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제 소리를 냈던 사람입니다"

2021-01-1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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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릴레이 인터뷰 ① 윤정현 신부 <上>

 

 윤정현 신부는 인터뷰에서 "다석은 동양철학과 기독교 사상을 회통했던 큰 스승"이라고 말했다. [사진=유수민 인턴기자]


​한국이 낳은 위대한 종교 철학자 다석(多夕) 류영모(1890~1981)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후반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 지구는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근본주의 신앙으로 인한 전쟁과 살육이 그치지 않는다. 한국같은 다원주의 종교국가에서도 종교간 갈등이 심한 편이다. 세계의 한쪽에서는 탈(脫)종교 현상이 번지고, 다른 쪽에서는 근본주의 종교가 세계 평화를 깨트린다. 다석이 서구의 기독교 정신과 동양 전래의 유불선(儒佛仙) 사상을 회통(會通)해 풀어낸 다원주의 종교철학은 종교적 혼돈의 시대 21세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다석에게서 직접 배운 제자, 다석을 연구한 학자들을 찾아 큰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윤정현 신부(대한성공회)는 한국이 낳은 위대한 종교철학자 류영모 연구로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없이 계시는 하느님, 절대자에 대한 류영모의 이해’. 그런데 그보다 먼저 류영모 연구로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제1호 ‘류영모 박사’는 정통 기독교 재단 집안 출신이어서 비정통 기독교인을 연구해 세계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류영모 연구로는 두 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윤 신부의 이름이 더 빛이 나게 됐다.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던 연말 9인승 카니발을 타고 윤 신부가 사는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마을을 찾아갔다. 그는 2015년 2월 청주교회의 사제직을 내려놓고 고향인 전북 고창으로 왔다. 윤 신부가 태어난 마을은 그가 지금 거주하는 반암리에서 10km가량 떨어져 있다. 신라왕릉보다도 큰 마한의 봉덕리 고분군이 있는 마을이다. 인근에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500여 기나 분포해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성공회 사제는 노후 복지가 가톨릭 사제만 못한 것 같다. 연금도 없고 거처도 제공되지 않는다. 자력으로 여생을 꾸려야 한다. 그는 봉덕리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왜 고인돌 마을로 가지 않았을까. 나는 처음에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요한복음 4장 44절)는 구절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집사람이 여성 쉼터를 하는데 전세 계약을 하고 2년 지나면 주민들이 싫어해 집주인이 재계약을 안 해줍니다. 동네 집값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10~20명이 거주하자면 큰 집이 필요하고 이사 다니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20년 동안 열댓 번 옮겼을 겁니다.”

천자문 거꾸로 외운 '3대 천재'로 소문 

윤 신부의 아내 김미령 씨는 서울에서 성매매 여성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미혼모 여성의 자녀를 돌보는 일을 한다. 미혼모 가운데는 여고생들도 있다. 미혼모가 아이를 낳고 세상 속으로 숨거나 학교로 돌아가면 아이는 입양될 때까지 쉼터에서 돌본다. 출산율이 1.0 밑으로 내려간 나라에서 이런 아이들을 잘 돌봐서 훌륭하게 키워야 할 것이다. 아버지를 모르니 모두 새로운 성씨와 본관을 만들어준다. 성씨의 시조가 되는 아이들이다.
-신부로 사목을 하다가 영국 버밍엄 대학에 유학 가 다석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는데요. 왜 다석이었습니까?
“내가 성공회 사제라서 영국교회의 장학금을 받고 갔습니다. 영국 버밍엄에서 박사학위를 하자면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창조적인 걸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고, 영국의 사상이나 철학을 비평할 수 있으려면 몇 십 년 공부해야 하는데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요.
그런데 다석의 제자인 박영호 선생이 1996년도부터 스승에 대해 문화일보에 연재한 걸 책으로 펴냈습니다. 내가 신학교에서 접하지 못한 것이 가득했습니다. 영국에서 배우면서 창조적인 방법론을 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종교간 대화에 착안해 영국의 존 힉이라는 학자와 류영모를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밖의 기독교인 다석 류영모


-다석은 전통적인 유불선 종교사상으로 기독교를 바라보고, 다시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동양의 유불선을 회통하여 다원주의 종교철학을 형성했는데요.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다석에게는 기독교와 유교와 불교, 노장철학 중에 어느 것이 먼저였습니까?
“그분의 삶 자체가 종교 다원주의의 토대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 당시 한국의 지식인들은 불교적 바탕에 노장사상 같은 것들을 기본적으로 접하고 살았습니다. 류영모는 어렸을 때부터 천자문을 깨치고, 통감과 사서를 공부했습니다. 그 당시에 다석은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3대 천재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다석은 천자문을 거꾸로도 외웠습니다. 그 정도로 머리가 좋으신 분입니다. 동양 고전을 완전히 이해한 상태에서 1900년대 우리나라가 국운이 기울고 희망이 없을 때 ‘대한제국이 왜 멸망의 길로 가는가’ ‘대안은 무엇일까’하고 고민하다가 YMCA에서 강연을 듣고 기독교에 심취했습니다. 안창호 윤치호 서재필 선생같이 쟁쟁한 분들이 YMCA에서 강연을 했지요.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열다섯 살 때인 1905년에 기독교인이 됐습니다. 그해 종로 5가에 있는 연동교회를 나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경신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기독교를 통해 일찍 서양문물을 접하게 된 겁니다.”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 오강남은 저서 <예수는 없다>에서 한국에 온 선교사 대부분은 중국 일본에 간 선교사와 달리 미국 남부에서 온 근본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기술한다. 한국 교회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성경을 일자일획 가감 없이 문자 그대로 믿고,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기독교 배타주의 문화를 근본주의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여왔다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은 미국과 미국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만 서식하고 있을 뿐 서방 유럽 같은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이라고 오 교수는 말했다.
다석은 오산학교에서 춘원이 빌려준 일본어판 톨스토이 전집을 탐독했다. 톨스토이는 4대 복음서를 간추려 ‘요약복음서’를 펴냈는데 동정녀로부터 예수가 탄생한 이야기나 예수의 부활을 빼버렸다. 류영모의 서가에는 톨스토이에 관한 책들이 가장 많았다. 박영호는 다석이 오산학교에서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비정통 신앙으로 전향했다고 ‘다석전기’에서 결론을 내린다.
-오 교수의 견해대로 유불선 문화에 배타적인 선교사들의 근본주의적 설교가 류영모의 사고에 점차 맞지 않았다고 봐야 하나요?
“기독교 선교사들이 편협한 사고에 젖어 있고 일부만 가르친다고 봤죠. 남의 얘기를 앵무새처럼 전달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진정한 사상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사상을 완전히 소화해서 제소리를 내야 한다고 다석은 말했습니다. 다석은 ‘불경도 먹고, 유교 경전도 먹고, 모든 걸 먹는 거지’라며 자신의 위장은 그 어떤 것도 소화시킬 수 있는 철벽위장이어서 완전히 소화해 내 자신의 소리를 낸다고 했습니다. 다석 류영모 사상 중 중요한 부분 하나가 ‘제소리 내기’입니다.

다석, 오산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敎學相長

 

-오산학교에 가르치러 가서 배워온 셈이군요. 춘원 말고 다석에게 영향을 준 분이 또 있습니까?
“다석은 오산학교를 기독교 학교로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이광수 여준 신채호 선생을 만났죠. 다석이 오산학교에서 기독교를 열심히 전도하니까 노장 사상에 밝은 여준이 ‘성경만 보지 말고 도덕경 천부경도 읽어보고 동양 고전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했지요. 여준 선생은 기독교가 한쪽으로 치우쳐서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류영모 선생도 초기에는 그런 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준 선생이 다석에게 다양한 책을 읽고 사고를 넓게 가지라고 권했습니다.”
-다석의 삶을 보면 목가적인 생활을 추구한다든가, 죽을 날을 정해놓고 가출을 한다든가, 톨스토이 따라 하기가 있었다고 하면 다석에 대한 결례가 될까요?
“톨스토이를 닮으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대목이 있습니다. 다석 사상에서 한 축은 마하트마 간디의 영향을 받았고, 다른 축은 톨스토이, 그리고 헨리 소로 등 그 당시 지성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
-다석에게 영향을 준 간디 정신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간디의 평화사상이라든가, 다원적인 종교사상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로서 영국 교회가 많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간디도 영국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왜 교회에 나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영국인들이 가르치는 교회는 싫다. 하지만 예수나 성서는 좋아한다’고 답했습니다. 다석도 같은 입장이었죠. 서구 선교사들이 전해주는 교회는 싫지만 예수나 성서는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새뮤얼 헌팅턴은 이슬람교의 호전성을 지적하며 “이슬람의 국경선은 피에 젖어 있다”는 말을 했다. 이슬람국가(IS)가 벌인 피의 살육전을 보더라도 헌팅턴의 지적을 완전히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석의 종교다원주의가 종교간 화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개신교는 대부분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교파가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다석 사상을 이단 또는 비정통이라며 용납하지 않습니다. 다석은 자신이 정통 신앙주의자가 아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을 범신론(汎神論)이라고 말해도 된다고 했지요. 하지만 스스로는 범재신론(汎在神論)자라고 말했습니다. 범신론은 ‘나는 나무다‘ ’나는 신이다’라는 식으로 불교 신론(神論)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나무 안에 내가 있고, 내가 나무 안에 있다’ ‘나는 하느님 안에 있다’고 말하면 범재신론이라고 합니다. 범재신론은 ‘나는...이다’라는 범신론을 넘어설 수 있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단이라도 좋다. 나는 내 소리를 낼 뿐"이라고 다석은 말했습니다. 내가 깨닫고 느낀 사상을, 우주와 하나가 되어 내 소리를 낸다고 말했습니다. 생각하는 곳에 하느님이 있다고 다석이 말했지요.”

유태인들 선민사상을 한국 기독교 그대로 받아들여

-성공회 사제로서 교회를 이끌면서 다른 종교나 교파와 갈등을 겪기도 했을 텐데요.
“장례를 집전할 때 보면 온갖 종교 사람들이 다 모입니다. 고인의 형제자매들 간에 기독교식으로 치러야 할지, 유교식으로 치러야 할지 논란이 벌어질 때도 있습니다. 사람이 돌아가셨으면 하느님이 구원을 결정하실 일이지, 장례를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서 지옥 갈 사람이 천당 가고, 천당 갈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성공회식을 고집하지 않고 유가족들이 하자는 대로 합니다. 성공회식으로 하더라도 상여 메고 나가면서 동네 풍습을 따를 때도 있습니다. 매장할 때 성수를 뿌리고 흙을 덮기도 하고, 봉분할 때 찬송가도 부르고… 며느리가 기독교 신자고 시어머니가 불교신자일 경우 싸움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갈등 현장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하느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석을 공부하면서 하느님은 종교 위에 계신 분이지, 종교 안에 계신 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라인홀드 니버가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을 썼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리스도는 문화 위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문화 안에 또는 문화 아래 또는 어떤 철학과 사상, 이런 것에 갇힐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유태교 문화 속에서만 역사하는 분이 아니고, 우리 문화에서도, 중국 문화에서도 역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유태인들은 민족주의적 선민사상, 유대신앙 안에서만 하느님이 역사한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런 편협한 믿음을 한국 기독교가 받아들였습니다."
-다석이 톨스토이의 신앙에 가깝고 종교적 다원주의에 기우신 분인데… 사도신경이 아니라 산상수훈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했더군요.
“예수가 성경책을 쓴 것이 아니고 말씀만 전하셨습니다. 베드로, 마태오, 루가가 각기 흩어져서 ‘우리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가르쳤습니다. 각각 자신의 공동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100년이 지나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가 사람인지 신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후대의 교부들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만들고 신자들에게 최소한의 이러한 기본 교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교리학습을 위해 만든 것이 사도신경이고 교리며 신념체계입니다.”
 

윤 신부가 황호택 논설고문(왼쪽)과 고창 반암마을 인월재를 거닐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유수민 인턴기자]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수훈은 사도신경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본래 말씀이고 사도신경은 이를 해석해서 교리로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념체계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아주 단순한 가르침입니다. 이를 설명하고 해석하다 보니 철학, 사상이 붙고 교리도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스 철학이 거기 첨부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 때에 신학대전이라는 교리 신학 책이 만들어졌습니다. 산 위의 눈 한 뭉치가 굴러 내려오면서 커다란 눈덩이가 되면서 그 속에는 돌과 티끌, 온갖 것이 들어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단순한 진리에 잡다한 이야기와 교리, 신념체계가 반영된 것입니다.
다석은 교리적인 것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교리적인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삶이 중요하지 교리가 중요한 건 아니죠. 게임기 안에 여러 프로그램을 넣으면 우리가 조종하는 대로 메트릭스 안에서 움직입니다. 그와 같이 신념, 교리 체계라는 종교 안에 신자들이 들어가 있으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교리적인 사람이 됩니다. 제도 교회, 제도 신앙 안에 맴도는 것, 교회 안의 노예가 되는 것이죠.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념체계 안에서 만족하는 것에 그치게 되지요. 그래서 제도종교는 현상과 신념 체계의 유지를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다석은 이건 아니라고 봤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 말씀, 예수님 말씀을 삶으로 사는 것이죠. 동정녀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교리 생활에서는 그것이 중요하고 안 지키면 이단이라고 취급합니다. 옛날에는 이단으로 몰아 퇴출시키거나 화형시키고 했는데 종교가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것이죠.”
-정통 신앙에서는 동정녀 마리아에서 예수가 태어났다는 것과 예수의 부활을 믿느냐 아니냐로 신자와 비신자를 가른다고 하는데, 그런 입장에서는 다석이나 톨스토이는 비정통인가요?
”그렇습니다. 정통주의의 교리 체계 즉 사도신경 신념체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이냐, 예수를 해석한 제도 교회의 가르침이냐의 차이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있고 불교가 따로 있는 것처럼. 예수님 하느님의 말씀이 있고 제도교회가 있는데 꼭 일치하지는 않는 거지요. 어떤 면에서는 제도교회의 재산 축적, 성범죄 등은 예수님과는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
-’산상수훈’의 핵심사상은 무엇이죠?
“하느님 나라죠. 하느님 나라를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Kingdom of god)와 하늘나라(Kingdom of heaven). 하늘나라는 죽어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하느님의 나라는 내가 사는 세상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면 내 안에 이미 하느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면 이미 하느님 나라가 실현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그리스도교는 대개 하늘나라를 많이 가르칩니다.”(인터뷰어 황호택 논설고문·정리 박하늘 인턴기자)

 <윤정현 신부 약력>
-1955년 출생
-1976년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고문을 받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6월 자격정지 1년 6월
-1982년 연세대 신학과 졸업
-1984년 성공회 사목신학연구원 졸업
-1986년 성공회 부제 서품 후 춘천교회 사목
-1987년 사제서품
-1990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선교훈련원 간사,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파일 폭로 지원
-1993년 청원 묵방교회 관할사제
-1995년 서강대 대학원 입학
-1996년 영국유학
-2000년 정읍교회 관할사제
-2003년 영국 버밍험 대학에서 유영모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
-2004년 대전주교좌성당 주임사제
-2004년 성공회대 신학전문대학 겸임교수
-2008년 22차 세계철학대회에서 “Non-Existent Existing God” 이라는 제목으로 다석 유영모의 신관(神觀) 발표.
-2010년 청주수동교회 관할사제
-2015년 신부 정년(65)을 채우지 않고 고창 반암마을로 귀촌해 수도 및 연구 활동



윤정현 신부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확인하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kmeuBoY21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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