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용산구에서 베트남으로 파견된 한 지방직 공무원이 현지 일식당에 설치된 전범기(욱일승천기) 간판을 내린 사례가 알려지면서 공무원 사회에 미담이 되고 있다.
23일 용산구에 따르면 그 주인공은 윤성배(49) 용산국제교류사무소장이다. 윤 소장은 베트남 중부 빈딘성 꾸이년(퀴논)시 현지에서 용산구와 퀴논시 간 국제협력 사업을 총괄하는 업무로 파견됐다.
그는 최근 퀴논시에 오픈한 모 일식전문점을 찾았다가 출입구 상단에 욱일기를 닮은 간판(사진)을 보고, 식당 매니저에게 "간판 디자인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전범기와 닮아 있으니 디자인을 바꾸면 좋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식당매니저는 "인테리어 업체가 임의적으로 만든 것이고, (본인은)교체할 권한이 없다"며 거절했다.
윤 소장은 현지인 도움을 받아 본인 SNS(페이스북)에 간판 사진을 올려 문제를 공론화했다. 욱일기를 접한 베트남 학생들, 특히 윤 소장이 운영 중인 국제교류사무소 꾸이년 세종학당 학생들이 식당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윤 소장은 식당을 수차례 찾아 주인을 직접 설득하는 작업도 이어갔다. 처음에는 식당 주인이 "베트남 예법 상 남의 사업에 간섭하는 당신이 문제이며, 페이스북 글 때문에 식당 이미지가 나빠졌으니 배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윤 소장은 "게시글을 지우고 비용도 직접 낼테니 간판을 바꿔달라"고 주인을 재차 설득했다. 결국 이 식당의 간판은 바뀌었다. 문제가 된 욱광(旭光)이 사라졌고 45도 각도 사선이 배치됐다. 주인은 간판 교체 후 "몰랐던 사실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윤 소장은 바뀐 간판을 찍어 다시 페이스북에 올리고 "(주인이) 현명한 결정을 내려줘 고맙다"며 "퀴논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이 될 거라 믿는다"고 밝혔다.
베트남 퀴논시는 최근 국제 관광도시로 알려져 해외 방문객들이 많은 지역이다. 서울 용산구와의 인연으로 베트남을 대표하는 친한파 도시가 됐다. 퀴논시청에는 1년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으며 올해 초 직항이 놓인 퀴논시 푸캇 공항에는 "어서오십시오. 대한민국 서울 용산구 자매도시 퀴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한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윤 소장이 이끄는 용산국제교류사무소는 2016년 개관 이래 한국어 강좌(꾸이년 세종학당), 사랑의 집짓기, 유치원 건립, 백내장 치료지원 등 현지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빈딘성 투자설명회'를 후원하기도 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이번 전범기 간판 교체는 도시외교사의 쾌거로 기록될 것"이라며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구와 공직자들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