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향신문에 임미리 교수가 쓴 ‘민주당만 빼고’ 칼럼을 두고 정계가 논란에 휩싸여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임 교수와 경향신문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이낙연 전 총리의 사과에 이어 민주당에서 그의 뜻을 반영하여 고소를 취하하였다. 임 교수도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임 교수의 칼럼이 선거법상 공정보도 의무를 위반하였다는 결정을 내렸다. 언론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법적 구속력의 유무를 떠나, 단순히 법적인 관점으로만 본다면 사과할 이유가 없지만, 도덕·관습적인 관점에서 민주당이 표현의 자유 존중과 국민에 대한 겸손한 자세 유지를 이유로 사과를 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사과를 한 측도 잘했고, 사과를 받은 측도 잘했다. 하여튼 이 모든 혼란이 일단락되기를 바란다.
기업이 한 해의 경영성과를 재무제표로 평가받듯이, 대학교수들은 대체로 교육·연구·봉사·산학협력 활동 등을 통하여 평가받는다. 다시 말해 교수는 이러한 일이 주업이다. 봉사에는 교수 각자가 지닌 유·무형의 전문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포함된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해결방안을 칼럼 등을 통해 제시하는 것도 사회에 대하여 교수가 할 수 있는 일종의 봉사이다.
특히 임 교수의 경우 정당 활동 경력에다 전공도 정치학이라 일반인들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정치 현안을 더 잘 이해하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 또한 많을 법도 하다. 필자도 칼럼을 쓸 기회가 자주 있다. 신문지상을 통해 세상에다 하고 싶은 말, 세상을 바꿀 만한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무슨 큰 죄가 되겠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표현의 자유에 따른 다른 사람의 주장에 대해 이를 받아들이느냐, 혹은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독자 자신에게 달려 있다. 칼럼이 전하는 메시지를 수용하거나 거부하면서 자신의 세계관, 인생관에 첨삭해 가면 되는 것이다.
하드웨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사과를 잘 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만이 사과를 잘 할 수 있다. 산업화시대는 크고 강한 것이 아름다운, 하드웨어가 지배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정보화시대를 넘어 오늘날과 같은 융복합의 시대, 곧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소프트웨어적인 사고가 지배한다. 융복합을 하려면 부드러워야 서로 융화되고 섞인다. 부드럽고 조화로운 사고가 바로 소프트웨어적인 사고이다. 이낙연식 사과의 미학(美學)이 가지는 의미는 막힌 물꼬를 트고 정반합으로 나아가게 하는 솔루션이라는 데 있다. 이러한 사과를 통해 우리 사회 전반을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즉 하나의 공동체로 이해하는 바탕 위에 포용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보면,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힘을 갖춘 교묘한 지혜가 필요하고 악덕으로 인한 오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이낙연 전 총리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카리스마로 일관하되, 더불어 강단과 추진력도 구비한 지도자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이낙연 전 총리가 포용하고 아우르는 조용한 품격으로써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면, 앞으로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적토마를 타고 내달리는 야성의 여포(!) 이미지도 주문해 본다. 그래서 정치가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