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필을 통해 4년 동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30년 넘게 시를 썼는데, 시에 대한 욕심을 덜 부리게 됐다. 시를 쓰지 않는 시간이 시를 쓰는 시간보다 더 행복했다. 휴식이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구절로 유명한 ‘너에게 묻는다’를 쓴 안도현 시인이 신작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를 내놨다. ‘북향’(2012년) 이후 8년 만에 펴내는 11번째 시집이다.
시인의 말처럼 ‘행복한 휴식’을 보내고 돌아온 그는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에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변화를 알 수 있다.
22일 열린 온라인 간담회에 참석한 안도현은 “시를 쓰면 세상일을 관찰할 수 있어 좋다. 식물을 굉장히 좋아한다”며 “시간이 갈수록 식물이 사람 못지않다는 생각을 한다. 식물이 시간도 빨리 알아차리고, 미래도 빨리 예측한다. 영혼도 있다”고 설명했다.
애정 어린 관찰을 바탕으로 쓴 ‘식물도감’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안도현은 “시인이 지향하는 의식이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경우 많다. 시의 내용보다는 형식에 매료돼 보라고 권한다”며 “식물도감은 특별한 형식의 시다. 짧은 시가 우리에게 주는 장점들이 있다. 식물을 대상으로 5줄 이내의 짧은 시를 여러 편 써보고 싶었다. 200편을 써보려고 했는데 100편을 못 채웠다. 시라는 이름으로 식물을 소개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과 자연 앞에서 더욱 겸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홍교 여사 약전’과 ‘고모’처럼 가족을 소재로 한 시도 눈에 띈다. 시인은 어머니의 칠순 때 가족들과 함께 모여, 어머니의 살아온 시간을 기록했다. 평범하게 살아온 어머니와 고모의 삶에는 수사보다 더 시적인 것이 들어있었다. 변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안도현은 “시라고 하면 만들어내고 꾸며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오랫동안 살아온 팩트(사실) 자체가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시적이지 않은 것을 시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을 당분간 더 해볼까 한다”고 소개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두에게 힘이 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안도현은 “코로나로 거리보다 방에 있을 때가 많다. 나 스스로도 평소보다 책도 많이 읽고, 글쓰는 양도 많아졌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며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위기를 잘 견디고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코로나19로 인해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시집을 내놨다고 밝힌 안도현은 “첫 시집을 내는 마음으로 임했다”며 “이 시집이 좋은 시를 쓰겠다는 약속이 됐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