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신탁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양한 포괄신탁 상품을 개발하려는 민간 노력 이외에도, 신탁시장을 확대하고자 하는 정부의 제도 지원이 있었다.
일본의 현재 신탁제도 기틀을 마련한 것은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친 제도 개혁이다. 2004년 신탁업법을 개정하며 신탁사가 소비자(위탁자)의 모든 재산을 수탁할 수 있도록 했다. 수탁 가능한 재산 범위를 제한하지 않은 것으로, 이를 '포괄주의'라고 부른다.
일본은 포괄주의로 제도를 바꾸면서, 동시에 신탁자산의 합동 운용을 허용했다. 여러 자산을 한꺼번에 신탁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신탁은행이 직접 관리하기 어려운 부동산 등 재산을 다른 신탁업자에게 재신탁할 수 있도록 하며 포괄신탁이 크게 성장했다.
2006년에는 신탁법도 개정했다. 신탁업자를 다루는 신탁업법과 달리 신탁법은 신탁 자체에 대한 법규다. 개정 신탁법에서 일본은 수익자연속신탁, 유한책임신탁, 수익증권발행신탁 등 새로운 신탁제도를 도입했다.
이밖에 저금리 고령화에 대응하는 신탁상품에 세제혜택을 부여했다. 2013년부터 30세 미만 손자녀에게 교육자금 증여 시 비과세 혜택을 제공한 점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교육자금증여신탁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일본처럼 신탁업법을 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탁을 다루는 국내 회사들은 자본시장법 규제를 받고 있다. 자본시장법이 신탁법보다 우선 적용되고,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에 준하는 규제를 받는 탓에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제도를 운용하기가 제한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전신탁은 투자성이 짙어 자본시장법으로 규율할 수 있지만, 재산신탁 등 이외 상품은 금융투자와 직접적 관련이 없어 자본시장법으로 규제하기는 한계가 있다”며 “일례로 부동산신탁의 수익권이 수익증권으로 간주되고, 부동산신탁업자가 금융투자업자 규제를 받는데, 신탁업법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