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부터 최장수 서울시장까지…멈춰버린 박원순의 시간

2020-07-10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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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제명 후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길 걸어

3선 성공 최초 시장…여권 대선주자로도 자리매김

지난 9일 돌연 실종신고…7시간 만에 변사체 발견

박원순 서울시장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10일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명문대 제적생,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등의 궤적을 거쳐 최초 3연임 서울시장 자리에 올랐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이후 진보 성향 대선주자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박 시장은 1956년 3월 26일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지만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명령 9호 위반으로 제적당했다. 이후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검사가 됐지만 곧 적성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 1년 만에 검사복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시민운동에 관심이 컸던 박 시장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지내고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총선시민연대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부패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낙천 및 낙선운동을 이끌었다. 2001년에는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등 시민단체를 설립해 기부와 나눔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애썼다.

그런 그는 지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논란으로 사퇴하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당시 인지도가 높았던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지지와 양보로 힘을 얻었다. 2선에서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후보, 3선에서 김문수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앞서 3연임에 성공해 9년 동안 서울시장으로 일했다.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으로서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 청년수당, 도시재생, 사회적경제기업 협동조합, 원전하나줄이기, 노동이사제, 토건에서 복지 패러다임으로 전환 등 수많은 사회혁신정책을 단행했다.

특히 지난 4·15 총선에서는 일명 박원순계로 불리는 인사 10여명이 대거 국회로 입성하면서 당 안팎에서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혀왔다.

지난 6일 민선 7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는 "대선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안 되고 싶어도 하게 되는 운명적인 직책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음에 대선 얘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9일 오전, 예정됐던 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시청에 출근하지 않은 채 등산복 차림으로 공관을 나섰다. 이날 오후 5시17분경 박 시장의 딸이 경찰에 박 시장의 실종 신고를 했고, 이로부터 7시간여 만인 10일 0시20분께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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