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SK이노베이션은 오는 10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판결을 앞둔 터라 ‘진퇴양난’이다. 최종 판결에 앞서 LG화학과 합의가 절실하다는 점에서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3-3부(재판장 이진화 부장판사)는 27일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을 상대로 낸 ‘소 취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 취하 청구는 각하하고,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원고인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하게 되면서 향후 양사간 배터리 전쟁에서 LG화학이 계속 우위를 점하게 됐다.
이번 소송은 LG화학이 작년 4월 미국 ITC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도화선이 됐다. SK이노베이션은 해당 소송에 대한 맞소송 격으로 ITC에 특허 침해 소송을 걸었고, LG화학도 곧바로 특허침해 소송으로 맞대응했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당시 양사간 합의 대상 특허는 한국특허에 한정된다면서 LG화학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 사이에 2014년 합의한 내용에 미국 특허(한국 특허 KR310, 미국 특허 US517)에 대해 제소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볼 수 없다”면서 “원고들의 소송 취하 청구는 법리적으로 보호할 이익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LG화학은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 “SK이노베이션의 억지주장이었음을 명백하게 확인했다”고 반겼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진행 중인 총 5건의 특허 침해 소송에 끝까지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패소 판결을 받은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판결 이유를 분석해 상급심에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SK이노베이션이 이날 판결로 인해 향후 LG화학과의 미국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합의를 두고 더욱 수세에 몰리게 됐다는 점이다.
오는 10월 5일로 예정된 ITC의 최종 판결에 앞서 SK이노베이션으로선 LG화학과의 합의가 절실하다. 앞서 ITC는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 예비 결정을 내렸고, 그간 조기패소 결정이 최종결정에서 뒤집힌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ITC의 조기패소 결정대로 최종 판결이 나오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소재 등은 미국 내 수입이 전면 금지된다. SK이노베이션으로선 늦어도 다음달까지는 LG화학과 합의를 이뤄야 수입금지란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이날 한국 판결로 인해 LG화학은 합의금 협상에서 더욱 우위를 점하게 됐다. 조 단위에 육박하는 합의금액을 놓고 LG화학은 느긋한 입장인 반면 SK이노베이션으로선 속이 타들어가는 상황이다.
LG화학은 이날 판결 직후 “(미국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 합의는 가능하나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주주와 투자자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수준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SK이노베이션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산업 및 양사 발전을 위해 협력해 나갈 것을 희망한다”며 복잡한 심경을 짧게 대신했다.
업계 관계자는 “조지아주 배터리공장 불법취업 의혹에 이어 한국 재판에서마저 패소해 SK이노베이션이 속앓이가 심해진 상황”이라면서 “양사 경영진이 내달까지 과연 어떤 합의안을 도출할지 주목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