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KCGI(강성부펀드) 종속회사인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난 12일 한진칼 주식 550만주를 담보로 메리츠증권으로부터 1300억원 대출을 받았다. 시기를 보면 한국산업은행이 한진그룹에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발표하기 전이다. KCGI는 한진칼 주식을 추가로 매입할 계획이었으나 산은이 등장하면서 관망모드로 돌입한 상황이다.
산은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5000억원) 참여와 영구 교환사채(EB, 3000억원) 인수를 결정했다. 한진칼은 수혈받은 자금을 대한항공에 대여하고 이후 대한항공이 추진하는 2조5000억원 규모 유증(한진칼 몫 7300억원)에 참여해 신주를 받아 상계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신주(제3자 배정 유증, 1조5000억원)를 인수해 최종적으로 ‘한진칼-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지배구조를 구축한다.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품는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증이다. 산은이 주요주주로 등극하면서 경영권 분쟁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에 힘을 실을 가능성이 제기된 탓이다.
산은은 한진그룹 경영을 감시하고 조 회장의 경영능력이 입증되지 않으면 그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경영권 방어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거래구조가 발표되자 KCGI는 “한진칼이 자금이 필요하다면 직접 나서겠다”고 공표한 상태다. KCGI는 주요주주로서 먼저 신주를 받을 권리가 있고 일부 자금을 확보한 만큼 한진칼의 산은을 대상으로 한 제3자 배정 유증 명분이 약해지는 모습이다. 산은이 자금을 지원하면 ‘혈세’지만 KCGI 등 3자연합(KCGI, 반도건설, 조현아)은 온전히 자신들이 책임을 지는 돈이다. 그만큼 세간의 시선도 탐탁치 않다.
KCGI는 법원에 한진칼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오는 25일 심문이 열릴 예정으로 시장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법원의 결정은 한진칼 유증 목적이 경영권 방어 여부에 있는지 해석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한진칼 사례만을 놓고 보면 어느 쪽이 승기를 잡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산은은 산은이 지명하는 사외이사 선임과 주요경영결정사항을 한진칼로부터 확인받는 등 투자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를 어길 시 한진칼이 5000억원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여주기’라고 주장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산은이 조 회장 경영권 방어가 아닌 경영 감시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현대중공업그룹에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결정한 것과 비교하면 산은의 주장이 약해진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주력회사인 현대중공업을 투자회사(한국조선해양)와 사업회사로 분할하고 산은은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에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출자했다. 그룹 최정점에 있는 현대중공업지주는 산은이 개입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정몽준 회장 일가 등이 지분 34.34%를 보유하고 있으며 자사주 등을 포함 시 경영권 위협은 제한적이다. 한국조선해양을 통해 대우조선해양 경영 감시와 정상화에 집중하겠다는 심산이다.
경영권 분쟁이 진행중이 한진칼에 산은이 주요주주로 등극하는 것은 그 목적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한진그룹 입장에선 투자합의서 내용이 모든 것을 내놓으라는 것과 같지만 이를 받아들였다는 점도 의혹을 증폭시킨다. 그만큼 한진칼이 처한 상황이 벼랑 끝에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추진하는 산은이 두 그룹을 대하는 태도는 천차만별이다.
IB관계자는 “지주사를 통제해야 그룹 경영을 감시할 수 있다면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선택한 산은의 결정은 해석하기 어렵다”며 “역으로 보면 대한항공을 중간지주사 형태로 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KCGI가 직접 유증에 참여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한진칼 자금수혈이 긴급하다는 명분은 약해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