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르포]"반나절 돌아 겨우 3장...마스크 구하다 일상이 무너졌다"

2020-02-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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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마스크 구하기?…연차, 반차 내고 도전해도 'NO'

1시간 줄서서 겨우 3장...대부분 매장 오픈과 동시에 품절

서울 송파구 인근의 한 대형마트에 마스크를 사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 [촬영=한지연 기자]


"어제도 왔는데 못샀다. 집에 있는 아내가 호흡기가 좋지 않아 산책을 나가려면 꼭 마스크를 껴야 한다. 오늘은 반드시 사서 돌아가겠다."

70세는 족히 넘어보이는 어르신은 한쪽 팔에 깁스를 한 채였다. 모자를 깊게 눌러썼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백발과 마스크 위로 보이는 선한 눈매는 품위가 느껴졌다. 그는 "집에 마지막 남았던 마스크를 여기 나오기 위해 사용했다"면서 "아가씨도 (마스크를)꼭 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쾌쾌한 지하도 냄새를 맡으며 셔터가 굳게 닫힌 한 대형마트 앞에서 1시간을 기다렸다. 별의별 생각이 교차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오전 8시 50분. 마트 오픈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았지만 이미 십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10대부터 70대까지. 나이도, 표정도 제각각이다. 부모님이 사용할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왔다는 30대 남성부터 손자·손녀가 걱정돼 마스크를 사러왔다는 60대 여성, 가족이 사용할 마스크를 사기 위해 3일째 줄을 서고 있다는 50대 주부도 있었다. 이들의 사연은 다르지만 모두 '오늘은 마스크를 사겠다'는 마음으로 한데 뒤섞였다.

오전 9시 30분이 되자 멀끔히 양복을 차려입은 마트 직원이 나왔다. "오늘은 200분 정도 사실 수 있으니까. 제발 뛰지 마세요. 어제도 한꺼번에 뛰다가 넘어지셔서 다치셨어요. 1인당 1봉지 구매 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한 여성이 큰 소리를 외쳤다. "그럼 안 뛰게 문을 좀 일찍 열어줘요."

굳게 닫힌 마트 셔터를 마주하고, 한 시간 가량을 하염없이 서있다보니 문득 국가가 원망스러웠다. 또래 어르신들은 이미 삼삼오오 모여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속에서 뭔가 '울컥'했다. 서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도 몸이 성치 않으면서 가족 누군가를 위해 마스크 대란에 동참하고 있을 터. 사람들이 늘자 곳곳에서 마른기침 소리가 났다. 감염병을 막겠다고 마스크를 사러왔는데, 오히려 줄서있다가 감염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어제도 4줄로 서서 기다렸어요." 마트 오픈 시간이 임박하자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한줄이 갑자기 네줄이 됐다가 두줄로 바뀌었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뒤로 가시죠.", "먼저 오신 어르신들도 많습니다." "개념 좀 챙기세요." 곳곳에서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그때 날카로운 한마디가 스쳤다. "우리끼리 이래봐야 소용없어요. 출입구가 3곳이 넘어요." 아뿔사, 왠지 나도 마스크를 사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오전 9시 55분. 굳게 닫힌 마트 셔터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 사람들이 운동화 끈을 동여맸다. 나도 신발끈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직원이 알려준 마스크가 놓여있는 위치를 체크했다. '직선으로 100m, 좌회전 한번'. 다시 한번 상기했다.
 

 


"절대로 뛰지 마십시오. 이제 입장하시면 됩니다."

드디어 오전 10시, 무전기를 찬 젊은 직원들이 오픈을 알렸다. 경쾌한 오픈송을 들을 여유도 없이 갑자기 뒤에서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뛰지 않으면 내가 밟힐 것 같았다. 방향을 잃은 채 사람들이 달리는 곳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고등학교 때 100m 단거리 질주가 오버랩됐다. 내 앞에 섰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뒤처지는 게 보였다. 그럼에도 계속 달릴 수밖에 없었다.

오전 10시 5분.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도착한 순서대로 마스크를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번호표를 받아야 했다. 각각의 출입구에서 쏟아진 사람들이 다시 번호표를 받기 위해 한 줄로 뭉쳤다. 오늘 처음 온 초짜들은 '룰'을 몰라 어리둥절했고, 배테랑은 능숙하게 자리를 선점했다. 1시간이나 줄을 서고도 번호표를 다시 받기 위해 또 줄을 서는 촌극이 연출됐다.

"왜 중국인들은 안 막고 우리 국민들만 이렇게 막아서냐."

곳곳에서 울음이 섞인 분노가 터졌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반차를 내고 왔다는 한 30대 남성은 "도대체 마스크 3장을 사려고 줄을 얼마나 더 서야 하냐"며 화를 냈다. 마트 직원들은 연신 허리를 굽히며 "죄송합니다. 내일은 더 많이 준비하겠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피해자였다.

"오늘 준비된 마스크는 모두 소진됐습니다. 내일 다시 들러주세요."

이날 마트에서 준비한 마스크 200장이 동나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14분. 현장에 몰린 인원은 약 400여명. 절반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L마트 측은 “마스크를 못 사신 분은 손소독제를 대신 드리겠다”라고 달랬지만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 50대 여성은 "어제도, 오늘도 허탕을 쳤다"면서 "내일은 몇장이 들어오는지, 몇시에 와서 줄을 서야 되는지 알려라도 달라"고 소리쳤다. 30대 여성은 "오늘 기다린 사람들에게 내일이라도 구매할 수 있도록 번호표를 줘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 "마스크 한장으로 사람을 희롱하느냐"고 말했다. 

아쉬운 마음에 인근 마트 10여곳을 더 돌았다.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3시간가량 구한 마스크는 단 세장. 마치 '패잔병'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만약 내가 건강하지 않았다면, 감염에 취약한 아이가 있는 부모였다면···. 이런 생각이 들자 아찔했다. 1800원짜리 마스크 한 장에 결국 평범한 일상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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