸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버마는 미얀마의 옛 이름이다. 1948년 독립 이후 44년만인 1992년 군부가 나라 이름을 미얀마로 바꿨다.
아웅산 수치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88년이다. 당시 미얀마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른바 '8888운동'이 일어났고, 군부 세력은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을 탄압했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미얀마로 귀국해 이 광경을 목격한 수치는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다.
민주주의민족동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창설하고 의장을 맡은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수치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군부는 이듬해인 1989년 그녀에게 '가택연금' 조치를 내린다. 이 조치는 2010년까지 해제와 지정을 반복한다.
미얀마에서는 2016년 첫 문민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수치는 외무장관에 취임했다. 헌법상 제약에 따라 대통령 자리에 오르지 못한 탓이다. 당시 BBC 등 외신은 "(수치가) 공식적으로는 전체 21개 부처 가운데 4개 부처를 담당하고 있지만 '고문'으로서 전체 국정에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사실상 '대통령 위의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NLD는 지난해 11월 열린 총선에서도 전체 선출 의석의 83.2%를 차지하면서 '문민정부 2기'를 열었다. 그러나 군부 세력이 총선 결과를 놓고 부정 의혹을 꾸준히 제기하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로이터 등 외신은 1일(현지시간) NLD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수치 국가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이 군에 구금됐다고 보도했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미얀마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