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시대에 유행하는 '거리두기'라는 말에는 어쩐지 이기적인 격리의 느낌이 있다. 모두를 잠재적인 감염원으로 여기는 태도가 숨어있다. 방역을 위한 행동이라면, 이 말이 더 정확할지 모르지만 '거리를 확보하려는 의지'에서 나타나는 거리감이 마음 속에 생기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거리감에는 상대를 침입자 혹은 적으로 인식하는 불신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순화하는 말로 '사이두기'란 말을 쓰면 어떨까. 사이는 인간(人間)이란 표현 속에 이미 존재하는 개념으로, 인간은 사람의 사이에서 살아가며,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살아가며, 또한 타인이 다양한 방식으로 비춰주는 자아의 모습을 자기로 느끼며 살아간다. 인간의 둘레는 저마다 다른 사람이 존재하며, 타인과 자기 사이에 '사이'가 있다. 자기의 보건을 위해 필요한 '사이'를 유지하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일지도 모른다. 전염병 시대에는 전염병 방역에 알맞은 사이가 있는 것도 그렇다.
'사이'에는 거리감이 있지 않고, 서로에게 필요한 만큼의 간격이 있다. 누구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사이를 두는 것이다. 사이는 공존을 위한 지혜이며, 개인의 자유와 자율과 안전을 위한 공간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사이를 둔다는 것은, 상대를 밀쳐내는 것이나 상대를 기피하여 물러서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행복한 간격을 찾아낸다는 뜻이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