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발간돼 지금까지 베스트 셀러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책 제목이다. 1990년대생의 젊음을 따지려 드는 게 아니라 이 새로운 세대가 일으키는 '바람'에 관한 시선이다. 이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가 만든 관습을 깨부수고, 이의를 제기할 줄 알며, 불합리한 것은 피하려고 한다. 어떻게 본다면 기성세대들이 혀를 끌끌 차며 말하는 '요즘 애들'의 상징인 셈이다.
영화계에도 90년생이 왔다. 영화계서 관습처럼 쓰여온 것들에 의문을 품고, 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깨고, 아무렇지 않게 재정렬한다. 이 파격적인 데뷔작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요즘 애들' 답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건 영화 '애비규환'으로 데뷔한 최하나(28) 감독이다.
젊은 임산부와 자격지심 없는 남편, 이혼 가정과 재혼 가정, 남녀를 둘러싼 성 역할 고정관념 등을 대수롭지 않게 뒤집고 무심하게 짚어내는 최하나 감독. '요즘 애들'의 눈으로 본 세상이 더할 나위 없이 통쾌하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만난 최하나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영화를 보다 보니 이야기의 원형이 궁금해지더라
- 재혼 가정에서 자라 아빠가 두 명인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두 아빠는 서로 서먹하고 적대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만나 힘을 합치게 된다는 줄거리다. 불쑥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살을 붙이다 보니 지금의 이야기가 탄생했다.
시작점이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네
- 그렇다. 제가 인생에서 자주 생각하는 화두기도 하다. 어떤 가족들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재혼, 이혼 가정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가족 이야기인 만큼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건, '이해'와 '공감'이 필수적인 것 같다. 창작자이자 최초의 독자인 최 감독을 스스로 납득시키는 과정은 어땠나?
- 저도 그렇지만 주변에서도 피로 맺어지는 인연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가족이라고 묶이는 건 조금 다른 형태의 연대가 중요하다. 그 이야기 자체를 납득하고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형태의 이야기기도 하다.
혈연만이 '가족'은 아니니까
- 맞다. 피로 맺어졌다고 해도 모든 걸 포용하고 용서할 수 없지 않나.
모든 창작에 내 이야기를 쓸 필요는 없지만 '애비규환' 속 최 감독에게서 비롯된 점들이 있다면?
- 토일과 조부모의 관계다. 실제로 우리 할아버지가 종갓집 문중회이시다. '유교맨'인 거다. 하하하. 사실 문중회라는 것이 가부장제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에헴' 하는 그런 구식 이미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런 요소가 영화에 담겼다. 또 토일과 엄마가 불처럼 싸우는 모습도 어느 정도 저의 모습이고.
토일과 엄마의 관계는 누구나 공감할만한 요소 아닐까? 철천지원수처럼 싸우다가도 가장 친한 친구인 관계
- 물론 엄마랑 정말 친하고 다정하게 커플링도 나눠 끼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저와 주위 친구들은 그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저의 경우 불화가 있는 건 아니고 (가족들이) 경상도 사람이라 무뚝뚝해서 그렇다. 극 중 토일과 엄마의 관계는 지극히 평범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정)수정, (장)혜진 선배께도 말했지만, 이 모녀가 매일 전쟁을 치르는 사이는 아니었을 거다. 언성을 높이며 싸우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저녁엔 닭발을 뜯기도 하고…. 우리가 겪는 일상을 겪었을 거다.
배우들도 이런 평범한 모녀 사이를 납득하던가?
- 수정 씨는 실제로 가족들과 굉장히 친하고 화목하다고 하더라. 어머니와 대화할 때도 다정한 편이다. 본인은 굉장히 어머니 말을 잘 들었다고. '천사 같았다'고 하더라. 토일이 가족들과 생각지도 못할 거로 버럭하고 싸우는 걸 납득시키려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들이 불행한 게 아니라 토일이 너무 큰 사고를 친 거고, 거기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토일의 엄마가 '너는 네가 똑똑한 줄 알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딸들이라면 한 번씩 들어보고 또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이지 않나
- 엄마가 토일에게 '너 같은 딸 낳아보라'는 말도. 하하하. 시나리오 초기 버전에는 '엄마,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해?'라고 받아치게 했는데, 나중에는 '왜? 그래서 낳는 건데'라고 수정했다. 엄마에 대한 반발심이기도 하고 (토일이) 자기애로 똘똘 뭉쳐있는 인물이라서.
가부장제나 성 역할 고정관념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도 의식적으로 뒤집으려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것 같았다
- 성 역할을 의식적으로 뒤집으려고 했다. 전형적인 남편과 아내는 보기만 해도 신물 난다. '어머니들의 힘' 이런 것도 이제 지겹다. 그간 미디어에서 보여준 엄마의 모습은 '요구'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양푼에 밥을 비벼 먹는 모습이 진짜 엄마의 모습일까? 그렇지 않게 보이도록 만들었고 집안일 하는 남자들도 이제 '해야 하니까' 대수롭지 않게 담아낸 거다. 대단히 훌륭한 면모로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다.
'시월드'라 불리는 시댁 식구들의 모습도 기존 영화들과 다른 부분이 보였다.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았던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 제가 원하는 감상평이기도 하다. 이미 토일은 큰일을 겪고 있고 그런 외적인 스트레스나 불안까지 겪을 필요는 없다. 모든 걸 낙관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시월드'를 떠올릴 때 따라오는 스트레스 정도는 제거해도 되지 않을까? 전형적인 스트레스 요인들은 다 제거한 채 시작하고 싶었다. 그리고 토일이라면 시댁까지 다 고려하고 선택했을 거다. 시댁 식구들이 괴짜긴 하지만 예의를 갖추는 상식적인 사람들이다.
영화 속 남성들은 대체적으로 고분고분하다. 토일의 새아빠 태효, 토일의 남편 호훈, 호훈의 아빠까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조신한 남성'의 모습이다
- 트위터에서 본 시사회 평 중 인상 깊은 말이 있었다. '조신남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하하. 훌륭한 통찰이다. 극 중 토일이 호훈을 자랑할 때 '자격지심이 없어' '나를 우러러봐'라고 하지 않나. 그런 걸 봐도 호훈은 여자를 아래 두려고 하지 않는 아이다. 남편이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도 바라는 모습이다. 여자를 아래 두고 위로 올라서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좋다. 호훈은 그걸 넘어 우러러볼 만큼 토일을 사랑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거고.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은 '일월'의 존재도 자주 언급하던데
- 토일이 아버지 찾기를 포기한 순간, 일월을 만나며 다시 기회를 잡는다. 일월로 하여금 유례를 찾게 되는 모습이 번뜩 떠올랐다. 저는 엄청나게 자연스럽게 등장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분은 '요정이냐'고 했다.
환상적인 인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한문을 통해 토일의 처지를 비춰주기도 하고
- 제가 자란 동네는 그런 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혼자 놀던 아이가 자연스레 다가와 말도 걸고…. 아이에게 '김 가루를 훔쳐먹는다'라는 설정을 주었고 그게 발전해서 '일월'이 된 거다.
토일의 흑역사 장면은 어쩔 줄 모르겠더라. 동년배라서 그런지 그 '흑역사'가 왜 이리 공감이 가던지
- 다들 그런 시기가 있지 않나. 토일은 저와 닮았지만, 저보다 더 극단에 치우쳐있다. 학창 시절 고스룩을 즐겨 입던 무리를 생각하며 (토일의 흑역사를) 만들었다. 당시 고스룩이 유행이었고 그 친구들은 관 모양 백팩, 통굽 슈즈 같은 아이템을 즐겼다. 토일에게도 꼭 관 모양 가방을 주고 싶었는데 도무지 구할 수가 없더라. 우리 때만 유행이었나 보다. 어렵게 찾긴 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 한 신 쓰자고 구매하기에는 가격이….
그땐 그런 게 유행이었다. 체스판 무늬, 해골 문양, 통굽 슈즈 같은 거
- 맞다. 수정 씨에게 고스룩을 입혔을 때 조금 낯부끄럽고 그 시기만의 우스꽝스러운 느낌이 있길 바랐는데 그냥 예쁜 거다. '레드 라잇'(그룹 에프엑스 시절) 느낌이 나는 거다. 그게 조금 아쉽기도.
모두 '중2병'을 겪을 때 풍경은 다른 법이니까. 영화를 보면서 토일이 1990년생인가 했다. 그 시절 풍경들이 종종 목격돼서
- 극 중 연도로 친다면 내가 통과한 유년기를 담은 건 맞다. 아주 벗어난 건 아니길 바랐지. 토일이 친아버지를 찾으러 대구에 내려갔을 때 중학생 오타쿠 친구들이 잠깐 나오는데, 그 친구들이라도 (최하나 감독이 원하는) 느낌을 잘 살려보고 싶었는데. 코믹월드도 다니고 피규어도 모르는 아이들의 어떤 전형성 있지 않나.
'애비규환'을 보고 나니 차기작이 더 궁금하다
- 차기작 시나리오를 쓴 게 있다. '애비규환' 찍기 전 백수로 지낼 때 썼다. 굉장히 좋아하는 이야기다. 아! 그것도 유교에 관한 이야기다.
'애비규환'과 비슷한 결이나 톤을 상상해도 될까?
- 농담으로 비틀고 있긴 하지만 차기작에서 더 전면적으로 다룰 생각이다. 본질적으로 생각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