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범현대가(家)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지난 2015년 재무적 어려움에 빠져 보유 현대차 지분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사재 5000억원을 투입해 대부분의 지분을 매입해주기도 했다. 또, 현대종합상사가 채권단으로 넘어갔을 땐 정몽혁 회장이 다시 경영권을 되찾을 수 있도록 사촌지간인 정몽진 KCC 회장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등이 나서 공동으로 지분을 매입해 준 사례도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달 7일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서면서 범현대그룹 계열사와 아시아나항공 업무제휴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수령, 매각사 측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직접 범현대가 그룹 최고책임자에게 MOU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HDC현대산업개발에 범현대그룹이 어떤 형태로든 힘을 실어주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같은 범현대그룹과의 협력을 통해 HDC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따른 재무부담을 덜고, 범현대가 네트워크를 활용해 안정적인 경영환경을 빠르게 구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HDC현대산업개발이 검토 중인 유상증자에 범현대그룹이 참여하는 시나리오가 투자은행(IB) 업계 안팎에서 회자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현금 유동성을 유지하면서도 외부 차입금 리스크를 피할 수 있어서다. 항공업 경험이 없는 HDC현대산업개발이 범현대그룹과의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사업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범현대가 또한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상당한 사업적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지주가 거느리고 있는 현대오일뱅크는 항공유 시장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한항공은 전체 항공유 가운데 절반 이상을 GS칼텍스에서, 아시아나항공은 약 70%를 SK이노베이션에서 공급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오일뱅크가 HDC현대산업개발과 사업제휴에 나서면 '대한항공-GS칼텍스', '아시아나항공-현대오일뱅크'와 같은 구조로 재편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푸드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백화점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사업에 진출할 수 있다. 현대해상화재보험은 수천억원 규모의 항공운송보험 등을 맡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항공업은 다양한 산업과 연계될 수 있어 범현대가에서는 사업 제휴를 위한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사업제휴가 꼭 범현대가에 국한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을 통한 화물운송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HDC현대산업개발은 삼성, SK 등과의 사업제휴도 매력적인 선택지다. 재계 관계자도 "HDC현대산업개발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반도체 물량을 확보해 카고(화물) 사업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본계약이 체결될 때까지는 확정해서 말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방식과 향후 아시아나항공과 사업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 폭넓게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