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직권남용 혐의 등에 대해서 법원이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의 사건에서도 무죄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실상 기소자체가 무리였던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일기 시작했다.
▲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몰이"... 검찰수사 관행에 작심 비판
앞서 지난해 12월 16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유 전 연구관은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피고인 주제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외람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저는 우리의 수사 현실이나 관행에서 고치고 바로잡아야 할 많은 문제점을 보게 됐다"고 밝혔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범죄자로 낙인 찍히도록 피의사실을 흘리는 검찰을 대놓고 비판한 것이다.
특히 유 전 연구관은 "수사 과정에서 대대적 언론보도로 파렴직한 범죄자로 낙인 찍히면서 점점 막다른 벼랑으로 떠밀리는 느낌이었다. 어떤 순간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서라도 저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결백을 증명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만약 재판부께서 뜻밖에도 제게 유죄판결을 내리신다면 지난날의 모든 허물과 잘못에 대한 인과응보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유 전 연구관이 작심하고 비판한 것처럼 '파렴치한 범죄자로 낙인 찍었던'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부분은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청 '포토라인'이 피의자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에 대해서 "국민 알 권리 실현과 인권 보호를 도모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형성됐고, 포토라인 설정에 수사기관 개입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수사과정이 위법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점은 보이지 않는다"며 "유 전 연구관의 혐의가 수사 중 알려진 내용이 있더라도 공무상비밀누설죄를 특정할 정도는 아니고, 피의사실 공표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유 전 수석에 적용된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유죄로 인정할 만큼 검찰이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변죽은 요란했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는 이야기로도 해석된다.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
이에 검찰은 "법원은 충분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관행이었다거나 범의를 이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며 "1심 판결의 사실오인 및 법리 오해에 대해 항소하여 바로잡을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 "죄가 되지 않는다"…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에 영향 미치나
유 전 연구관에 대한 무죄판단은 이미 지난해 9월 21일 영장실질심사에서 예견됐다.
당시 유 전 연구관의 구속 여부 심리를 맡은 허경호 영장전담판사는 이례적으로 각각의 사안과 혐의들에 대한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먼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해선 “대법원에서 들고 나간 문건 자체가 '일반적 문서‘에 불과하고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비밀'이 아니니 '비밀 누설'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 이어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들고 나간 자료가 파일 형태여서 이를 보존가치가 있는 공공기록물 ‘원본’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로 영장을 기각했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선 “문건 작성을 지시한 행위 자체가 위법하다거나 지시에 부당한 목적이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종적으로 허 판사는 "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존재하므로 관련 문건을 삭제한 것을 들어 증거인멸을 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논리는 13일 재판정에서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박남천 부장판사)는 우선 재판 경과를 누설한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문건 작성을 지시해 임 전 차장에게 전달했다거나, 임 전 차장이 청와대 등 외부에 이를 제공하는 등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를 가지고 나간 혐의에 대해서도 "해당 보고서 파일이 공공기록물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 파일 내용 중에 개인정보가 일부 포함돼 있다고 해서 피고인에게 개인정보를 유출한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판단했다.
아울러 "피고인이 사임하면서 사무실의 개인 소지품을 가져나오는 과정에 검토 보고서 출력물이 포함돼 있었을 뿐, 그 정보를 변호사 업무에 사용할 의도를 증명할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 행위에 함께 적용된 절도 혐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유지된 것이다. 이같은 판단이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도 적용될지에 대해선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혐의가 다른 사건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 전 연구관에 무죄를 내린 재판부가 양 전 대법원장은 물론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 재판도 함께 심리하고 있어 이번 유무죄 판단과 공소제기에 관한 결정이 다른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형사재판에도 적용될 가능성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 "형사판결로 부정함 정당화 안 돼”... 이탄희 변호사의 외침
13일 이탄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 전 연구관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을 두고 “형사사건이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사법농단의 본질은 헌법위반이고 법관의 직업윤리위반이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외교부·특정 로펌 등이 분업하며 재판에 개입한 사건으로, 우리 헌정체제를 위협하고 재판받는 당사자들을 농락한 사건”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대법원장이 엄격한 법관징계 등 직업윤리 수호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법관탄핵 등 국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며 “선진국들이 모두 취하는 방식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이렇게 어려운 것이냐”고 반문했다.
특히 그는 "대법원장께서 외부위원 참여하는 자체조사위를 설치하지 않고 검찰 수사에만 기댄 일과 법관징계에 관해 대규모 면죄부를 준 일이 다시 한번 통렬하게 다가온다"고 강조했다.
한편 법조계 일부에서는 '사법농단' 사건의 실질적인 지휘자가 한동훈 검사장(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다는 점을 들어 "한동훈식 수사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반증하는 사례"라는 비아냥도 일고 있다. 수사를 한 것이 아니라 '언론플레이'를 하는 바람에 정작 중요한 증거확보를 못했고 결과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 처벌을 피하게 만들었다는 것
이 때문에 재판 결과에 따라 한 검사장에 대한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