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잔혹사] '노무현의 꿈' 16년 만에 행정수도 카드 꺼내든 與

2020-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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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 판결로 핵심기관 빠진 채 진행...'반쪽' 이전 평가

특별법 제정·원포인트 개헌 등 헌재 뒤집을 묘안 논의

대선 때까지 정국 블랙홀 예고..."장기집권 플랜" 비판도

노무현의 꿈은 16년 만에 이뤄질까. 176석의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내들었다. 부동산 정책 실패 분위기를 전환할 '국면전환용'이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여당은 시대적 소명임을 강조하며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은 참여정부의 핵심 공약이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상 수도는 서울"이라며 행정수도 이전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행정수도 이전은 사실상 좌초됐지만, 이후 중앙행정기관 18곳이 세종시로 이전해 행정도시의 틀은 갖췄다. 그러나 정작 청와대·국회 등 핵심 기관이 빠져 '반쪽짜리' 이전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에 여권은 '완전한 이전'을 목표로 행정수도 이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토균형 발전, 지방 분권이란 시대적 소명을 이번 정부에선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방법론도 여러 가지다. 당장 2004년 헌재의 위헌결정을 뒤집거나 혹은 개헌을 통해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 결국 행정수도 이전 이슈는 내년 재·보궐 선거는 물론 내후년 대선까지 모든 이슈를 끌어당길 블랙홀이 될 전망이다.

​◆盧 '지방분권·국가균형발전' 꿈··· 2004년 헌재 결정으로 좌초

2002년 9월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한계에 부딪힌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해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옮겨 가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천도'에 가까운 공약으로 충청권 등 지방유권자 민심을 얻는 데 성공한 노 후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2.3% 포인트 차로 꺾고 16대 대통령에 오르게 됐다. 노 대통령은 2003년 7월 정부혁신·지방분권·국가균형발전·동북아 경제 중심에 방점을 찍고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을 출범시켰다.

2003년 12월 29일 여야 합의로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신행정수도법)'은 국회 문턱을 넘었다. 2004년 1월 16일 신행정수도법은 공포됐고, 연기군과 공주시의 일부가 신행정수도 입지로 결정됐다.

당시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찬반여론이 극명히 갈리자 노 대통령은 "수도 이전 반대는 대통령 불신임"이라며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2004년 7월 수도 이전 위헌 헌법소원 대리인단(간사 이석연 변호사)은 신행정수도법 위헌 헌법소원, 신행정수도추진위 활동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2004년 10월 21일 헌재는 신행정수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대1의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수도는 서울이란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선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는 헌법 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만큼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엇갈리는 행정수도 이전 방법론··· 개헌·국민투표·개정안

정치권에서 거론는 행정수도 이전 방법론은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의 '행정수도법'으로의 개정 및 특별법 제정 △원포인트 개헌 △국민투표 등 크게 세 가지다.

먼저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을 행정수도법으로 개정하는 방안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법 개정만으로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과거 헌재에서 위헌결정을 받은 것은 '신(新)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을 위한 특별법'이므로 '행정중심복합도시법'에는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실제 여야 합의를 바탕으로 국회가 행정수도법을 통과시킨다 하더라도, 노무현 정부 때처럼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이들이 헌법소원 및 가처분 신청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헌재가 2004년 판결과 같이 위헌 결정을 내릴지, 이번에는 앞선 판례를 뒤집는 결정을 할지는 미지수란 점이다.

당장 민주당은 여야 합의를 통한 행정수도법 입법을 우선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행정수도 이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회 차원의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 당내에도 태스크포스(TF)를 구축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과거 한 차례 위헌 결정이 난 만큼 동일 취지의 법안을 재발의해 통과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른 대안은 '원포인트 개헌'과 '국민투표'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수도는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을 담았다. 여권은 해당 내용의 개헌안을 원포인트로 국회에서 통과시킨 뒤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헌법개정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나 대통령 발의로 제안이 있으면 재적의원 3분의2 이상 찬성을 통해 국회를 통과한 뒤 30일 이내 국민투표에 부쳐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실제 원포인트 개헌이 이뤄지면 국회가 여야 합의를 통해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을 만들어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행정수도 문제만 놓고 다뤄지는 '원포인트 개헌'이 실제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개헌 기회를 맞아 여야가 권력 구조 개편 및 다양한 의제를 개헌 테이블에 올려놓고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개헌 블랙홀'에 빠지면서 무산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민투표'는 헌법 제72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권'에 따라 대통령이 직접 행정수도 이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 의사를 묻는 방식이다.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사안은 '외교·국방·통일·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다. 쟁점은 행정수도 이전을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 사안으로 볼 수 있냐는 것이다. 아울러 1987년 민주화 이후 아직 우리나라에서 국민투표가 실시된 바가 없어 국민적 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 국민투표에 부쳐진다고 하더라도 투표 결과에 따른 정치적 후폭풍 또한 여권이 감내해야 한다. 

◆전문가 "여야 합의 선행돼야"

전문가들은 최근 정치권에서 16년 만에 다시 떠오른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 내다보면서, 지방 균형 발전 외에도 다각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선 '여야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26일 "행정수도 이전은 정치권에서 함부로 폐기하기 힘든 카드"라며 "행정수도 이전의 실용성이 있기 때문에 여야가 어떤 절차상의 합의를 보느냐의 문제이지 찬반 격론 내지 폐기를 전제로 한 논쟁을 계속하긴 어려울 것"이라 밝혔다. 그는 "수도권 집중화가 심각하고 비수도권 지역은 피폐화됐다는 것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공통된 인식"이라며 "집권 여당에서 밀어붙이는 것은 부적절하고, 여야 간 합의를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수도를 단순히 국토 균형 발전 관점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며 "역사적으로 서울에 집중돼 왔고, 향후 남북 관계를 고려한 관점에서도 바라봐야 한다. 섣불리 하다간 사회적으로 엄청난 후유증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 원장은 "행정수도 이전은 정치적·정략적 의도 없이 진지하게 국가 발전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며 "여야가 같이 공동으로 논의하고 국민과 함께 여론을 수렴하는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 원장은 "현재 여당에서 보이는 일방적이고 섣부른 논의 추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헌법학자들은 관습헌법상 서울을 수도로 본 2004년 헌재의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성문헌법에 기초한 우리나라 법 구조에 관습헌법 논리를 가져온 건 오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행정수도 이전 방법론 중 '특별법 제정'을 가장 실현 가능성이 큰 방안으로 평가했다.

전학선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는 "2004년 헌재의 결정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 논리적 오류와 모순이 많다"며 "국민대표 기관이 수도를 바꾼다고 결정했다면 이미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이 깨진 것으로 봐야 한다. 단순히 대통령이 말로 한 것이 아니라 국회가 법률을 통해서 수도를 바꾼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21대 국회가 행정수도 관련 특별법을 만든다고 하면 관습 헌법상 수도가 서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도 "2004년 판결을 두고 관습헌법 법리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관습 헌법을 지지하는 학자가 거의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이 있었는지부터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라며 "헌법 개정 방향으로 가면 일이 커진다. 특별법을 만들면 헌재로 넘어와서 다시 관습헌법을 두고 판결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교수는 "관습헌법 문제로 헌법을 고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관습헌법이라는 게 어떤 관행이 계속되고 헌법이라고 국민이 믿고 있어야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사법부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면서 "이 문제와 관련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공론장이 열려서 전문가들이 토론한 뒤 국민적 합의를 모으고, 법률을 바꿔 헌재로 넘어가는 게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부산 개성고등학교(옛 부산상고) 교정에 세우진 노무현 전 대통령 동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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