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분석]추미애 장관 조목 조목 비판한 민변

2020-02-1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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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울사신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 비공개에 입장 밝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을 비공개하기로 한 법무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12일 김호철 회장 명의로 ‘공소장 국회 제출 관련 논란에 대한 입장과 제안’이란 논평을 냈다. 정의당과 참여연대도 공소장 비공개를 비판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나 현 정권 반대 세력의 비판은 그렇다 쳐도, 현 정부에 우호적인 정당이나 단체들마저 비판에 가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공소장 원문을 국회의원에게 제출하고 그 공소장이 언론에 보도되는 그간의 관행은 잘못된 것이라며, 이번에 그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공소장 원문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소장 원문이 아닌 요약본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무부의 공소장 원문 비공개 결정에는 여러가지 쟁점이 들어 있다. 민변 논평은 이 쟁점들을 두루 다뤘다. 그 내용을 살펴 본다.

①어떤 관행이 잘못됐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민변은 "개혁이란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므로 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그 필요성을 합리적으로 제시하고 사회적 설득을 통한 동의를 얻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과거의 관행이 잘못돼서 고쳐야 하겠다고 판단했다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고치려면 뭘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서 고칠 것인지를 먼저 제시하고 사회적 동의를 거쳤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관행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는 법무부가 일방적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법무부 주장과 달리 그 관행에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는 판단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행이 생긴 데는 그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법무부가 느닷없이 공소장 공개를 ‘잘못됀 관행’이라고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그 관행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밀어부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②잘못된 관행의 개선 절차 선행 없이 그 관행에 따른 업무를 무조건 거부해도 되나

민변은 "법무부는 사전 논의가 사회적으로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사건에 대한 공소장 제출 요구에 대해 공소 요지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논란이 일자 사후에 제도개선 차원의 결단임을 밝혔다"며 " 특정 사안에 대한 정치적 대응으로 읽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관행이라면 먼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사회적 공론화 절차를 거친 뒤 개선된 방식에 따라야 했는데, 법무부는 그런 절차 없이 공소장 공개부터 거부하고선 비판을 받자 ‘잘못된 관행을 개선한기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했다. 그 바람에 공소장 공개 거부가 ‘잘못된 관행의 개선’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청와대가 연루된 사건의 공개를 막으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이뤄졌다는 의심을 받게 됐다는 말이다.

민변 입장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지적이다. 법무부가 이번에 "관행에 따라 공소장은 공개하되, 이런 관행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서 필요하다면 사회적 동의 절차를 거쳐 고쳐나가겠다”고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③관행의 개선 문제와는 별개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 원문을 비공개한 것은 옳은 일인가

민변은 "법무부는 공소장 제출을 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해당 공소제기가 된 사건이 가지는 무거움을 제대로 헤아렸는지 의문"이라며 "해당 사건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청와대와 정부 기관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검찰이 수사를 거쳐 기소한 사안"이라고 했다.  민변은 "청와대와 정부 소속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그 자체로 중대한 사안”이라며 "공소장 공개가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와 별개로, 해당 사안에 대해 정부는 국민에게 정보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했다. 민변은  "정부는 언제나 국민에 의한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강도, 절도 같은 일반적인 형사 사건이 아니라 청와대와 정부 기관의 선거 관여 의혹이 제기돼 국민이 당연히 알아야 할 공익적 사건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선 정부도 법 아래에 있다. 정부 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생명이다. 정부가 법에 맞게 행동했는지 감시하고 통제하려면 먼저 국민이 그 내용을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당연히 공소장을 공개해야 한다. 민변은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④앞으로 공소장 공개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는 게 바람직한가

민변은 공소장 전문을 국회에 공개하는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세부 기준을 정비하고, 앞으로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진지한 인권적·법적 검토와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민변은 "법무부가 국회의 요구에 따라 공소장을 제공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헌법적 평가가 요구된다"며 "피고인의 방어권과 개인정보보호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및 국회의 기능을 고려해 정당성 여부가 논의돼야 하고, 정당하다면 시기와 범위, 절차 등도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통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연루 혐의자는 청와대 비서실장, 민정수석, 비서관, 울산시장, 울산경찰청장 등 이 나라의 대표적인 고위 공직자들이다. 사건 내용도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에 개입한 사건이다. 이런 사건의 공소장은 원칙적으로 국회에 제출돼 국민이 알게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이런 공직자들도 기본권을 갖고 있으니 기본권이 심각히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개해야 할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직자는 사생활의 비밀이나 명예훼손 등에서 일반 국민과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는 없다고 했다. 공직자들의 행위는 국민 전체의 이익, 즉 공공의 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무부는 이번에 공소장 원문 비공개 결정 이유를 설명하면서 당사자들의 개인 정보 보호, 사생활 보호, 인격권 보호 등을 들었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연루 혐의자들에게 이런 권리를 일반인과 똑같이 보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더구나 사건 내용이 뇌물 수수나 이권 개입 같은 개인 비리가 아니고 선거 개입이라는 국가 공익을 침해한 것이다. 당사자들의 개인 권리보다 국민의 알 권리, 국민에 의한 정부 통제 권리가 더 우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무부는 이 점을 간과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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