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에 소풍 나간 아이들, 소풍 나간 아이들 있으면 모두 수업시간 끝났으니 귀가 바란다고 송신. 당소 교장실”
“여기 5반장 감 잡았고 78이라 송신”
“당소 짬뽕밥, 감도 깨끗한 세 개, 세 개이고 엄마 말 잘 듣겠다고 송신”
“망내에 교장실, 교장실. 당소 학생주임. 지포라이타 하고 같이 가는데 좀 늦겠다고 송신”
벌써 20년이 흐른 옛일이지만 기자가 군 복무를 하던 당시의 무선통신은 이랬다.
군대를 정상적으로 다녀온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모든 무전은 언제든 감청이 되니 절대 평문을 사용하면 안된다. 미리 정해진 음어에 따라 통신을 해야 한다.
‘5반장’은 ‘5분 대기조’ 소대장이고 ‘짬뽕밥’은 본부 중대 병력(행정병)과 여러 예비군 중대 기간병들이 혼합편성된 중대, '지포라이타'는 화기중대의 콜사인이었는데, 각 제대의 특징을 따서 지은 경우다.
음어로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관행적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는데 ‘78’은 ‘알아 들었다’는 뜻으로 쓰였다. 아마도 과거에 쓰던 음어였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다른 것으로 변경됐는데도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듯했다.
이런 방식은 한국군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외국군과 연합훈련을 경험했거나 다국적군으로 해외파병을 다녀온 요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언어는 달라도 그때그때 임기응변하는 모습은 비슷했던 것 같다.
지난 4일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연평도 공무원 피격사건과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리 군이 북한군의 무선을 감청했다”면서 ‘(감청내용 중에)북한 상부에서 “762를 하라”라고 지시하는 부분이 있는데 7.62㎜ 소총으로 사살하라는 명령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그간 ‘사살명령을 직접 감청한 바가 없다’고 주장해 왔는데, 주 원내대표의 이날 주장은 정부의 그간 발표를 뒤집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762로 하라”는 말이 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한다. 하지만 ‘762’를 사살명령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주 원내대표는 북한군의 소총이 7.62㎜이기 때문에 ‘762로 하라’는 말은 사살명령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주 원내대표는 AK47을 떠올리고 북한군이 아직도 7.62㎜ 소총탄을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좀 다르다.
AK47은 2차 대전 직후, 구 소련의 퇴역군인이자 엔지니어인 칼라슈니코프가 1947년에 만든 돌격용 소총이다. 구조가 간단하고 제작이 쉬워 전 세계적으로 10억정 이상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중동이나 남미의 게릴라와 반군들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특수강의 낭비가 심하고 무거운 데다 정확도가 떨어지고 사거리는 짧은데 반동이 심하다는 치명적 단점도 있다.
이 때문에 구 소련과 동독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개량을 진행하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소총이 AK-74다. AK-74는 개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구권의 제식무기로 채택되는데 북한 역시 ‘88식 보총’이라는 이름으로 이 총을 채용한다.
AK-74는 5.45㎜탄을 사용한다. 탄두가 작아지면서 사거리가 길어졌고 정확도도 높아졌다. 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을 거치며 대부분의 부대의 제식화기로 88식 보총을 보급했다.
최근에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개량된 ‘98식 보총’을 경보병부대 등 특작부대 중심으로 보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 5.45㎜탄을 쓴다.
물론, 기관총 등 7.62㎜ 탄종을 쓰는 다른 화기였을 수는 있다. 실제로 일부 언론에서는 ‘RPK-74를 개량한 경기관총은 7.62㎜를 쓴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사리 수긍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RPK-74 경기관총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AK-74의 자매버전이다. 구조가 AK소총과 비슷해 사거리가 짧고 파괴력이 미흡하다는 단점이 지적돼 왔다. 심지어 발사속도는 돌격소총인 AK-74보다 늦다는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다만 가볍고 휴대가 용이하기 때문에 무장이 가벼울 수밖에 없는 경보병여단 같은 특작부대에서 애용될 뿐이다. 실제로 북한군은 함정용으로 14.5㎜ 중기관총을 쓴다.
그러니까 북한해군에서 7.62㎜는 탄종을 쓰는 무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설령 7.62㎜ 화기를 쓴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탄두의 직경을 거론하는 것으로 사살명령이라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전후 상황을 살펴봐야 하겠고 한국군과 북한군의 차이를 감안해야 되겠지만 쉽사리 수긍되지 않는 부분이다.
북한군이 월북한(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사살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어느 선에서 내려온 명령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경비정장이 단독으로 결심한 사안도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우리 군이 감청한 어느 한 부분에서는 분명 사살명령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하지만 ‘762로 하라’를 사살명령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우리 군의 감청능력이나 정보자산을 적에게 여과없이 노출해 북한이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야권에선 이번에도 ‘알권리’를 들고 나온 모양인데, 안보를 그리 중시하는 정당치고 변명이 참 궁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